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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Oct 22. 2024

사돈댁 장례식장 안 오신 시어머님의 제사 항변

제사를 앞두고 가지 말아야 한다는 남의 집 장례식장

(ft. 가 왜 거기서 나와_ 영탁)


아들 : 어디야?

엄마 (시어머님) : 손주가 차에서 잠이 들어서... 차야.

아들 : 아 그래? 얼른 와


이 통화 당시만 해도 제부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위이자, 본인이 상주로 지키고 있는 장례식장 안에서 어머니를 볼 수 없을 줄은.


잠시 후, 제부의 가족 분들이 검은 정장에 흰 마스크를 끼고 들어오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서둘러 절만 하시고 웬일인지 식사도, 음료수 한 잔도 없이 가신다 하셨다. 그리고 좀처럼 마스크를 벗으려 하지 않으셨다.


이때만 해도 또 다른 상주이자 며느리인 동생은 예상하지 못했다. 본인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자리에 시어머님이 나타나지 않으실 줄은.



불과 몇 달 전, 한국에 없는 며느리 (본인) 대신 그녀의 언니 (나)가 아빠를 모시고서 사돈댁 할머님 장례식에도 다녀가기도 했거니와. 그때의 아빤, 다리에 근육이 다 빠져 근력이 없던 와중이라 동생 입장에선 아빠에게도, 대신 가는 언니에게도 미안할 노릇이었다. 그때 아빠는 사돈 댁 조사(弔詞)에 인사를 드려야 한다며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 지팡이를 내려놓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힘겹게 절을 올렸다.


5분 컷으로, 금세 자리를 뜨신다는 제부의 가족들을 배웅하러 입구까지 나다.


시어머님이 왜 거기서 나와

시어머님이 왜 거기서 나와

당연히 오실 줄 믿었었는데


꽃 티를 입으신 시어머님은 난처해하시며 손주를 따라

화장실로 내달리고 계셨다. 장례식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잔 꽃무늬가 만발한 상의는 검은 무리들 사이에서 광채 찬란한 빛을 뽐내었던 터라 굳이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례식장 배경만 걷어냈다면, 가을 축제에서 까르르 까르르 뛰는 아들 손주를 뒤쫓는 할머니의 정겨운 모습이었을 텐데. 하지만 그 프레임이 아니었던 터라 그 컷 속, 시어머님의 얼굴은 사색이 돼있었다.


못 오신다 하길래 혹시나 아픈 건가

걱정도 했는데

이게 누구십니까


신발장 앞에서 그 모습을 본 제부의 가족분들은 모두 입을 막았다. 마스크가 단디 씌워진 그 입거듭 막았다.


(차에만 있으랬더니! 왜 거기서 나와)

(오줌을 참아보라고 했더니. 그것을 못 참아서!)


귀하디 귀한 아들 손주가 글쎄, 오줌을 못 참아서... 꿀밤까지 박아봤지만 기어코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눠야겠다고 했다는 항변. 시어머님은 노상방뇨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의지의 6세 문화인 에티켓 고집을 꺽지 못하셨다.


그리고 그 끝에

제사 앞두고 남의 집 장례식장에
함부로 가는 것이 아니다... 란다.


평생 제사를 안 지내본 우리 집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답변이 들려왔다.



마음만 먹으면, 돈과 시간만 있으면 한 나절만에 일본으로 우동 한 그릇 먹으러 갈 수도 있고 제주도로 흑돼지 구이도 먹으러 갈 수 있는. 스위스 산 바질페스토도 하루아침에 받아 볼 수 있는 세상.


반지만 끼어도, 수면 측정에, 심박수, 운동 및 건강 관리까지 체크가 되는 최첨단 시대에...

추석 차례까지 2주 남짓 남은 며느리의 아버지 장례식장에 '우리 집 귀신과 남의 집 귀신'이 맞붙을 수 있다더라...

다른 사유도 아니고, 과학적 근거 없는 미신 때문에 오실 수 없으셨다고요?


그런데 하물며 꽃 티를 입고 손주 수발을 하시러 우연찮게 화장실에 오시게 되었다니.



불현듯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제부와 나는 한 발짝 물러섰다.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동자에서 분노의 화염 이글거리는 동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였다.


동생이 갤럭시 링을 차고 있었더라면 급격히 올라간 심박수와 알림에 경고 신호음이 울렸을 테다


심박 및 혈압 측정 ;
상한선을 넘는 이상 수치가 감지되었습니다.


비상, 비상, 비상이었다.


동생의 몸 안에서 발산되는 뜨거운 열기에, 제부는 이미 녹아 사그라지고 찾아볼 수 없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사라져 가는 제사 문화를 살리기 위해 제사에 관한 전통 제례 보존 및 현대화 방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가정에서 모시는 제사음식을 대폭 간소화하고, 음식을 마련도 가족이 다 같이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기제는 과일 3종과 밥·국·술에 떡, 나물, 나박김치, 젓갈, 식혜, 포, 탕, 간장 등이고, 묘제는 술, 떡, 포, 적, 과일, 간장을 올리면 된다. 제기가 없으면 일반 그릇에 음식을 차리고,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올려도 좋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이라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제사에 관한 전통 제례 보존 및 현대화 방안을 발표에도 불구하고, 조상의 덕을 기리는 제사는 요즘 가족분열과 해체의 원흉이 된 지 오래다. 특히 명절을 전후로 가정법원을 찾는 부부가 급증한다고 할 정도다.


위원회가 제사 간소화 방안을 제안한 것은 제사 관습에 대한 20·30세대의 거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위원회가 만 20세 이상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례 문화 관련 국민인식조사(제례 문화 조사)'에서 응답자 응답자의 55.9%는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라고 밝혔다. 현재 제사를 지낸다고 답한 이들이 62.2%인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제사를 이어가는 가정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20·30세대 성인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서 "구태한 제사 관습이 가정불화를 일으키고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미영(사회학박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제물과 격식이 간소화했다지만 잦은 제사는 여전히 가족화합을 해칠 수 있어 보인다”며 “주자가례와 조선의 예학자들도 제사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고, 전통문화의 롤모델이라 할 수 있는 종가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우리 사회 제사문화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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