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안개의 서재_3
근래 서점을 강타하는 도서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소설을 펼쳐 들었습니다. '스즈키 유이'라는 2001년생 일본 신예작가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입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책의 후면에 추천사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세대에 파우스트의 아쿠타가와상을 "계획한 것보다 빨리" 받아버린 탓에, 23세에 그 상을 받은 선배들과 공통점이 생긴 그의 운명을 축하하며 이렇게 적어보자 '오에 겐자부로, 히라노 게이치로, 그리고 스즈키 유이' - 신형철 (문학평론가)
Love does not confused everything, but mixes _ Goethe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_ 괴테
결혼 25주년 기념식사를 하던 식당에서 디저트로 나온 홍차의 티백 꼬리표에 달린 문장이 바로 위의 문장입니다. 이 문장의 출처를 찾는 괴테 최고전문가 도이치의 '명언 찾기 여정'이 소설의 스토리입니다.
작가 '스즈키 유이'
2001년생의 일본 신예 작가 스즈키 유이(鈴木結)는 2024년 데뷔 후 첫 장편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로 2025년 제172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문학 샛별입니다. 세이난가쿠인대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 중이며, 고전과 독서에 깊은 관심을 가진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괴테 전문가 '도이치'
1999년에 나온 첫 도이치의 단독 저서 '괴테의 꿈-잼인가? 샐러드인가?'(하쿠가쿠칸)에서는 괴테가 남긴 두 가지 경구가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합니다.
세계는 죽이나 잼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딱딱한 음식을 씹어야 한다. - <격언풍으로>에서
세계는 말하자면 안초비 샐러드다. 모든 것을 하나로 뒤섞어 먹어야 한다. - <비유적 및 경구풍으로>에서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대사 "자, 들어보시오, 나는 수천 년 동안이나 / 이 세계라는 딱딱한 음식을 씹어왔지만 /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여정 중 / 이 오래된 빵효모를 소화한 자는 여태까지 한 명도 없었습니다. / 거짓말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 우주라는 진수성찬을 소화할 수 있는 건 / 오직 신 뿐입니다.(1776-1781)를 인용하며, 괴테는 인간이 그 한계로 인해 세계를 샐러드적으로 이해하고 구성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잼적 세계의 이해를 신에게 맡겼다고 했다. 마지막은 "어쩌면 그 이상은 시적 차원의 틈새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마무리했다.
도이치는 이 서로 다른 두 세계관을 각각 '잼적 세계' '샐러드적 세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잼적 세계란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 상태, 샐러드적 세계란 사물이 개별적인 구체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책의 제목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말은?
도이치는 유학시절 독일인 친구 요한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독일 사람은 말이야"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둬, 왜냐하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거든"
그 이후 도이치와 요한 사이에는 "괴테가 말하기를"을 말의 앞뒤에 붙이는 것이 둘만의 농담이 되었다. 도이치가 오래된 독일어 문헌 독해로 머리를 감싸 쥘 때면 요한이 "괜찮아. 괴테도 말했잖아. '신은 스페인어로, 여자는 이탈리아어로, 남자는 프랑스어로, 말(馬)은 독일어로 이야기한다'라고. 말(馬)이 할 수 있는 걸 네가 못할 리 없지"하고 격려해 주었고, 식당에서 끔찍하게 맛없는 로트 그뤼체가 나왔을 때는 "'아침은 황제처럼, 점심은 왕처럼, 저녁은 가난뱅이처럼 먹는다', 이건 괴테도 했던 말이지"하고 불만을 삭였다.
등장인물, 도이치 아내 아키코, 딸 노리카, 그리고 쓰즈키
아키코는 도이치의 스승 마나부의 둘째 딸로 오래전부터 도이치를 눈여겨본 마나부가 아들과 같은 수제자 도이치를 곁에 두기 위해 사위로 삼게 되었는데, 특별히 두드러진 성격이 드러나지 않은 아키코는 도이치를 남편으로 잘 보필하고, 소소하게 정원을 가꾸거나, 조그만 화분을 키우거나 하버리엄(보존 기능이 있는 특수 용액에 식물을 담가 보관하는 것), 테라리엄을 만드는 유튜브 시청 정도로만 행복을 느끼며 사는 인물입니다.
외동딸 노리카는 영문과 학생으로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그 나이의 발랄함이 두드려져 보이는 아가씨로 도이치의 수업을 듣는 학생 중 쓰즈키라는 청년과 교재 중인 사실이 나중에 밝혀집니다. 쓰즈키는 지도교수 시카리 선생의 제안으로 도이치에게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논문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되는데 마무래도 소설 속 쓰즈키는 이 책의 저자인 스즈키 유이 본인의 분신임이 분명합니다.
혼동(Confused)
소설 속에는 '혼동'을 묘사하는 표현이 여러 군데 등장합니다. 도이치가 친구교수인 시카리나 나중에 사위가 될 제자 쓰즈키와 함께 가게 된 술집이름이 '잡탕'입니다. 그리고 이 술집 오리니널 메뉴가 '잡탕 칵테일'입니다. 물론 이 이름도 특이하고 희뿌연 색깔에 뭐가 들어간 건지 알 수 없는 술을 도이치는 즐겨 먹습니다. 다른 어떤 가정보다도 행복해 보이는 도이치 가족들의 생활 패턴을 좀 들여다보면 희미하게 혼동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교회 꽃봉사를 자원하고,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 아키코에 대해 이런 하잘것없는 것이 약간은 못마땅스러운 남편 도이치, 딸이 아버지의 전공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밤마다 운동을 한다고 나갔다가는 뒤늦게 돌아온 모습을 의심하는 아버지 도이치, 이 평범한 엘리트 가정에도 보이지 않는 균열과 혼동이 드러납니다.
혼연일체(Mixed)
도이치는 꿈속에서 그의 학문을 이끌었던 철학자들을 만납니다. 헤겔, 에커만, 리머, 폰 뮐러, 그리고 꿈에서도 선생님이라고 호칭했던 '괴테'에게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똑같군. 여러 가지 상태가 항상 반복되지. 어느 민족이건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살고, 사랑하고, 느끼고 있어.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
"실생활에서 따오든 책에서 따오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제대로 사용했는지 아닌지, 그건만이 중요하지!"
"그에게 있었고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없는 건 사랑이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방언으로 말을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나의 파우스트를 구원할 열쇠도 거기에 있다네"
'모든 것을 말한 괴테'와 '무엇인가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TV방송용 원고'에 도이치는 티백 꼬리표에 실린 문장을 아래와 같이 살짝 집어넣습니다. 그리고는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파우스트> 마지막 장에서는 모든 우주의 시공간이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각 세계는 저마다의 특성을 잃지 않지요. 그것이야 말로 괴테의 꿈이었습니다. 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Love does not confused everything, but mixes_ Goethe"
출처
TV방송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라는 말을 괴테가 했다"라고 말 한 도이치는 집에 돌아와 두통으로 쓰러지고, 딸과 아내는 도이치가 결혼기념일 식사 이후 이 문장의 출처를 찾기 위해 악몽까지 꿨다는 사실을 알겠됩니다. 그녀들은 곧 티백 회사까지 확인해서 이 말이 딸 노리카가 운영하는 인터넷 명언 사이트 'Tree of Words'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출처: 조사 중'이라는 꼬리표를 달리면서... 노리카와 그녀의 남자 친구 쓰즈키의 적극적인 추척으로 이 문구의 발원지는 '베버'라는 사람의 블로그였는데, 베버는 아내 아키코가 즐겨보는 유튜버임을 알게 되고, 이들은 베버 씨를 만나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갑니다. 베버 씨가 갖고 있는 낡은 편지, 거기에는 아래 문구가 써져 있었으며, 베버 씨의 친할아버지의 할머니가 괴테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더불어 알게 됩니다.
지난번 꽃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소 특이한 모양이지만 향기는 분명 장미와 비슷하니 참 신기했습니다. 친구에게 보여주자 이런 것도 꽃이냐며 놀라더군요. 허지만 실로 조물주의 사랑은 하나의 꽃에서 모든 꽃을 싹트게 했습니다. 그걸 알면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혼란 없이 뒤섞이리라 믿을 수 있습니다. 괴테
이 문장을 베버 씨는 '조물주의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 없이 뒤섞는다'라고 요약했고, 이걸 본 중국인 명언 사이트 운영자가 조물주를 빼고 영어로 옮겨 적은 것을 미국 티백회사에서 발견해 자사의 티백 꼬리표에 실은 것임을 최종 확인하게 됩니다.
감상평
240여 페이지의 중편소설이 서점가에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봅니다. 24살, 1년에 1천 권의 책을 읽는다는 신예작가 스즈키의 엄청난 인문학적 지식과 고/현대를 잇는 철학적 통찰에 톡톡 튀는 Z, 알파세대의 웹소설적 개성적인 감각이 믹스(Mix)된 느낌으로 만들어낸 정형화되지 않은 플롯과 스토리 전개가 읽는 내내 책에서 손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주 희한한 스토리 '티백 꼬리표에 실린 명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혼동'은 '정리'가 되어가고,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철인들의 말은 그 시대나 상황에 따라 적절히 수정되고, 다듬어져 왔음을 알게 됩니다. 또 아무리 많은 지식과 현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이, 가족의 시선을 외면해서 얻어지는 명언이란 공허한 꽹과리와 같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십 대 젊은 지성은 말합니다. 사랑은 혼동이 아니고, 혼연일체 되는 것이고, 우리가 내뱉은 말은 전부 미래로 향해 던저지는 기도인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