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 때마다 쏟아진다. 색색의 나비들이 결 따라 바들바들 떨며 하늘과 땅사이를 훑으며 지나간다.
가을이 깊어가는 서울 대공원은 숲 속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아이들이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해서 아침부터 알밤도 삶고, 김밥도 싸고 과자와 음료수, 귤과 컵라면을 챙겼다. 어느 누가 봐도 놀러 가는 게 아니라 먹으러 가는 것이라고 여길 만큼 방대한 양이다.
먹은 만큼 놀기
하지만 먹은 만큼 한시도 쉬지 않고 뛰어다니고 말하고 장난치는 두 아들은 한 시간에 한 번씩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찾는 하이에나가 된다. 산속에 있는지라 곳곳에 낙엽이 쌓여있는 곳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낙엽 속을 구르고 달리고 던지고 누우며 노는 아이들이었다. 예전엔 나도 먼지 무서운 줄 모르고 온몸을 던져 놀았는데 지금은 무릎도 아프고 낙엽은 지그시 밟는 것이지 그 속에 들어가 온몸으로 놀고 싶은 생각이 좀체 들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 노는 곳 옆에 돗자리를 깔고 신랑과 둘이서 누워있었다. 하늘은 그야말로 가을 하늘이고 바람이 식혀둔 땅은 서늘했지만 쌓인 낙엽덕에 춥지는 않았다. 누워서 하늘을 본지가 언제였던가...
날이 맑아서인지 스카이리프트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푸른 하늘 밑으로 색색의 단풍을 보는 재미도 꽤 좋을 것 같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자발적으로 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대신 호수를 끼고 천천히 걸으며 그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 쏠쏠했다.
봄처럼 화사한 꽃이 없어도 가을은 충분히 마법 같은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무 한가득 색색의 나비들이 바람에 윤슬처럼 빛을 내더니 한순간 푸른 바다 같은 하늘 저편으로 푸드덕 낙엽들을 쏟아내는 장면은 언제 봐도 뭉클한 아름다움이 있다. 아직 한 달 보름이란 시간이 남았지만 걸음걸음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걷다 보면 지금이 한 해를 조용히 정리할 때라는 걸 느끼곤 한다. 지난날들이 덧없이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성실히 살아온 것도 같은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별일 없었으니 잘 살았던 것도 같고, 아무것도 해낸 게 없으니 대충 시간을 때우며 산 건 아닌지 후회가 될 때도 있다. 내가 걸었던 모든 시간들이 낙엽처럼 흩어지고 대지위를 떠돌다 겨울 눈 속에 파묻히고 봄의 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법처럼 다음 계절엔 저마다의 꽃들을 피워내는 날들이 펼쳐질 것이다. 가을은 그래서 끝이 아닌, 시작의 계절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