홀로 걷는 제주 섬(島) 437km, 27개 코스
삼춘장례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만 뵈던 *삼춘을
올 추석에 보내 드리고 왔습니다.
산소서만 만나던 분을
죽어서도 산소서 보게 되네요.
길지도 않은 인생, 사연은 왜 그리 많으셨는지
삼춘은 어머니께 밤새 또 말합니다.
"형수 나 숨 막혀 죽을 거 같아요."
두 다리 칼 자욱 보이며
여태 힘들게 왔다고 한풀이하던 삼춘을
올 추석에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그래, 그래 내 알지" 하며
어깨 토닥이던 아버지 곁에
삼춘이 묻히셨습니다.
아버지 가실 때처럼 밤새 비가 오고
나는 의문 없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섬(島) 너머 저 땅에
무덤이 하나가 더 늘었네요.
검은 바다 바라보다가
검은 섬 희미한 불빛을 보다 나 눈을 잃습니다.
단 한 번도 웃었던 적이 없던 인생
단 한 번도 맘 편히 잠들지 못했던 인생
죽고서야 땅 속에서 두 다리를 뻗습니다.
저 너머 빛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의문 없이 잠에서 깨고 나서야
나는 삼춘이 떠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2025년 10월)
*우리는 늘 삼촌을 삼춘이라 불렀는데, 제주에서는 이웃어른들을 남녀구분 없이 삼춘이라 부름
2025년 10월 10일 금요일
일주일 만에 길 위에 섭니다. 추석 연휴 시작하자마자 삼촌이 돌아가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신 **삼촌은 힘들게 평생을 사셨습니다. '관계', 삼촌은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에 힘겨워하시다 결국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구정 때도 뵈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바지를 치켜올리며 "형,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슈, 여기 칼자국 봐, 나 어렵게 여기까지 왔어" 하고 술이 취해 아버지께 하소연하시던 삼촌이 자꾸 생각납니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아버지 곁에 삼촌이 묻히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만큼은 삼촌이 맘 편히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협재는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저를 맞아줍니다. 바다는 잔잔히 배 속에 숨겨둔 모래를 드러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하얀 속살이 있을 줄 몰랐네요. 새색시처럼 부끄러워하는 바다에 비양도는 흐뭇한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바다와 섬의 친근한 관계가 부럽기만 합니다.
09시 30분, 3시간 걸려서 일주일 전에 왔던 19코스 종점이자 20코스 시작점 김녕 서포구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다시 길을 걷습니다. "부엔까미노. 이 길 위에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
도대불
도대불은 바다로 나간 배들의 밤길을 안전하게 밝혀주는 역할을 했던 제주도의 민간등대를 말합니다. 김녕도대불은 원래 상자모양이었으나 1960년경 태풍으로 허물어져 지금의 원뿔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김녕도대불의 등불은 해질 무렵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이 키고 나가면, 아침에 들어오는 어부들이 껐다고 합니다.
김녕 앞바다를 지나고 있습니다. 코발트빛 바다, 바람, 파도.. 보고 있어도 계속 보고 싶은 김녕입니다. 하얀 백사장 끝에는 풍차가 돌고, 바다를 떠나지 못한 이들은 바다에 남아 한 폭 그림이 됩니다.
성세기 해변
성세기는 외세 침략을 막기 위한 작은 성(새끼 성)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해변 입구 남서쪽 300미터 지점에 요왕 황제국 말젯아들을 모시는 성세깃당이 있습니다.
성세기태역길
'태역'은 잔디를 의미합니다. 잔디가 많은 이 지역을 지나면서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10시 20분, 아내가 싸준 간식을 하나 뽑아 듭니다. 최고의 맛 한림오일장표 사과입니다.
김녕 환해장성길을 지나고 있습니다. 파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세찬 김녕 바다에 강태공들이 여럿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혹여 바닷바람에 이들이 날려가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11시 05분, 길은 4.9km 지점에서 해안 길을 버리고, 한라산 방면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뒤 1시간 30분 정도의 김녕 해안길은 정말 최고의 뷰였습니다. 여기처럼 자전거족들이 많았던 적도 없습니다. 시원한 바람, 길게 뻗은 해안도로, 멋진 풍경... 자전거족들이라면 꼭 달리고 싶어 할 코스라 생각됩니다.
바다를 버리고 산을 향해 걸어갑니다. 오래간만에 걸어서 그런지 힘드네요. 가져온 떡으로 체력을 보충합니다. 11시 40분, 6.7km, 구좌읍 월정리로 들어섰습니다. 많은 서퍼들이 사랑하는 월정해수욕장입니다. 멋지네요. 누구나 저 파도에 몸을 실을 수는 없겠지요. 젊음과 열정이 부럽습니다.
행원포구 광해군 기착지
광해군은 1623년 인조반정에 의해 <혼란무도(昏亂無道), 실정백출(失政百出)> 이란 죄로 폐위되어 처음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이어 1637년 유배소를 제주도로 옮기려 사중사(事中使) 별장 내관, 도사 대전별감, 나인 서리 나장(羅將)등이 임금을 압송하여 6월 16일 이 어등포(於登浦)로 입항하여 일박하였습니다. 이때 호송책임자 이원로(李元老)가 왕에게 제주라는 사실을 알리자 깜짝 놀랐고, 마중 나온 목사가 "임금이 덕을 쌓지 않으면 주중적국 (舟中敵國)이란 사기(史記)의 글을 아시죠" 하니 눈물이 비 오듯 했습니다.
좌가연대
좌가연대는 구좌읍 한동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방어 유적지입니다. 여기 연대는 별방진에 소속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왕가봉수, 서쪽으로는 무주연대와 신호를 주고, 받았던 통신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3시 30분, 13.2km, 한동리 정자에서 잠시 쉬고 있습니다. 왼쪽 발바닥이 계속 아파오네요. 현무암으로 된 돌멩이가 여전히 두렵습니다. 일주일 동안 몸은 길을 잊어버리고 살았나 봅니다. 왼쪽 발바닥과 양쪽 어깨가 여전히 아킬레스건입니다. 10분간만 목을 축이고, 지친 발을 마사지하고 갑니다.
비스킷 하나로 다시 힘을 내봅니다. 길은 계룡동을 지나 뱅듸길로 들어섰습니다. 계룡마을은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택의 반은 주거하는 집 같고, 반은 빈 집처럼 보입니다. 예 살던 이들은 다 어딜 갔을까요?
벵듸길
평대 마을은 '벵듸' 또는 '벵디'라고 불렀습니다. 돌과 잡풀이 우거진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입니다. '벵듸길'은 마을의 유래를 짐작케 하는 옛길입니다.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세화민속오일장을 지나갑니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다양한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네요. 주변에 주차 안내하는 분까지 있는 걸 보니 꽤 큰 장터 같습니다. 아마 오늘이 ‘장 서는 날’ 같아 보입니다.
확인해 보니 오늘은 <세화민속오일장> 서는 날이었네요.
14시 40분, 20코스 최종목적지 구좌읍 제주해녀박물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09시 30분에 김녕서포구를 출발했으니까 총 5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사과, 떡, 비스킷으로만 채워진 몸에 끼니를 채웁니다. 도다리 물회를 시켰는데 너무 맵고 시큼하네요. 시장이 반찬이라 생각하고, 국물 한 숟갈, 밥 한술로 시장끼를 채웁니다.
올레 20코스는 김녕, 월정 두 곳의 해안도로를 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길게 뻗은 김녕 해안도로는 라이딩 족의 성지라 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월정해수욕장의 서퍼들은 정말 부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서퍼들의 젊음과 열정, 검게 그을린 피부의 남녀들 모습이 꼭 하와이 와이키키나 그리스 로더스 섬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면, 지금 생각해 보면 광해군은 ‘쫄보’ 같아 보입니다. '이 멋진 바다를 보고 원대한 꿈을 다시 키워보거나, 사나운 파도 앞에서 호연지기를 키워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영웅은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한니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같은 인물들은 고대 로마라는 시공간에 신이 준 선물인 것 같습니다. 요즘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있어서 이런 영웅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의미에게 13척의 배로 133척 왜선을 무찌른 충무공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란 생각이 불연 듯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