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량 조절
처음 육아를 시작할 때 어려웠던 점을 꼽으라고 하면 아기의 수유량 조절이었다. 소아과 의사에게는 전문의 시험문제로 등장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교과서 수치는 머릿속에 있었다. 답을 알고 있기에 아기를 먹이는 것이 쉬울 줄만 알았다. 조리원 도우미 선생님은 매일 아기가 먹는 분유의 양과 시간을 수첩에 적으라고 알려주셨다. 하지만 이렇게 쓰는 숫자 일기는 엄마들에게 자칫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랬다.
아기가 생후 40일이 되었을 때다. 아기가 한 번에 먹는 분유량은 100~120ml였다. 아기는 분유를 먹고 2~3시간이 지나면 그새 배가 고픈지 또 울었다. 이날 하루 동안 아기는 1020ml를 먹었다. 초반에 초보 엄마들이 흔히 하는 실수를 나도 했다. 아기가 많이 보채면 분유부터 타는 것이다. 그런 날에 아기는 분유를 1280ml까지 먹기도 했다. 소아과 교과서에는 하루에 아기에게 먹이는 분유 총량은 1000ml를 넘기지 말라고 적혀있다. 아기는 콩팥 기능이 미숙해 갑자기 몸에 물이 많이 들어오면 배출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높은 칼로리는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루 총량 1000' 기준에 비해 아기가 많이 먹는 것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수유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필요했다. 아기가 배고파하면 분유를 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아기가 운다고 아무 때나 수유를 하면 안 된다. 아기가 우는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먼저 아기 기저귀를 살펴보고 아기가 보채는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분유를 타기 전에는 마지막 수유를 언제 했는지 수첩을 통해 시간을 확인했다. 아기가 배가 고파서 우는 시간이 잦아지면 수유량을 늘렸다. 운다고 매번 분유를 줄 수 없으니 공갈젖꼭지도 사용했다. 아기가 우는 이유는 배가 고픈 것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아기는 위식도 역류 때문에 뱃속이 불편해서 우는 경우였는데 초반에는 그것을 모르고 분유를 자주 타 먹였다.
아기는 분유를 먹을 때 허겁지겁 먹고 자주 게웠다. 한 번에 먹이는 수유량 조절이 필요했다. 위의 크기는 신생아에서 약 50ml, 3개월에 140~170ml, 1세에 370~460ml쯤 된다. 위의 위치는 가로 방향으로 되어있다가 성장함에 따라 좀 더 수직 방향으로 된다.(안효섭·신희영, 『홍창의 소아과학』, 미래엔, P.17) 아기의 소화기관이 성숙될 때까지 한 번에 주는 분유량을 줄이고 시간 간격이 짧더라도 자주 먹이는 방법으로 했다. 역류를 일으킬 수 있는 공기 삼킴도 주의했다. 젖병의 젖꼭지를 눌러 공기를 빼고 먹였다. 아기에게 먹이는 중간중간 트림도 시켰다. 분유를 먹인 뒤에는 30분간 상체를 세운 자세(upright position)로 안고 있었다. 아기가 깨어있을 땐 엎어 놓기도 했다.
대략 100일 정도가 되니 수유 패턴이 생겼다. 아기가 그쯤 통잠을 자고 밤중 수유를 끊게 되면서 수유량이 이상적으로 되었다. 예방접종 차 들렸던 소아과에서 아기의 몸무게가 잘 늘고 있음을 확인했다. 아기에게 본능적으로 생존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아기가 배고프다고 울면 주는 게 맞는 방법이었다. 수유의 기본적인 판단 기준은 아기가 기분이 좋고 만족해하며 체중이 충분히 증가하면 된다.(안효섭·신희영, 『홍창의 소아과학』, 미래엔, P.68)
어린 아기가 분유를 먹고 게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역류는 생후 2~4개월에 증상이 가장 많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줄어든다. 때로는 주의해야 할 경우도 있다. 비대 날문 협착증(Hypertrophic pyloric stenosis)은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부위가 두꺼워지는 병이다. 이런 아기는 분유를 먹고 분수처럼 토하고 곧 다시 먹으려 하는 증상을 보인다. 구토의 횟수가 잦아지고 심해진다면 생각해볼 수 있다. 전공의 시절 본 사례는 신생아기를 막 지난 아기였다. 생후 3주부터 잦은 구토로 병원에 내원했고 초음파로 비대 날문 협착증을 진단받아 수술을 받았다.
반면 병원 진료실에서 아기가 잘 안 먹는 것을 걱정하는 보호자와 종종 마주한다. 엄마들은 나처럼 매일 아기가 먹는 분유 양을 기록하고 있었다. 본인이 세운 기준에 비해 아기가 잘 먹지 않는 날은 더욱 걱정을 했다. 조리원에서 나온 뒤 아기가 낮 동안 분유를 잘 먹지 않고 자주 게워냈다고 했다. 그 부모는 아기를 먹게 하려고 분유를 1주일 간격으로 4~5번 바꿨다. 선천적인 성향으로 어떤 분유라도 많이 먹지 않는 아기 사례다. 대화를 해보니 부모도 어렸을 때 잘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때는 엄마가 시간을 정해 아기에게 분유를 억지로 먹이지 말고 아기가 먹고 싶은 때에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 알고 보니 아기는 밤중에 주로 먹고 싶어 했다. 보호자에게 힘들더라도 분유를 주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 정기적 영유아 검진에서 아기를 다시 만났다. 아기는 체중과 키, 머리둘레도 잘 크고 있었다. 나는 엄마들이 매일매일 아기가 먹는 양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수치에 너무 엄격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어떤 소아과 교수님은 보호자들에게 수유 기록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아기가 생후 4개월이 되니 이제 아기에게 분유를 타 먹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기 분유 먹이기에 익숙해지자 '이유식'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만났다. 아기는 침 분비가 늘어나고 밥을 먹고 있는 어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기에게 음식을 먹이려고 마트에서 재료를 사고 조리용품을 마련했다. 엄마는 아이가 원하면 뭐든지 다 하게 된다. 그것은 삶의 에너지이며 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