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난창 : 아무도 없는 도시속에서 1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 26

by chill십구년생guy


보아라
이것이 중국의 1.5선이다



2017년, 우리는 게임회사에서 VR 전문 회사로 사업의 키를 꺾었다. 당시 업계에서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나라는 단연 ‘중국’이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를 등에 업고 컨텐츠를 개발해 현지 테마파크에 납품하기만 하면 단숨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마치 비즈니스의 정석처럼 퍼져 있었다. 한국의 VR 시장은 이제 막 첫발을 뗀 단계였지만, 중국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상업화가 궤도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어서와 난창은 처음이지?



그로부터 1년 뒤인 2018년 가을, 나는 처음으로 여행이 아닌 ‘비즈니스’를 위해 중국 땅을 밟았다. 장시성 난창시에서 개최된 ‘2018 세계 VR 산업 대회’에 전시 참가사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마침 잘됐다 싶었다. 일본에서 목격한 싸늘한 전조가 과연 이곳에서도 유효할지, 아니면 풍문으로만 떠돌던 그 화려한 ‘중국몽(中国梦)’이 실재하는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으니까.



소문은 사실이었다



도쿄 게임쇼를 다녀온 이후, 내 마음은 꽤나 절박한 상태였다. 오프라인 VR 콘텐츠 개발을 이대로 밀고 나가야 할지, 아니면 과감히 키를 꺾어 온라인 분야에만 화력을 집중해야 할지 결론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 8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세계 VR 산업 대회’ 참가 기업을 모집할 때 신청해 둔 것이 떠올랐다. 중국의 실체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하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에서 난창까지는 직항 노선이 없었다. 우리는 중국남방항공을 이용해 중간에 한 번 경유하는 일정을 택했다. 중국 항공사를 이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은근히 호기심이 생겼다. 특히 중국 항공사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흥미로운 소문이 하나 있었다. 비행시간이 아무리 짧아도 무조건 기내식을 내어주지만, 그 맛이 유난히 형편없기로 유명하다는 점이다.



이럴거면 차라리 주지를 말아



첫 번째 비행에선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임에도 햄버거를 흉내 낸 샌드위치가 랩에 칭칭 감겨 나왔다. 모양새는 영 어설펐지만 의외로 맛은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하지만 문제는 두 번째 비행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고기 덮밥이 등장했는데, 한입 먹자마자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졌다. 함께 나온 반찬 역시 특유의 지독한 향 탓에 도저히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직감했다. 이번 여정에서 ‘먹는 즐거움’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공산당은 무서워



난창 창베이 공항에 발을 내딛자마자 ‘세계 VR 산업 대회’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기세로 밀려왔다. 수하물을 찾으러 가기도 전부터 행사를 알리는 대형 배너와 환영 문구들이 공항 곳곳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서자 분위기는 한층 더 노골적이었다. 건물 외벽부터 버스 정류장까지,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온통 VR 홍보물로 뒤덮여 있었다. 단순히 행사의 규모가 큰 것을 넘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홍보판으로 개조해버린 듯한 광경이었다.


주최 측이 제공한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난창은 중국 내에서 이른바 ‘1.5선 도시’로 분류되는 곳이다. 완전한 1선 대도시는 아니지만, 산업과 인프라 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룬 도시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마주한 풍경은 예상과 사뭇 달랐다. 도로는 광활할 정도로 넓고 매끈하게 닦여 있었지만, 그 위를 달리는 차나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주택가와 상업지구가 묘하게 듬성듬성 배치된 모습은 발전된 대도시라기보다, 이제 막 구획 정리를 마친 신도시나 한적한 변두리 같은 생경한 느낌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보물만큼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전시회를 알리는 현수막과 기괴할 정도로 거대한 VR 조형물, 그리고 화려한 LED 스크린 광고들이 적막한 거리 곳곳을 지키고 있었다. 이번 행사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열린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막상 현장에서 그 밀도를 체감하니 경외감을 넘어 살짝 공포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사회주의 국가의 행정력이란 것이 특정 목적을 위해 가동될 때, 얼마나 일사불란하고 압도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여기 아무도 없나요



전시회가 열리는 국제 컨벤션 센터에 먼저 도착했다. 행사장 주변으로는 하늘 높이 솟은 고층 빌딩들과 깔끔한 외관의 아파트 단지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지만, 기이할 정도로 정막이 감돌았다. 이 정도 규모의 대형 행사가 열리는 도심의 중심부라면 응당 느껴져야 할 활기는커녕, 오가는 사람조차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행사장 내부로 들어가 공동관에 설치된 우리 회사의 부스를 확인했다.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짜임새가 훌륭했으며, 부스 자체의 마감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관람객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공간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널찍한 장소가 제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의구심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는 바로 다음 날 깨닫게 된다.



선생님, 부스가 너무 큰 것 같아요



부스 확인을 마치고 주최 측에서 마련해 준 숙소로 이동했다. 명색이 5성급 호텔답게 외관부터 화려함의 극치였다. 압도적인 높이의 천장과 번쩍이는 대형 조명,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조형물들이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겉보기엔 명실상부한 최고급 호텔의 위용이었으나, 체크인을 마치자 묘한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로비에는 투숙객이 거의 없었고, 복도에는 적막함만이 흘렀다. 마치 이 거대한 성에 우리 일행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려 잠시 밖으로 나섰지만, 식당을 찾는 일조차 녹록지 않았다. 번화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거리에는 간판도, 행인도 없었으며 가게들의 불빛조차 꺼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에서는 구글맵이 먹통이라 길을 찾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결국 탐방을 포기하고 호텔 지하 식당에서 평범한 중국 요리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폭풍 전야 같은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내일의 본 행사를 기약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고



다음 날 아침, 간단히 조식을 마치고 전시장으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2018 세계 VR 산업대회’의 막이 오르는 날이다. 전날 목격했던 그 황량한 거리와 적막한 분위기가 뇌리에 박혀 있었기에, 솔직히 행사에 대한 기대감은 거의 없었다. ‘이 외진 곳까지 누가 전시를 보러 오겠어? 참가사들끼리만 북적이다 끝나는 거 아냐?’ 그런 냉소적인 걱정을 품은 채 버스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시장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내 예상을 비웃듯 완전히 뒤집히기 시작했다. 멀리서부터 검은 점들이 꿈틀거리며 모여드는 게 보이더니, 이내 거대한 구름떼 같은 인파로 불어났다. 어제만 해도 텅 비어 광활하기까지 했던 그 넓은 광장이, 어느새 발 디딜 틈 없는 사람의 바다로 변해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솟아난 거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마치 지류가 터진 것처럼 지하에서 사람들이 무섭게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살려주세요



게임스컴이나 도쿄 게임쇼처럼 수십만 명이 운집하는 글로벌 행사를 여러 번 겪어봤지만, 이건 그곳들과는 결이 전혀 다른 밀도와 분위기였다.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열기와 묘한 혼란이 뒤섞인, 생경하면서도 압도적인 군중. 내 생애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참가사 일행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당혹 섞인 헛웃음을 지었지만, 그중에서도 내 속은 가장 처참하게 뒤엉키고 있었다. 사실 이번 출장은 ‘중국 시장 조사’라는 명목하에 적당히 부스를 비워두고 돌아다닐 심산이었다. 그래서 당당하게도(?) 단 한 명의 직원도 동행하지 않은 채 나 혼자 이 먼 곳까지 왔던 것이다.


이 인파를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상황 파악이 되자마자 등줄기에는 서늘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다음편, '중국 난창 : 아무도 없는 도시속에서 2' 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 여행자의 세계출장 견문록'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keyword
이전 25화일본 도쿄 : 쑥스러운 첫경험과 합리적 의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