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갔던 곳에서 일이 생기면 한 번씩 연락이 오기 때문에 그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간다. 가면 일한 만큼 돈도 주거니와 맛있는 점심도 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17살부터 혼자 살아서인지 누가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 다행히 이번 병원 직원식당도 맛이 아주 좋아서 점심이 기대되는 곳이다.
어렸을 때도 잠이 없던 나는 오 형제 중에서도 가장 먼저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아궁이에 나무를 떼고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하는 모습을 국민학교 6학년때까지 봤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연탄도 생기고 아주 커서는 보일러도 놨지만 어렸을 때 아궁이가 있던 부엌이 가장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곤 한다.
아무튼 시골에서 일찍 일어나는 새는 아침 심부름을 모두 담당하게 되었는데 가을엔 마을 근처 밭에 가서 무를 뽑아오는 일도 있었다. 새벽안개가 앞이 안보일정도로 깊게 깔려있는 곳을 하얀 장막을 헤치듯 손으로 젓고 허방을 짚듯 조심스럽게 기억을 더듬어가면 거기 우리 밭이 있었다. 가을무는 물기도 많고 달아서 어떤 음식을 해도 맛이 있었다. 특히 무생채는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시원하고 매콤하고 달고 맛있었다. 가마솥에서 이제 막 지은 하얀 쌀밥에 이제 막 버무린 무생채를 놓고 한입 먹으면 머슴밥 한 공기가 모자랐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5년이 지난 지금, 어디 가서 그때 그 맛을 느껴볼 수 있을까. 그런데도 시장에 나가 가을무가 보이면 나도 모르게 하나씩 사게 된다. 어렸을 적에 맛봤던 그 맛을 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을무는 맛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