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골두 아탈구
"응애~~~~"
밤 10시 반,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트림시키려고 아기를 안았다. 갑자기 아기가 자지러지게 운다. 이런 울음은 처음이었다. 아기를 바로 눕히고 살펴봤다. 오른쪽 팔이 이상했다. 팔꿈치를 굽히는 왼팔과 달리 오른팔이 축 늘어져있다. 빨리 병원 응급실을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기가 생후 96일이 되었을 때 일이다. 나 홀로 육아를 하고 있었다. 대학병원 전공의 4년 차 생활을 마친 지 갓 1주일이 넘었을 때였다. 그동안 도와주셨던 시부모님은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급하게 친정 부모님을 호출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던 남편에게도 전화를 했다. 머릿속에는 병원 응급실만 떠올랐다. 아기를 달래 가며 젖병, 분유, 기저귀를 찾아 짐을 쌌다. 아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짐을 챙기는 손과 마음이 떨리기만 했다. 아기의 울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10여 분 후, 부모님이 달려오셨다.
아빠는 외과의사이다. 부모님께 아기가 다친 상황에 대해 말씀드렸다. 아빠는 아기의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 손목을 차례로 만지셨다. 아기는 어깨를 만졌을 때보다 팔꿈치를 건드렸을 때 더 크게 울었다. 아빠는 아기의 울음을 통해 아픈 부위를 알아보셨다. 아빠는 아기의 아래팔 팔꿈치 뼈가 주변 인대에서 약간 엇나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의학용어로 '요골두 아탈구'라고 부른다. 아빠가 아기의 손을 악수하듯이 잡고 접었다 펴자 신기하게도 아기의 울음이 멈췄다.
아이들의 요골두 아탈구는 병원 응급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질환이다. 팔이 아파 우는 아이가 의사 처치 한방에 방긋 웃을 수 있다. 소아는 인대와 뼈의 발달이 미숙하다. 아이의 팔꿈치를 편 상태에서 갑자기 팔을 잡아당기면 안 되는 이유다. 팔꿈치 주변 인대에서 아래팔 뼈가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기를 수유할 때 힙시트를 했던 것이 문제였다. 나도 모르게 아기의 오른쪽 팔이 힙시트와 내 배 사이의 공간으로 들어갔나 보다. 아기를 안을 때 힙시트 안에 끼어있던 팔이 당겨진 것 같다.
아기는 분유를 꿀떡꿀떡 마시고 잠이 들었다. 말을 못 하는 아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지켜보는 것이었다. 밤새 뜬눈으로 자는 아기의 팔을 봤다. 오른쪽 팔을 만지면 아파서 깨지는 않는지... 이제라도 병원에 가서 방사선 촬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다. 관절이 붓거나 멍이 생겼다면 바로 병원을 가려고 했다. 그날 밤 아기가 오른팔을 덜 움직이는 것 외엔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다음날 아기가 평소처럼 오른손 주먹을 잘 쥐고 입으로 쪽쪽 빨기 시작했다. 오른손을 잘 구부리는 것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아기에게 요골두 아탈구가 재발할 경우를 대비해 아빠한테 팔꿈치 정복술을 배웠다. 다쳤던 아기 덕분에 팔꿈치가 빠진 소아환자를 맞을 준비도 한 셈이다.
이아의 팔을 다룰 땐 조심해야 한다. 팔꿈치 관절이 튼튼하게 연결되는 7세 이후가 될 때까지 말이다.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면 병원에 가서 전문의한테 진료를 보는 것이 정답이다. 정확한 진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네 외과 의원을 운영하시는 아빠는 이런 사례를 많이 보셔서 침착하게 대처하실 수 있었다. 아빠의 연륜에서 오는 여유와 노련함이 부러워졌다. 아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