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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Jul 10. 2024

요양병원 대신 에이드와 장어구이

1. SNS일기,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에도,
소중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이
불탄 종이처럼 손에서 바스러지고
그 타고 남은 재로 목이 멜지라도

삶을 사랑하는 것
슬픔이 당신과 함께 앉아서
그 열대의 더위로 숨 막히게 하고
공기를 물처럼 무겁게 해
폐보다는 아가미로 숨 쉬는 것이
더 나을 때에도

삶을 사랑하는 것
슬픔이 마치 당신 몸의 일부인 양
당신을 무겁게 할 때에도,
아니, 그 이상으로 슬픔의 비대한 몸집이
당신을 내리누를 때

내 한 몸으로 이것을 어떻게 견뎌내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당신은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듯
삶을 부여잡고
매력적인 미소도, 매혹적인 눈빛도 없는
그저 평범한 그 얼굴에게 말한다.
그래, 너를 받아들일 거야
너를 다시 사랑할 거야.

- 엘렌 바스


책과 함께 하는, 카페에서의

달콤 시큼한 에이드 한 잔!


오늘도, 좋은 하루.



오늘은, 좋은 날일까요.


아이들이 13시에 수업이 끝나는 수요일.

저마다 서로 다른 스케줄로, 움직이는 날이라

요령껏 집안일을 하고, 눈치껏 쉬어야 하는 날입니다.


올해 초, 공복 해독주스 일상을 시작하게 되면서

정제된 탄수화물, 당 류, 카페인, 알코올 등도

줄이는 노력을 해왔는데...


탄수화물을 피해, 카페인을 피해, 설탕음료를 피해,

동네 엄마들을 피해, 늘 지나쳐가던 동네 카페에

오늘은 들어앉았어요. 레몬 슬라이스가 올라가고 레드 베리가 녹아든, 달콤 시큼한 시원한 에이드를 한 잔 시켰습니다.


낮부터 한 잔 술이라도 마시고픈 날이었지만, 청량감 넘치는 에이드로 대신한다며. 오늘은 혼자, 뭐라도 마셔야겠어요. 후다닥 집안일은 해치웠던 터라 여유가 있습니다.


오늘,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해오신 친정 아빠를 요양 병원에 보낸 날이에요.


해외 생활 중이었던 다른 가족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아빠인데... 마음에 담아뒀던 하소연거리를 한꺼번에 풀어내기라도 하듯 아빠의 섬망 증세는 심해졌습니다.


친정 엄마는 쓸데없이 소방서로 불 끄러 가는 사람이 되었고, 저는 다단계에 빠진 딸이 되었으며, 또 다른 딸은 '고통을 주는 사람'으로 묘사되었어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를 동생과 둘이서 이고 지고 가다시피, 병원에 모시고 갔었지만 더 이상 '희망'이라는 단어는 들을 수 없었고 알약 하나 처방받지 못하고 왔었고.


그러다, 소변마저 누지 못해 괴로운 상황이 되어, 어린아이들 앞에서 소리, 소리를 지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니... 끝내 요양병원을 결심하게 된 것인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92세 정정하시던 친할아버지의 상식으로도 요양병원은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곳', '곧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모양이라... 졸지에 고려장이라도 보내는 자식의 모양새가 된 듯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아빠는, 엄마보다도 살뜰했던, 자상했던 아빠.


고양이 세수를 한다며 저의 볼을 만지던 아빠.

등에 저를 태운 채 열심히 걸레질을 하던 아빠.

동료들과의 등산 모임에 어린 딸을 데리고 가,

총총 산을 타던 어린 딸을 귀여워해주던 아빠.

통금 시각에 엄격했던 아빠.

늦은 밤, 대학교 도서관 앞에 기다리던 아빠.

대학교 1학년 1학기, 전액 장학금을 받았으니

안 내도 되는 등록금 대신 그 돈을 달라고 당당히

말하던 철없는 딸에게, 아무 말없이 돈을 내밀던 아빠.

떨어져 지내던 외국 생활 와중, 엄마보다 더 시시콜콜

해외 생활에서의 일상을 나누던 아빠.

국장님으로, 관장님으로, 자랑스러웠던 아빠.

세 딸들 뿐만 아니라 다섯 손주들에게 자상하던 할아버지였어요.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없이, 온전히 아빠를 돌봐야 하는

딸이 되자 하루에 두 번, 아빠에게 오가는 길이

어느새 부담스러워졌었습니다.


한 끼니 당, 두 번씩 식사를 차리는데도 흔쾌히 식사하지 않는 아빠가 미울 때가 있었어요.


운동으로, 모임으로, 취미로, 건강하면서도 슬기로운

퇴직 생활을 하시는 다른 분들을 보면서

병상의 아버지를 가엾이 여겼습니다.

지금의 투병 생활이 지난날, 자기 관리에 무신경했던 아빠의 탓이기라도 한 듯.


평생을 엄마에게 모진 남편, 기대기만 했던 남편, 배신감과 상실감만 안겨주던 미운 남편으로서

받는 벌을, 딸 셋이서 나눠 짊어지고 있다... 불만이었고요.


이렇게 쓰다 보니, 어쩌면 저는 제 일상의 범주에서 아빠가 멀어지는 때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은 꽤 오랫동안,

혼자 감당하는 것이 버겁도록 했던 아빠를.

병약한 기운만 완연해, 나를 숨 막히게 하던 아빠를.

예전의 모습은 잃어버린 채, 삶의 의지가 없어 보여

안타깝던 아빠를.

내 한 몸으로 이것을 어떻게 견뎌내지,

시시때때로 답답하게 했던 아빠와

헤어진, 홀가분한 날입니다.


오늘, 아빠를 요양 병원에 보내고 나면

한 사람은 수술을 위해 산부인과에 보내고

다른 한 사람은, 재활을 위해 재활병원에 보내야 하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마시며, 먹으며, 정신을 단단히 붙잡아야 할 일입니다. 장어를 먹기로 했어요.

수술과 입원을 앞둔 나머지 가족들을 챙겨야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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