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이유식
아기 입가에 침이 고였다. 아기는 뽀글뽀글 거품을 물었다가 주르륵 침을 흘린다. 침 분비량이 늘어난 것이다. 아기는 생후 4개월이 되자 음식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아기의 성장 속도가 빨라져 분유 외에도 영양의 보충이 필요하다. 이유식은 모유나 분유가 아닌 모든 액상과 고형식을 말한다. 기능적으로는 숟가락을 사용해 덩어리 진 음식물을 받아 씹고 삼키는 행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이로써 엄마의 마음과 몸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한다.
우리 아기의 첫 이유식은 장난 삼아 준 사과였다. 생후 4개월, 엄마와 밥을 먹고 있는데 아기는 혼자 누워있었다. 분유를 먹은 지 1시간밖에 안되었는데 칭얼거림이 심했다. 아기 입 주변에 침이 고여있었다. 나는 밥 먹는 것을 방해받고 싶은 않은 생각에 얼른 아기 손에 사과를 쥐여줬다. 아기는 작은 사과가 으스러질 때까지 쭉쭉 빨았다. 며칠 뒤 사과 한쪽의 행복을 맛봤던 아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숟가락으로 사과를 싹싹 긁어 떠먹였다. 아기는 마치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며 잘 받아먹었다. 30분 뒤 아기의 입 주변이 붉어지고 오돌토돌한 좁쌀 모양의 발진이 생겼다. 심지어 아기는 배가 아파서 보채고 찐득한 변을 세 차례나 봤다.
이유식을 시작할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이유식 초기에는 소화가 잘 되고 알레르기 유발이 적은 곡식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 초기에는 아기에게 한 번에 한 가지 음식을 줘야 한다. 적은 양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재료를 첨가할 때는 시간 간격을 두고 넣어야 한다. 아기에게 과일을 처음 먹일 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익혀서 주는 것이 좋다. 과일의 단맛보다는 곡식이나 채소의 밍밍한 맛으로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다.
아기가 생후 5개월이 되었을 때 본격적인 이유식을 시작했다. 아기 몸무게는 7.7kg였다. 아기는 목을 가누고 음식을 보면 침을 흘리고 손을 뻗쳤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이유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익힌 쌀 10g과 물을 100ml를 넣고 쌀미음을 끓였다. 이유식을 정오쯤에 먹였다. 아침에 일어나 분유를 먹고 2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배가 고플 시점이었다. 아기는 쌀미음을 단숨에 열두 숟가락이나 받아먹었다. 쌀과 찹쌀 미음으로 1주일간 적응기를 가졌다. 이후 3~4일 간격으로 새로운 채소를 한 가지씩 넣었다. 아기가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뒤로 기대는 등 싫다는 반응을 보이면 억지로 먹이지 않았다. 이유식 초기는 음식에 적응하는 시간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아기 수유량을 적는 수첩을 사용했다. 매일 먹은 이유식 종류와 시간을 함께 기록했다. 이것을 통해 아기의 영양섭취를 체크할 수 있다. 또한 '식품 일기'로 사용할 수 있다. 전공의 시절 이유식을 먹고 얼굴이 붉어져서 응급실로 달려오는 아기를 많이 봤다. 피부 발진 외에도 설사, 구토 등 음식으로 인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진료 후 보호자에게 아기가 섭취한 식품과 증상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같은 음식이라도 먹은 양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하지만 한 번의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다고 식품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 식품 제한은 아기의 성장 장애와 영양결핍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유 중기로 가면서 이유식 양과 횟수는 늘렸다. 반면 분유량과 횟수는 서서히 줄여나갔다. 생후 8개월 분유량은 660ml(횟수 4회), 이유식은 점심과 저녁에 2번 정도 먹였다. 아기에게 갈치를 먹인 날이 기억난다. 아기는 처음 보는 생선에 호기심을 보였다. 구운 갈치를 아기 입에 넣어줬다. 아기는 몸서리치게 비린 맛이 느껴졌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먹지 않았다. 여름에는 특히 단맛이 나는 과일이 많았다. 아기는 수박의 단맛이 좋은지 손가락에 묻혀 마음껏 빨기도 했다. 굳이 이유식을 먹이지 않더라도 아기에게 놀 거리로 미역, 오이, 국수 등을 주었다. 아기는 식재료를 탐색하면서 오감놀이를 했다.
아기는 돌 무렵이 되니 어른이 먹는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규칙적으로 하루 3번 이유식을 먹었고 분유는 잠자기 전에 1번 먹였다. 이로 잘 씹지 못해서 진밥으로 천천히 넘어갔고 16개월부터는 어른이 먹는 된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씹기 어려운 나물 반찬이나 매운 음식이 아니라면 아기와 함께 먹었다. 바깥에 나갔을 때 음식점에서 아기와 먹을 것을 고르는 것이 한결 수월했다. 이유식을 더 이상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짐가방도 가벼워졌다.
이유식을 만드니 진짜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초반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마트에서 장을 봤다. 비싼 소고기도 겁 없이 참 열심히 샀다. 신선한 재료를 골라 아기에게 다양한 맛을 알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아기는 고맙게도 이유식을 잘 먹어줬다. 어른들도 아기 덕분에 매일 새로운 재료로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 먹었다.
반면 이유식을 만드는 과정이 참 번거로웠다. 공을 들인 것에 비해 결과물은 별거 아닌 것 같았다. 친정 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판 이유식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유식을 만드느라 초반에는 잠을 못 잘 때도 있었다. 음식을 만든다고 진땀도 흘렸다. 고백하건대 내 아이를 키운 건 팔 할이 '우리 엄마표 이유식'이다. 호텔 특급 요리사 수준으로 음식을 하신다. 아기는 내 이유식보다 엄마표 이유식을 잘 먹었다. 지금껏 편식을 모르는 아이로 자랐다. 엄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