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쾰른 :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넣어봤어 1

비스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20

by chill십구년생guy


세계 최고의 게임 축제는 뭐다?
바로 게임스컴!



흔히 ‘세계 3대 게임쇼’라 불리는 무대가 있다. 일본의 도쿄 게임쇼, 미국의 E3, 그리고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게임스컴(Gamescom)이다. 비록 E3는 2023년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남은 두 행사는 여전히 뚜렷한 개성을 뽐내며 업계의 거대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게임스컴은 단연 압도적인 규모와 국제적 위상을 자랑한다. 도쿄 게임쇼가 일본 특유의 색채를 농밀하게 담아내고, E3가 북미 시장을 대변하는 화려한 창구였다면, 게임스컴은 말 그대로 전 세계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거대한 용광로다. 이 시기 쾰른에는 유럽 전역은 물론 아시아와 중동까지, 각국의 개발사와 게이머, 투자자와 미디어가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집결한다.


전시장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풍경은 지금도 뇌리에 또렷이 박혀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전시장을 가득 메운 인파, 각양각색의 언어로 터져 나오는 환호와 질문들. 인기 부스 앞에는 몇 시간의 기다림을 기꺼이 견뎌내는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었다. 게임이라는 공통 언어로 연결된 세계가 국경을 넘어 한 공간에서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현장이었다. 게임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서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 그 자체였다.



KakaoTalk_20250528_113701378_04.jpg 게임스컴의 인파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2018년 8월, 우리도 그 뜨거운 한복판에 서 있었다. 개발 중이던 프로젝트 ‘갤럭시티’를 글로벌 업계 관계자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고, 날 것 그대로의 반응을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스타트업에게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 단계는 단순한 개발 과정을 넘어선 생존의 문제다. 우리가 공들여 만든 것이 시장에 통할지, 우리가 설정한 방향이 대중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냉혹한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스컴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전장이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생생한 피드백 속에서, 우리가 땀 흘려 일군 결과물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확인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디로 가야하오



당시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영국과 아랍에미리트 출장을 마친 뒤 주력 프로젝트인 ‘갤럭시티’ 개발에 본격적으로 가속을 붙였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다. 분명 모두가 밤낮없이 매달리고는 있는데, 정작 어디에 힘을 줘야 할지, 무엇을 핵심 재미로 삼아야 할지 누구 하나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손만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갤럭시티’는 ‘하나의 연결된 세계’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사용자들이 온라인 가상 로비에 접속해 다양한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오가게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구도는 그럴듯했지만, 정작 그 그릇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VR 테마파크에서 반응이 좋았던 야구, 모두가 열광하는 축구, 두바이 출장에서 영감을 얻은 고공 체험, 그리고 우리가 즐겨 하던 서바이벌 슈팅까지. 온갖 아이디어를 시험 삼아 구현해 붙여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뚜렷한 줄기가 되지 못한 채, 프로젝트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렇다고 멈춰 서서 고민만 할 여유는 없었다. 정부 과제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였기에 늦어도 11월까지는 프로토타입을 완성해 마켓에 런칭해야 했다.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시한폭탄 같은 일정 속에서 지연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그즈음, 지난 봄에 접수해두었던 공고 하나가 떠올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게임스컴 2018’ 참가 기업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해외 시장의 반응에 대한 막연한 기대—혹은 맹신에 가까운 믿음—를 품고 있던 나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었다. "차라리 현장에서 직접 유저들의 반응을 확인해보고, 가장 호응이 좋은 콘텐츠를 주력으로 밀어붙이자"는 제안에 멤버들도 기꺼이 뜻을 모았다.



KakaoTalk_20250528_113701378_03.jpg 형제의 나라를 거쳐서 1년만에 독일로



정답을 확신할 수 없었던 우리에게 게임스컴은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거대한 시험대였다. 2018년 8월, 나와 친구는 이것저것 다 섞어 넣은 ‘짬뽕’ 같은 임시 빌드를 노트북에 챙겨 들고 터키항공에 몸을 실었다. 이스탄불을 경유해 독일 쾰른으로 향하는 길, 우리에겐 확신보다 간절함이 더 컸다.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쾰른 메세(Koelnmesse) 근처에 숙소를 잡은 건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게임스컴 기간의 쾰른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로 인해 호텔 가격이 평소의 서너 배, 심지어 열 배까지 치솟는 무법지대였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가까스로 둘이 묵을 방을 구해 안도했으나, 그 안도는 객실 문을 여는 순간 산산조각 났다.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숙소의 설명은 내 상상보다 훨씬 더 도전적인 의미였다. 한 사람은 일반 침대를, 다른 한 사람은 위태로워 보이는 간이 2층 침대를 써야 하는 불편함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화장실의 구조였다. 화장실 벽 전체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렴풋이 실루엣만 비치는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투명함 그 자체였다. 일주일간 그 좁은 방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본의 아니게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다. 누군가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남은 한 명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시선을 반대편으로 고정했고, 고요한 방 안에 민망한 소리가 새 나가지 않도록 일부러 크게 음악을 틀거나 휴대폰 화면에 코를 박고 어색함을 견뎌냈다.


돌이켜보면 콘텐츠의 시장성을 테스트하기도 전에, 이 기묘한 숙소에서의 생활 자체가 우리에겐 인내심을 확인하는 첫 번째 시험대였는지도 모르겠다.



틈틈이 시내 관광



숙소에 짐을 풀고 행사장에 들러 부스 상태를 간단히 점검한 뒤, 남은 오후 시간은 천천히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폭풍전야 같은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기 전, 쾰른이라는 도시가 가진 고유의 공기를 조금이나마 호흡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라인강을 향해 걷다 우연히 마주친 전망대, ‘쾰른 트라이앵글(Cologne Triangle)’에 올랐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쾰른의 전경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도시의 핏줄처럼 흐르는 강을 중심으로 낮게 깔린 건물들이 펼쳐낸 풍경은 화려하진 않지만 차분하고 단단한 인상을 주었다.



KakaoTalk_20250528_113701378_02.jpg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쾰른 대성당은 매일 밤 술에 취해 길을 헤멜때마다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트램 철로 옆 인도를 따라 호엔촐레른(Hohenzollern) 다리를 건넜다. 다리의 철망 울타리에는 빈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랑의 자물쇠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문득 서울 남산의 풍경이 겹쳐 보였다. 지구 반대편 독일 땅에서도 이런 투박하고도 간절한 약속의 흔적들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문화와 언어는 달라도 소중한 것을 붙잡아두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어디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다 건너자 쾰른 중앙역이 나타났고, 그 옆으로 위용을 자랑하는 쾰른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의 상징이자 압도적인 랜드마크라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불과 두 달 전, 두바이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마천루들을 질리도록 보고 온 탓도 있었고, 고딕 양식의 성당은 유럽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마음은 이미 성당의 첨탑보다, 내일 아침 전시장 부스에서 마주하게 될 글로벌 유저들의 표정에 더 쏠려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동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친구와 함께 중앙역 광장 한편에 자리한 ‘가펠 암 돔(Gaffel am Dom)’으로 향했다. 쾰른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비어홀 중 하나로, 한국에서 일정을 짤 때부터 반드시 들르겠노라 점찍어 두었던 곳이다.


이곳의 지역 맥주인 ‘쾰쉬(Kölsch)’는 ‘슈탕에(Stange)’라 불리는 좁고 길쭉한 원통형 잔에 담겨 나오는 것이 정석이다. 한 잔에 $200$ml 남짓한 적당한 양이라 단숨에 들이켜기에도 그만이었다. 잔을 들어 입술을 대니, 잔 끝의 얇고 예리한 유리의 감촉과 그 주위를 감싼 조밀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목을 타고 넘어가기도 전에 이미 오감이 만족스러워지는 술이었다.


문득 1년 전 가을, 베를린에서 학센을 곁들여 쾰쉬를 처음 맛보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1년이 흐른 지금, 마침내 본고장의 심장부에서 다시 잔을 기울이고 있다니. 아까 대성당을 마주했을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묵직한 감동이 시원한 맥주 한 모금과 함께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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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펠 쾰쉬는 이 날을 계기로 내 최애 독일 맥주로 등극



쌉싸름한 쾰쉬 한 잔에 장거리 이동의 피로와 내일에 대한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다. 본격적인 게임쇼의 서막을 앞두고, 묘하게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 도시에서 우리는 조용히 건배를 나눴다. 과연 전 세계 게이머들은 우리의 ‘짬뽕 빌드’에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까. 이제 진짜 무대가 열린다는 사실에 가슴이 기분 좋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음편, '독일 쾰른 :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넣어봤어 2' 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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