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 밤안개의 서재_1

by 밤안개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본명은 마르그리트 도나디외. 1914년 베트남 지아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여읜 후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를 따라 베트남 곳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주 특이한 작가와 작품을 한림읍사무소 무인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제인마치, 양가휘의 영화로 너무 잘 알려진 소설 <연인>입니다. 영화에서 받은 강한 자극적 영상 때문에 이 작품을 책으로 읽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들린 무인책방에서 어떤 소녀, 본인 말로는 이제 대학 입시생이 되었다고 하는 그녀가 추천한 3가지 책,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 '창비 계간지 소설보다: 가을 2025', <연인> 중 하나입니다. (2권의 책을 구매해 갔는데 <연인>은 나중에 사서 결국 3권을 모두 보게 되었네요.)


스토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읽기는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시점이 혼돈스러웠습니다. 뒤라스는 단순한 사건을 나열하며 과거를 기록하지 않고,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마치 지금 느끼고 있는 것처럼 기술하며 작품을 끌고 갑니다. 이는 1984년 뒤라스가 70세 나이로 <연인>을 출간할 당시 36세 연하의 연인 얀 앙드레아(Yann Andrea, 1952.12.24-2014.7.10)가 그녀의 구술을 타이핑하며 이 작품이 써졌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뒤라스는 36세 연하의 연인에게서 15.5살의 소녀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뒤라스를 20세기를 대표하는 50인의 지성인이자 철학가,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한 존 레흐트(John Lechte) 교수는 "유별난 독특함이 있"는 뒤라스의 문체가 가끔은 "*누보로망의 실험적 사실주의를 떠올리게 하"고, 스토리 흐름은 느리게 하며, 짧은 문장은 세부 사항들에 초첨을 맞춘다고 설명합니다. (Fifty key contemporary thinkers(Routlege, 1994),237~241page)


*누보로망(Nouveau roman)은 프랑스어로 '새로운 소설'이라는 뜻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등장한 혁신적이고 전위적인 소설 운동 및 작품군을 말하며, 전통적인 서술 방식과 인물, 플롯을 거부하고 실험적 기법을 사용하며 '반소설(anti-roman)'로도 불립니다. 알랭 로브 그리예, 나탈리 사로트 등이 대표 작가로, 일상적 삽화의 복합, 현실과 서술 시간의 불일치, 미로 같은 공간 구성 등의 특징을 보입니다.


1943년 그녀는 본명 '도다니외'를 아버지의 별장이 있던 곳의 지명을 따서 필명 '뒤라스'로 바꾼 후 첫 소설 <철면피들>을 출간한 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 <온종일 숲 속에서>, <모데라토 칸타빌레> <롤 V, 스텡의 황홀> <부영사> <복도에 앉은 남자> 등 다수의 작품을 썼고, 알렝 레네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써서 주목을 받았으며 영화 <라 뮤지카>, <인디언 송> 등에서 제작 및 연출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노년에 그녀는 알코올 중독과 간경화를 겪으면서 <연인>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문학상 중에 하나인 콩쿠르상을 수여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늘 줄이나, 페이지 윗면을 접어 놓는 습관이 있는 필자가 표시한 문장들 몇 가지 적어 봅니다.



정말이지 사람들이 나를 보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여자들처럼, 아름다운 다른 여자들처럼 예쁘다고 착각할 뻔했고 그렇게 믿을 뻔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 그렇다, 다른 어떤 것, 이를테면 기질 때문임을 안다. 나는 나타내고 싶은 대로 나를 나타낼 수 있다. 사람들이 내가 아름답기를 원하면 아름다워 질 수 있고, 예쁘기를 바라면, 예를 들어 가족들이 내가 예쁘기를 바라면 그 어느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가족들을 위해서 예쁘게 보일 수 있다.(p24-25)


이 집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어휘는 수치와 자만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집단이건 혹은 다른 어떤 집단이건 공동체라는 형태를 한 모든 것은 우리에게 증오의 대상이자 지저분한 그 무엇이다. 우리 가족은 삶을 살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근원적인 수치심에 빠져 있다. 우리 남매들의 이야기 가장 깊숙한 곳에는, 우리 세 사람이 사회가 목 졸라 죽인 우리 어머니, 저 선량한 여인의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우리는 어머니를 절망에 빠뜨려 버린 이 사회의 한편에 비켜서 있다. 그토록 다정하고 그토록 남을 쉽게 믿는 우리 어머니에게 사람들이 저지른 짓들 때문에 우리는 삶을 증오하고 우리 자신을 증오한다. (p65)


전쟁, 몇 번의 결혼, 아이들, 몇 번의 이혼, 몇 권의 책 이후 몇 해가 흘렀을 때 그가 부인과 함께 파리에 왔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그녀는 목소리에서 이미 그인 줄 알았다. 그는 말했다. 그냥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녀가 말했다. 나에요, 안녕? 그는 긴장했고, 예전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리는 음성 속에서 문득, 그녀는 중국 억양을 다시금 알아보았다. 그는 그녀가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사이공에서 다시 만난 어머니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오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며 그녀를 생각하며 슬퍼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헸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를 사랑할 거라고. 파리 노플르샤토에서, 1984년 2월 ~5월 (마지막p129)



책을 읽고,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보는 것과 반대로 영화를 보고 책을 보는 것은 상당히 다름을 느낍니다. 영상이 주는 장면에 몰입하는 통에 작가가 표현하려던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인 갑부역할을 했던 양가휘를 나는 거대자본의 표상으로만 봤습니다. 실제적으로는 나약하고, 소심하며, 수줍음 많이 타는 겁쟁이 사내일 뿐이었네요. 오히려 제인마치가 표현한 어린 연인는 훨씬 자유롭고 강인한 여인이었습니다. 마치 뒤라스 본인처럼 말입니다. 요즘 창작이라는 작업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낯설고, 정신적인 분열로만 보이던 표현과 문예적 창출물이 어느덧 어떤 흐름(사조)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창작자의 색다른 시각과 생각으로 말입니다. AI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결국은 남들이 해본 적인 없는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에서 황갈색을 발굴했던 변시지화가나 시점을 초월해 마치 70대 노인이 15세 연인의 시점으로 생생하게 스토리를 표현해 나가고 있는 뒤라스처럼 나도 나만의 시선과 감각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나타내고 싶은 대로 나를 나타낼 수 있는 그녀처럼 나도 누군가의 연인으로 남겨지는 기질을 익히고 싶습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