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책길에 나만의 카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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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세계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교토의 명승지 '청수사(기요미즈데라)'탐방에 나섰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다.
너무 사람이 없어 길치인 나는 어느 쪽이 청수사인지 고요한 같은 골목 안을 계속 맴돌고 헤맨다.
그렇게 청수사 주변을 자의반 타의반
몇 바퀴 돌며 산책하고 나니
갑자기 뜨거운 모닝 커피 한잔이 당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이른 탓에
유명 관광지임에도 아직 문 연 카페가 없다.
그때
유일하게 산네이자카 그 길목에
문이 열린 카페가
바로
지금은 사라진(이곳 지점만)
'이노다 카페' 청수사점이었다.
이노다 카페는 교토를 대표하는
카페 중 하나다.
안그래도 그 역사가 깊다는
카페 본점에 가려했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얼른
코를 킁킁거리며 들어갔다.
맞은편엔 문이 열려있었다면
분명 거길 들어갔을 게 확실한
인스타의 성지, 요지야 카페가 있었지만
그곳은 아직 오픈 전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카페로 들어서니 점잖게 나이 든 남자직원이
깍듯이 자리를 안내해준다.
비록 창가는 아니었지만
맞은편으로 전면 통창면이 훤히 보이는
4인석 명당에 당당히 혼자 앉는다.
아직 서늘한 바람이 부는 이른 봄날임에도
자리에 앉자마자 직원이
잘게 간 얼음을 잔뜩 넣은 얼음물잔을 건넨다.
물은 셀프인게 응당 당연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어디를 가도 가장 먼저
물수건과 물을 건네준다.
이같은 별것 아닌 행위가
때로는 소박하지만 환대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900엔 짜리 이 곳의 시그니처 모닝메뉴,
아라비아의 진주 커피와
새우 튀김이 들어간 롤브레드 세트를 시켰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동안 잠시 숨을 돌리고
통창 밖 풍경을 감상한다.
후에 알게 됐지만
세이류엔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2000년 지금의 상점가로 변모하기전까지
교토 사카구치 라는 고급 요정이었다고 한다.
단돈 만원돈에 맛있는 커피향을 맡으며
안밖으로 이런 멋진 공간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니
나홀로 여행자 특유의 조금은 긴장했던 마음이
몽실몽실 녹는다.
카페는 오래된 일본 전통 가옥을 개조한 곳 답게
모든 집기며 시설이 제법 앤틱하고 운치가 있다.
높은 천장과 클래식한 조명등, 테이블과 의자가 편하면서도 옛것의 멋을 준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집에서도 에스프레소 두 잔쯤은 거뜬히 마시는
카페인 중독자인 내가 먹어도 진하게 느껴질 만큼
이 곳의 시그니처 커피의 맛은 진하고 구수하다.
새우튀김이 들어간 롤브레드 역시
갓 튀겨진 새우튀김과
말랑말랑 따끈한 빵이 잘 어우러져
다른 아무 기교가 없었음에도 너무 맛있었다.
이후로도 종종....
나는 교토를 갈 때마다 부러
유서 깊은 본점 대신 이 곳
이노다 카페 청수사점을 찾곤 했다.
사진은 그 해 가을 다시 찾은 이노다 카페 청수사점.
같은 창이지만 미묘하게 봄꽃이
낙엽으로 바뀐 걸 볼 수 있다.
보기에도 진한 아이스 커피색이 그때의 향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두 번 다시
이 곳을 갈 수 없다.
코로나 등의 여파로 이 곳 청수사점은
2020년 6월 1일 부로 폐업을 했다고 한다.
꽃이 피고 지듯
사진 속 아름다운 사계를 품은 이노다 카페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곳엔 조만간 다시 아름다운
다른 카페가 생길 것이다.
그때 다시 청수사 산책을 가야지.
정해진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도 좋다.
그러나 때론 아무 생각없이
어느 거리를
어느 골목을
발길 닿는데로 걸어보자.
그리고 마음이 동하는 카페로
용기있게 들어가 차를 한 잔 시켜보자.
운이 좋다면 잊지 못할 당신의 카페를 찾을 지 모른다.
그 날의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