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안은 사람들로 우글우글하다. 그중 몇몇만이 아는 사람이고, 나머지는 얼굴이 없다. 자욱하게 연기가 낀다. 고기가 지글지글 익는다. 기름이 사방에 튀고, 사람들은 열광한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고기 익어가는 불판 옆에서는, 언제나 소외감에 사로잡힌다. 가끔은 그냥 눈물이 날 것 같다. 울면 이상할 것 같아서 꾹 참을 뿐이다. 사람들은 연신 건배를 해댄다. 나는 맥주를 좋아하므로 그건 좋은 점이다.
"성공의 연극을 위하여!"
뒷문에서 그가 들어온다. 북실한 머리칼에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그는, 키가 매우 크다. 그의 옆구리에는 회색 털 뭉치가 끼어 있다. 그는 나를 찾고 있다. 왼 손을 들어 그의 이름을 부른다.
"마리!"
그는 금방 알아보곤 다가온다. 다시 보니 회색털뭉치는 커다란 회색토끼다. 털이 보드랍고 동시에 매우 튼튼해 보이는 커다란 토끼. 토끼는 빨간 보석 같은 눈을 깜박거리며 얌전히 안겨있다. 마리가 악수를 청해서 두어 번 손을 쥐고 흔든다.
"선물이야."
그가 내미는 토끼를 받아 든다. 묵직한 무게와 따끈한 기운이 팔뚝에 전해진다. 동시에 뜨거운 숨이 느껴진다.
"아, 늘 토끼를 기르고 싶었는데."
자욱한 연기 속에서 토끼와 나는 서로 뺨을 맞대고 있다. 토끼의 수염 가닥이 씰룩거린다. 마리는 돌아간다. 그가 원래 있던 곳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가게를 빠져나간다. 이제 열두 시가 다 되었으니, 모두 집으로 가는 것이다. 나는 가게를 나서기가 두렵다. 올해 겨울은 정말이지 가혹하다. 눈이 그 몇 시간 사이 잔뜩 쌓였다. 흰 눈이 흩날리고 사람들은 각자의 겉옷에 아기처럼 매달려 바쁜 걸음을 한다. 나는 토끼를 더 꼭 안는다. 아주 오래전 얼어 죽고 만 나의 친구가 떠오른다. 그가 마리였는지 잠시 고민하지만, 겨울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담요로 회색 털 뭉치를 감싼다. 아, 나의 토끼. 이 회색토끼를 지킬 수 있다면.
가게를 나선다. 눈은 나의 얼굴을 가차 없이 때린다. 토끼는 나의 품 안에 있다. 택시가 도로 위를 달린다. 사람들이 길 가에 서서 차를 잡는다. 그들은 왼 손을 들어 올려 차를 잡는다. '잠시만요, 택시.' 하고 부른다. 나도 그렇게 한다. 크게 부르지만, 눈안개 속 부드럽게 퍼지는 택시의 야간 등은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간다. 버스는 한참 전에 끊겼다. 토끼의 호흡이 내 심장 바로 그곳에서 느껴진다. 나는 괜찮다고 중얼거린다. 친구들이 우르르 지나간다. 나는 그중 하나를 잡는다. 그와는 오래 보았다. 친구는 나의 안색을 살피곤,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한다. 그는 어플을 켜고 나는 그냥 서 있다. 토끼가 식어가고 있다. 언제나처럼 나는 그냥 서 있다. 할 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나는 우는 역할이다. 때때로 화를 내거나 희망적인 대사를 하기도 하지만, 나는 행복할 수는 없다. 비극적인 주인공 역할을 맡는 것에 기뻤던 적 없다. 나는 무언가 지킬 수 있는 역할이고 싶다. 연극따위는 그만두고 떠나고도싶다.
친구는 택시가 한 대도 잡히지 않는다며 떠난다. 토끼가 식어가고 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른다. 보드라운 회색 털이 점점 빳빳해진다.
"회색토끼야, 조금만 기다려. 곧 따듯하게 해 줄게."
아, 가게들은 하나 둘 문을 닫는다. 사람들은 많이 사라졌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저 모퉁이에 금색 전광판이 아른거린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토끼를 점점 더 강하게 껴안는데, 그것도 걱정스럽다. 망할 흰 눈은 멎지를 않는다. 웅성거리며 쌓여갈 뿐이다.
유일하게 연 곳은 금빛 내뿜는 영화관뿐이다. 아직 심야영화가 상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영화관 안은 그래도 좀 온기가 있다. 토끼가 너무 차가워서 내가 곧 죽을 것 같다. 나는 마리가 인형을 준 것은 아닌지 기억해 보려고 한다. 원래 토끼가 살아있었나? 영화관 중앙에 티켓 판매대와 스낵 코너가 있다. 매대 안에서 아주 친절해 보이는 직원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스낵 코너에는 거대한 팝콘 기계가 있다. 팝콘은 거의 다 팔리고 조금 남아있는 것 같다. 기계에서 이상한 전자음으로 다정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나는 매대로 간다.
"저기, 제 토끼가 얼어서 그러는데요."
"네?"
그는 앞으로 고기를 쭉 빼서 내 얼굴을 살핀다. 아주 보기 안 좋을 것이다.
"제 토끼가 얼어서요, 같이 잠시만 들어가 있어도 될까요?"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엉망진창의 손님과, 살짝 나와있는 토끼의 꼬리를 번갈아 쳐다본다.
"기계 속에요? 이건 파는 거라서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게... 살아있는 게 여기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나는 미친 사람처럼 운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내가 안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미 바깥공기 때문에 차갑다. 토끼만이라도 넣어달라고 빈다. 이대로 나의 털 뭉치를 잃을 것만 같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