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민 Oct 08. 2020

탄산음료를 만드는 데 여성들이 사용된다!



 


 소란한 밤이다. 개미떼 같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다. 절반은 미디 드레스를 입고 있고, 절반은 바지를 입고 있다. 나는 맨 뒤쪽에서 아무 난간에나 걸터앉아 광장의 중앙을 응시했다. 눈에 온 신경을 집중해도 재식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가 그는 얼굴이 작은 편이었다. 공중의 대형 스크린으로 눈을 돌리자 그의 뱀 같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삽시간에 찾아온 정적.


“자. 이번 달도 열 세명의 여성만이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습니다.”


우리는 매달 입사하는 열 세명의 얼굴을 미디어에서 볼 수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름다운 여성들. 손에는 탄산음료를 들고 있다. 왕왕 그들을 부러워하는 소녀들이 있었으나 제 발로 회사에 지원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회사 안으로 들어 간 사람들은 다시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푸른 연기가 영원히 뿜어져 나오는 탄산음료 공장은 모두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자원하실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소문에 의하면 자원하여 입사하는 여성은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자원한 탄산음료는 더욱 질이 좋아서 매우 비싼 가격에 팔렸다. 탄산음료는 딱 한 번 마셔봤다. 아주 혀가 괴로웠던 것을 떠올리며 입술을 만지작거리는데-


“내가 자원하겠습니다”


원이 손을 들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나도 그를 쳐다봤다. 멀지 않은 자리에서 원의 옆얼굴이 보였다. 생각을 알 수 없는 그의 표정. 소곤거림. 웅성거림. 곧이어 떠나갈 듯한 박수소리. 재식이 입을 열었다. 


“세 달 만에 지원자가 나왔군요. 아주 좋은 날입니다.”


원은 참 예뻤다. 세 살에도, 여섯 살에도, 학교 갈 나이에도, 지금도 정말 예뻤다. 그는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하나로 묶고, 하늘색 미디 드레스를 입고 다녔다. 그는 책을 많이 읽고 일상적으로 토론을 했다. 잘 웃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내 생각에는-‘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했다. 

일곱 살 때 원과 나는 내기를 했다. 우리 앞에는 음료가 한 병 놓여 있었다. 원은 어쩌다가 얻었다고만 했다. 그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마 탄산음료인 것 같다고 속삭였다. 원을 아끼는 마음과 미지에 대한 호기심, 두려움이 어린 마음을 잔뜩 흥분시켰다. 원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는 사람이 이 액체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일곱 살은 가위바위보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나이니까. 내가 졌고, 나는 그것을 마셨다.


“원! 원아!!!”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사람들의 박수소리에 들리지 않았다.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원은 뒤돌지 않았다. 두 명의 경호원이 원이를 중앙으로 데려갔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어제 만났을 때만 해도 원은 아무 낌새가 없었는데. 곧 원은 지하계단으로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들을 제치고 인파의 중간까지 와 있었다. 재식이 입을 열었다. 삽시간에 찾아온 정적.


“자, 다음 지원자 있습니까?”


자원자는 없었다. 재식은 소형 카메라를 날려 여성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금방 열한 명의 여성이 지목되어 경호원에 의해 이송되었다. 모두 예쁘지는 않더라도 하나같이 키가 작고 살집이 있었으며 건강한 여성이었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왜 원은 자원했는가? 소형 카메라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주위의 사람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나는 왼 손을 높이 들고 재식에게 말했다.


“저, 제가 자원하겠습니다!”


소곤거림, 웅성거림, 그리고 박수소리가 차례로.

지하실은 길고 습했다. 직원 두 명이 길을 안내했다. 어젯밤에 원과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식료품점에서 신선한 채소를 사 왔다. 우리는 당근과 알배기로 요리를 해 먹었다. 평소와 같이 뉴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식탁을 정리했다. 그리고 오늘, 원이 자원했고, 나는 그를 따라 자원했고… 정리가 되지 않았다. 원을 데리고 이 곳을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세로로 긴 문에 다다랐을 때, 무전 소리가 들렸다.


‘…A-2동… 지원자… 스파이더… 다시 A-2동 자원… 스파이더...’


왼쪽에 서있던 남자가 무전기를 꺼내 알았다는 식의 답을 했다. 문의 셔터가 천천히 올라갔다. 


푸른 복도에는 수많은 유리방이 있었다. 더러운 내부가 훤히 보였다. 각각 1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한쪽 벽에 대여섯 명이 있었다. 사람들은 기괴한 모양새로 묶여 있었다. 만세 자세를 한 상체는 바닥에 대고 다리는 벽에 등과 수직방향으로 세운 채였다. 군데군데 빈자리와 자세가 흐트러진 사람들이 보였다. 서로 포개어 있는 사람들은 아마 죽은 것 같았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중에는 아주 작은 아이들도 있었다. 눈동자를 굴리며 원의 얼굴을 찾으려고 했다. 곱슬머리를 볼 때마다 심장이 요동쳐 왔다. 원은 없었고, 복도 끝에서 또 다른 셔터가 열렸다. 

직원 중 왼쪽 사람이 정중하게 말했다.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하나 잡으라고 했다. 잘 개켜진 옷을 건네고 그들은 왔던 길로 돌아갔다. 시체가 많은데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십 분쯤 원을 찾으며 돌아다녔을 때, 천장에 푸른색 경고표시가 뜨며, 사이렌이 울렸다. 나는 급히 유리방으로 들어가 흰 옷으로 갈아입고, 자리를 잡았다. 내 옆에는 흑인 아이가 있었는데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두 다리는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뻗은 두 팔은 이상하리만큼 작았다. 일곱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대충 그 아이가 묶여 있는 모양대로 허리를 묶었다. 증기와 함께 유리방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숨 참아!!”


귀까지 액체에 잠겼을 때, 저 건너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숨을 참았다. 눈을 꽉 감고, 입을 꾹 닫았다. 액체는 방의 천장까지 차오를 것처럼 끝없이 뿜어져 나왔다. 허리를 헐겁게 묶었는지 엉덩이가 들썩이며 떠오르려고 했다. 숨을 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마 후, 액체는 배수구를 통해서 빠져나갔다. 곧이어 직원들이 우르르 들어와 자세가 이상한 사람들과 반항하는 사람을 쏴 죽였다. 특등품은 안 될지라도 시체로도 탄산음료를 만들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내 앞에 선 한 직원이 상냥하게 말했다. 


“재식 부장이 자원자들은 묶인 다리 간격과 손 간격을 자유롭게 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나를 다시 묶고, 사라졌다. 나는 특등품의 탄산음료가 될 것이었다. 주기적으로 방 안에는 이상한 액체가 차오르고, 나는 숨을 참아야 했다. 정신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앞이 깜깜 해지는 것을 느꼈다. 원을 찾아야 하는데. 그도 나와 같은 처지일까? 바보 같은. 따라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 삼십 번째 숨을 참았을 때, 작은 진동이 울렸다. 그 진동은 일정 간격으로 울리며 점점 커졌다. 둥-, 퉁- 하고. 셔터가 열렸다. 정확히는 열린 것이 아니라 폭발했다. 원이 기계차에 탄 채로 달려왔다.


어딘가에서 숨을 참으라 외쳤던 그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나를 보고 웃을지 몰라도 그것은 사라진 어금니만큼의 웃음이다!!!” 


아침이 밝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