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산 아닌 메모, 글쓰기의 비결
하얀 배경화면에 검은색 줄이 그어진 커서가 깜빡깜빡하는 순간의 두려움을 글쓰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느껴본 적이 있어요. 지금 글을 쓰면서도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해야하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글감을 마구잡이로 던지듯이 적어둡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아래 캡쳐한 이미지처럼 생각나는대로 이번 글과 관련된 글감을 적고, 임시저장버튼을 눌러 놓았어요.
초고라고 하기에도 많이 부족한 브레인스토밍 단계의 글입니다.
보통은 이렇게 글쓰는 화면에서 글감을 적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영감이 떠오를 때 메모를 하거나 좋은 문장을 발견했을 때 적어두거나 해서 그런 글감을 많이 많이 모아서 글을 씁니다. 작은 조각 글들, 영감, 좋은 문장,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자주 적어두세요. 글감을 많이 모아서 굴리다보면 마치 눈 내리는 날, 눈송이를 모아서 주먹만한 눈덩이를 만들고, 굴려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듯이 글감도 쌓여서 하나로 뭉쳐지고, 하나의 글이 완성됩니다.
아무런 메모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릿 속으로만 구상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막상 쓸만한 내용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상상 속에서는 분명 환상적인 이야기들과 끝내주게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막상 글로 풀어내려고 하면 술술 써지질 않아요.
어린 시절 산수를 배울 때를 떠올려보세요. 덧셈 뺄셈은 쉬워서 암산이 가능합니다. 1+1은 2 손으로 적으면서 계산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서 정답이 나와요.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어느 덧 중학생 쯤되면 복잡한 수학공식이 나오길 시작하고 암산이 어려워집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바로 손으로 풀이과정을 적으면서 문제풀이를 해야합니다. 수학 시험 때, 공식 대신 손수 사각형을 수없이 그리면서 문제를 풀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많이 읽고, 많이 기록하면 그 다음에 글 쓸 때는 자연스럽게 글이 써집니다.
저는 전자책 업계에서 10여년간 일을 하고, 직접 전자책 출간도 하면서 겪은 경험들을 쓰기로 마음먹고 딱 한 달만에 집필을 할 수 있었어요. 만약 제가 전혀 모르는 분야를 글로 쓰려고 했다면 한 달만에 글을 쓸 수 없었겠죠. 그래서 많은 작가님들이 집필을 하기 전에 자료조사를 오랜 기간 합니다.
글쓰기 전에 어떤 글을 쓸지 적으면서 글을 써보세요.
글쓰며 귤먹기는 같은 이름으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참여하시는 작가님들에게 30개의 글감 질문을 드리고 있어요. 몇 가지만 맛보기로 보여드릴게요.
가장 좋아하는 것 세가지는 무엇인가요?
가장 싫어하는 것 세가지는 무엇인가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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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은 무엇인가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명확히 알고, 경험도 많이 쌓였고, 이미 기록도 해오셨던 참여자 분들이 있는 반면 쓰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시작을 어려워하신 분들도 계셨어요. 그래서 그 분들이 질문에 답변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쓰고 싶은 글을 찾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질문 30개를 만들었습니다. 30개의 질문은 동화책이나 영웅서사에 필요한 플롯에 들어가는 질문들이었어요. 캐릭터의 성격을 만들고, 시놉시스, 기승전결을 위한 위기, 주인공이 바라는 것 등등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 하나 질문에 답하다 보면 자신이 쓰고 싶은 글에 필요한 재료가 모일 수 있도록요.
저는 평소에 글감이나 아이디어, 짧은 글들을 구글 메모장에 모아두고 있어요.
최근에는 농구관련 짧은 글들이 많이 모였어요. <아무튼, 농구>로 출판사에 투고 해보려고 해요.
그 다음으로는 모아둔 메모를 정리해서 동화책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캐릭터, 시놉시스, 에피소드를 정리해두고 있어요.
이렇게 기록을 모으고 정리해서 그 다음에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AI의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죠. 예전에는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글을 썼다면 AI 시대에는 AI가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록하고, 정리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질문만 던지면 됩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제목도 처음에는 "암산하듯 글쓰지 마세요." 라고 제가 직접 작성했다가 뭔가 부정적인 늬앙스라서 인공지능에게 글의 초고를 보여주고 제목을 추천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제목들은 다시 귤쓰며 귤먹기 모임에 참가 중인 작가님들에게 투표를 부탁드렸습니다. 과연 이 글의 제목은 어떻게 될까요?
아하!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이미 투표의 결과를 알고 계시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