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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Oct 21. 2024

우리는 가슴 아픈 사연 하나쯤 이고 사는 달팽이

우리의 소원은.

케이크 위 는 초를 앞에 두고, 색색의 촛농이 새하얀 크림 위에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와중에도, 소원을 여럿 생각하느라 늘 바빴다.


육아가 시작되면서, 달 하나를 그냥 나치지 못했다.

수포자와 과포자 교집합 속에 서있으면서도 아이들 앞에선 믐달, 하현달, 상현 그믐달_달의 위상 변화를 운운했다. 하지만 늘 두둥실 슈퍼문 아래선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까 마음속 우선순위를 꺼내느라 부산스러웠다.


"엄마, 저 달이 상현달이랬지?"

평상시 같았으면 기특함에 오구오구를 연발했을 텐데

"조용히 해. 엄마 지금 소원 비는 거 안 보여?!"

휘영청 름달 아래, 날이 섰다.


절에 갈 때마다 5천 원짜리  사다가 쌀 보시하고 '제가 요새 현금을 잘 안 들고 다녀서요...' 민망함에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며 꼬깃꼬깃 천 원짜리 몇 장 보시함에 넣었다. 그러면서 50만 원어치도 넘을 만큼의 소원을 풀어놨다. 가족 건강, 가족 화목, 부부 화합, 업장 소멸, 만사형통, 학업 성취, 사업 번창...


늘 소원 앞에, 말이 길었다. 염치없이 장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내 일상이 평온했을 때의 말이다.  일상이 충분히 안온한 지 모르고, 지금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많이 가진 줄 모르고, 더한 욕심을 부리게 될 때 염치없이 바라는 것들 많아졌다.


맞다, 얼마나 누리고 사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 지를 모르고.

그동안 철없이, 바라기만 했구나. 싶은 순간 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건이라는 손님

속도 모르고 늘 바라기만 했던 내 입을 틀어막게 했다.


누구나 사연을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그 일을 나는 2-3주마다 브런치를 먹곤 했던 친구에게 나누지 않았다. 리고 대나무 숲 삼아 내 마음을 말하는 유일한 공간인 브런치에서도 자세히 적은 적은 없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이 말해 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 버려.

- 나의 아저씨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아서.

갑작스럽게 닥친 슬픔굳이 나누고 싶지 않아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하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어느새

괜찮아지는 순간이 올 것 같아서.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자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나 못지않게 거대한 사연 하나

짊어지고 사는 듯한 그 친구에게 굳이 슬픔을 하나 더 져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이야기한 적도 없지만 친구의 일 물어본 적도 없다. 브런치를 먹을 때마다 조각조각 얻게 된 단어들을 조합해 본 적은 있다. 그것도 내가 당연하고도 평범하게 생각해서 호의 차 뱉어낸 말 끝에, 그게 상처일 수도 있었겠다... 아차 했던 날의 궁리였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다' 예상할 수 있었. 하지만 친구에게 '대체 누가', '어디가', '어째서', '왜', '그래서 지금은' 물어본 적다.


누가 욕하는 거 들으면 그 사람한테 전달하지 마.
그냥 모른 척 해.
너희들 사이에서는 다 말해주는 게
우정일지 몰라도 어른들은 안 그래
모른척하고 사는 게 의리고 예의야.


둘만의 브런치 모임은, 제 몸보다 더 큰 집을 이고 사는 친구가 집 떼고 홀가분하게 나오는 흔치 않은 시간. 힘듦을 취조하며 '육하원칙'에 따른 질문들을 쏟아낼 시간이 어디 있나. 안부를 가장, 걱정을 내세, 조언을 건네는..'어렵게 묻는 건데...'로 시작하면서 쉽게 던지는 그런 질문들로 대답을 망설이게 하고 가슴을 후벼 파는 무례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부담들을 내려놓고 일상의 바운더리에서 탈출해 나온 그 아이가 온전히 맛있기만 바랐다. 지극히 가볍고도 잡다한 이야기들로만 꽉 채워서 실없이 웃다가기.

참 좋은 인연이다. 귀한 인연이고.
가만히 보면 모든 인연이 다 신기하고 귀해

그러다 맛집을 찾아가 먹는 여느 날의 브런치와 다르게,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브런치를 먹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조문객들이 오시기 시작하고, 바쁘기 전에 서둘러 먹자 했던 12시 이전의 식사. 엉겁결에 나 말고 나의 가족함께 하게 된 셋의 브런치.  자리에서 나는 그동안 친구에게 말하지 않았던 비밀 한 토막을 들켰다. 친구는 그동안 '어딘가 말이 맞지 않는다'


친구는 석연치 않게 생각은 되었지만 갸우뚱하고 지나갔던 퍼즐하나 맞췄다. 친정 아빠의 투병과 친정 엄마의 부재, 쌍둥이 육아에서 오는 고충 말고 설마 또 있을까 싶었던 내밀한 사연 하나를 말이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들으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꽁꽁 숨기고 있던 일, 온전히 '내 일'은 아니라 조심스러워 말하지 않았던 사연, 그럼에도 온통 숨 막히게 슬프고 애달픈 일이라 마음이 벅차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사건.



하지만 말없이 부딪히는 젓가락 소리를 들으면서, 눈가에 고인 그렁거리던 눈물이 공깃밥으로 속으로 후둑 거리는 걸 보면서. 우리는 말없이 밥을 먹고 별일 없다는 듯 이야기를 나눴다. 새콤 초롬 한 매실의 아삭함, 홍어와 묵은지의 쿰쿰함, 과류가 들어간 멸치볶음의 짭조름한 고소함을 만끽했다. 이렇게 맛에만 집중한 브런치가 있었나 할 정도.


식사 끝에, 나는 어렵사리 친구에게 비밀을 나눴고

친구는 내게 그녀의 사연을 처음으로 들려줬다.


감히 형언하지도 못할 만큼 슬픔들을 우리는 담담히 나눴다. 딱히 슬픔을 나눈다, 덜어낸다는 생각도 없이.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까 고민도 없이.


우리들에게 더 이상 길고 장황한 소원은 필요 없다는 걸

서로 확인했을 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건강'이라는 소원.


시간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을 이고 사는 달팽이라면 그나마 형편이 나은 달팽인지도 모르겠다.

니 몸은 기껏해야 백이십 근.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

적어도 천근만근인 마음마저 짊어지고
살지는 말자고 말했다.


그나저나, 그날 그날 맛있게 먹고 형형색색 다른 빛깔 달팽이 똥을 누며 홀가분해지자고.





예전에, 이 친구는 왜 이리도 뾰족뾰족할까_싶었을 때

썼던 글이다. 그때의 나도 둥글진 않아서 글에서마저 모가 나있었다. 그때의 마음 한 자락, 이제야 고백해 본다.


https://brunch.co.kr/@yoloyoll/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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