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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Jul 03. 2024

사과가 무슨 맛이지?

사과가 무슨 맛이지?

오래된 동사무소 2층엔 한적한 도서관이 있다. 아이들 학교 뒤, 공원 놀이터 한편과 맞닿아있어서 수시로 찾아가 책을 읽기에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커다란 도서관에서는 순번을 기다려야 할 신간도서도 여기서는 차례 없이 바로 읽을 수도 있고 규모에 비해 다양한 책이 구비되어 있어 여러모로 유용합니다. 지난주에 도서관에 들러 신간을 읽을까 하다가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한 책이 눈에 띄어 대출을 해 왔습니다. 


"때론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의 발자취가 더 중요한 법이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중에서


주인공 조지나는 갑작스럽게 가정을 버린 아빠로 인해 집세가 밀려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 자동차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그 사실이 들통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숨기기에 바쁩니다. 집을 잃어버린 조지나는 이제 지붕 있는 집에서 나만의 침대에 누워 다리를 뻗고 자는 것이 소원이 되어버렸습니다. 설상가상 엄마는 그나마 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조지나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돈을 직접 마련하고자 여러 가지 궁리를 시작합니다. 

그러다 마주한 전단지. 

"우리 개를 찾아주세요. 사례금 500달러!"

세상에 500달러라니!

그렇게 조지나는 사례금 500달러를 내줄 수 있는 개를 사랑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집을 찾아다닙니다. 나름 기준도 까다롭게 하고 사전조사도 철저히 한 덕에 마침내 훔치기에 적합한 개 '윌리'를 찾아냅니다. 

소설은 주인에게 사랑받고 행복한 개를 찾아 훔치고 다시 돌려주며 사례금 500달러를 받아 집세를 벌기 위한 계획을 실행해 가며 좌충우돌 고군분투하는 열한 살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한 소녀의 성장기이자 살면서 길을 잃은 사람들의 지침서이기도 합니다. 조지나가 윌리를 숨겨놓은 장소에 방랑자 무키 아저씨가 오게 되는데 아저씨는 조지나가 윌리를 훔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난하거나 사정을 캐묻지도 않습니다. 다만 " 때로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다."라는 말로 상황을 감추기 위해 행해지는 잘못된 선택들이 결과를 더욱 나쁘게 할 수 있다는 말을 건네주며 방황하는 조지나의 선택을 돕는데 일조하죠. 


우리는 살면서 상황에 쫓기다 보면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곤 합니다.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데도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 고백하며 자신에 대한 변명과 현실에 대한 원망으로 삶을 휘젓어 놓고 길을 잃기 일쑤입니다.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흑탕물은 더욱 진해져 결국 심연에 가라앉은 진실을 보기 더 어려워지는데도 말입니다. 주인공 조지나도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며 잘못된 선택에 대한 변명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더없이 꼬여만 가고 그럴 때마다 조지나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자신이 아프게 한 사람들에 대해 사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점점 더 잃어버리게 됩니다. 조지나는 과연 사례금 500달러를 받고 새로운 집을 얻을 수 있게 될까요? 아니면 개를 잃어버린 주인에게서 호되게 죗값을 치르게 될까요?


 더운 여름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하다면 조지나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 그리고 무키 아저씨가 왜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들의 발자취가 더 중요한 법"이라고 말했는지 함께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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