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손에, 썩 살갑지 않은 친정 엄마와 함께 총대메는 기분으로 나섰던 여행길에 대한 푸념들.
어쩌다, 세 자매 중 그나마 온전한 일상의 사람은 나 혼자가 되었을까_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슬픔.
투병과 적출 수술이라는 단어가 적힌 카드를 30대에 받아 들 수도 있는 일인 걸까, 의아함.
그 폭탄들 사이에, 아이들 눈과 귀를 막을 손은 몇 없어... 전정 긍긍한 마음들.
전이를 넘어서... 다리에 근력이 없어 더 이상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아버지가 혼자 있을 시간들에 대한 걱정.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결핍 대신 추억을 주고 싶다는 욕심.
어쩌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됐을까, 정말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_걱정 어린 말들.
풀빌라에서 나오는 길에 들렀던 내소사 대웅전에서,
"엄마가 빨리 나아서, 우리 가족 모두 같이 살고 싶어요!" 아이의 소원을 듣고 쿵 내려앉던 안쓰러움.
그 모든 게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내소사로 가는 전나무 숲길, 나뭇잎 위로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걷는 그 길만을 기억한다.
가뿐하게 뛰는 아이들 뒷모습을 보면서, 천둥 번개를 피해 잠시 쉬어갔던 내소사 설성전 마루에서의 운치만 머릿속에 담는다.
곧 폭풍우가 멎고 다섯 아이들과 함께 무지개에 환호하는 동화책 속 이야기를 현실 속에서도 끄집어낼 수 있을 거라고 잠시 희망을 품는다.
힘들다, 힘들다 생각하다 보면 그 생각 안에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점점 내 인생이 버라이어티 해지는군. 그냥 에피소드 하나 더 생긴다, 얼마나 일이 잘 되려고 그럴까.' 생각해요. 결국은 똑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라고.
- 천우희, 우희적 사고
뇌종양으로 점점 꺼져가는 희미한 불빛 하나와, 언제 또 정전이 찾아올지 몰라 바들바들 떨리는 불안한 불빛 하나, 갑작스러운 비극 앞에도 비교적 담담한 척하는 불빛 하나. 저마다의 초를 들고 불안하게 서있는 가족들 틈 사이에서 아이 다섯을 데리고 극강의 합을 맞춰보았던 1박 2일의 여행은, '고생했다' 쿨한 한 마디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수영', '산책', '뿌셔뿌셔', '피자' 제법 수많은 키워드들이 남았고. 행복한 찰나들만 잔뜩 찍힌 수많은 사진들이 남아, SNS에 올려질 예정이다. '단란한 일상, 한 조각'으로 기록되어...
'어제, 뭐 먹었지...'도 기억이 안 나, 가끔 SNS를 열어보는 네이버 인플루언서이자 인스타 꿈나무인 나는 며칠 후, 그리고 몇 달 후 1박 2일 부안 여행을 SNS에 올려진 몇 장의 사진들로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이 날, 이렇게 즐겁고 행복했었구나... 우리 가족의 비밀을 알 턱이 없을 친구들 모두, '저 집은, 언제나처럼 단란하구나. 걱정이 없구나.' 힐끗거릴 게다. 내가 누군가의 SNS를 몰래 힐끗거리며 부러워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무수히 오고 갔던 주의, 질책, 꾸중보다 즐거웠던 추억들만 이야기해서 그저 다행이다. 나도 그렇게 저장하려 한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행복해하는 사진 기록들에 뿌듯해하며, '완료' 버튼을 누르고선 잠에 든다. 그리고 내일 아침, 누가 내 스토리를 힐끗거렸나_확인하며 졸린 눈을 비비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