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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Nov 19. 2020

할아버지, 주식 사주세요.

[prologue]

한동안 불었던, 그리고 현재도 진행 중인 주식 열풍 이전, 딸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카톡과 친하지 않은 아빠가 유튜브 링크 영상을 보내셨다. 존리의 '사교육+주식'에 대한 영상이었다.


"OO이(조약돌의 딸)는 앞으로 키우면서, 너무 공부 공부하지 말아라. 너희 어렸을 때는 잘 모르고, 열심히 공부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면 성공인 줄 알았었지. 약돌이 너 키울 때는 이런 생각을 못 했다. 어찌어찌 적당히 공부시키고 적당히 대학 보내면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너를 보니 지금도 맨날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한다 하고, 잘 놀지도 못하는데 네가 지금 행복하니? (약돌 의문의 1패..) OO 이는 그냥 많이 놀게 하고, 행복하게 키우렴! 그런 의미에서, 아빠가 앞으로 OO이 생일이나 설날 때 주는 용돈 등은, 주식 계좌에 넣어 주려 한다. OO이 주식 계좌 만들어 오렴. "


"조약돌 뭐 하니?"라고 물어보시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수업 준비해요, 공부할 게 있어서요."

라는 대답을 드리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게 많이 안타까우셨나 보다.




사실 그 영상을 처음 받았을 때, 끝까지 시청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다. 사교육비와 주식투자비를 대치점에 놓고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논하는 것이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던가 보다.


 "네, 알겠어요. 나중에 시간 되면 볼게요. 그리고 OO이 주식 계좌는 나중에 시간 되면 만들도록 할게요." 아빠한테는 이렇게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또 한참이 흐른 후에야 딸의 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또 몇 년이 흐른 후에야 주식 관련 영상도 보고, 책도 찾아 읽었다. 본질은, '사교육비 무조건 비판'이라기보다는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과, '자본가로서의 삶에도 관심을 갖아라'이다.


'창의성을 없애는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영상 속 화자의 주장대로, 주입식 교육은 첫째, 남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하며, 둘째, 홀로 서지 못하게끔 한다.


나는 창의성을 키워 주는 교육을 해왔는가,
반대인 주입식 교육을 해왔는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오랜 기간 수험영어-실용영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수업해 왔다. 이 두 영역이 양 극단에서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도 자신의 목표에 따라서 부드럽게 '턴' 해야 한다.


수험 영어 강사로서는 주입식 집중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정해진 기간 안에 점수를 만들어 주는 것이, 곧 강사의 실력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기출 분석을 통해, 시험에 나올 요점만 콕콕 집어서, 정해진 기간 안에 학생들의 체화를 돕는 것이 수험 영어 강사의 숙명이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많은 시험 영어(ex. 수능, 내신, 토익 등의 공인인증시험)가 이 영역에 해당된다. (참고로, 수능에 관해서라면, 다른 기회에 더 심화된 글을 올리겠다. '영어로 된 국어 시험' 과도 같으며, 수능 영어 1등급에 수월하게 도달하는 학생들은 유년기의 독서가 큰 역할을 한다.)


실용 영어 강사로서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영어의 4 영역(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고른 발달이 목표라면, 일상에 영어가 들어와 있어야 한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즐기면서 지속하되, '비약적 실력 향상을 원한다면 집중적으로 공부하기'도 요구된다.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이라 비판하고, 동의하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부모들은 '남들도 다 하니까. 안 하면 우리 아이만 뒤쳐지니까. 그리고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좋은 성적을 받기 힘들고, 그렇게 되면 대입에 지장이 생기니까.'이다. 대입을 목표로 한다면, 점수가 필요하고, 점수를 받으려면 시험 특성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각 시험의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시험을 직접 치러 봤고, 가르쳐 봤고, 기출을 분석해 온 교사 or 강사이기 때문에, 공교육 or 사교육의 안내가 필요하다.


교사 or 강사로서는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입시)가 바뀌지 않았고, 그에 따른 평가 방식도 아직까지는 '줄 세우기'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입에서 수시/정시 비중을 둘러싼 잡음이 나오는 것만 봐도, 우리 교육은 현재 과도기이다.


강사이면서 동시에 부모인 나로서는, 4차 산업혁명을 거친 미래 시대가 아이의 고유성과 개성을 존중해 주는 방향이기를 바란다. 그로 인해 사교육의 입지가 좁아진다 하면, 그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내 딸 사교육은 최대한 뒤로 지연시키고자 한다. 어린 시절에는 가능한 흙을 밟으며 뛰어놀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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