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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Oct 26. 2024

딸, 엄마,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엄마의 술한잔

우리 모두에게,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

분명 제목은 이상한 나라의 장례식장 단막극장인데... 경조사를 화두로 시작된 글은 제사 이슈를 거쳐, 왜 늘 며느리 관련 글에서 정점을 찍고 있까. 


결혼식부터 장례식, 회갑연 등 집안의 대소사의 꽃이었던 40년째 며느리과 2030 mz세대 며느리들이 공존하는 시대에서 우린 서로 균형점을 찾아가는 중이라 그럴까.


실제, 장례식장 대화는 며느리들이자, 시어머니들의 저녁식사에서 정점을 찍었다. 테이블에 소주와 맥주가 연신 서브되고 무한 리필되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근 40여 년째 며느리였다가, 지금은 2030 mz세대 며느리를 둔 시어머님들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유익하다고 인정하는 것에 따라
행동합니다." 바자로프가 말했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부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유익하기 때문에 부정하는 겁니다."

(...) 니콜라이 페트로비치가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소.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어요... 그러나 건설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우리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터전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 아버지와 아들, 이반 투르게네프


핵심 멤버는 대략 이러했다. 엄마가 대학교 수업에 가는 날이면 간간히 저녁을 주셨던 1502호 봉 이모, 비 오는 날 가끔 우리 집 이불 빨래를 걷어주곤 했던 301호 근 엄마. 삼삼오오 모여 피자와 통닭을 직접 만들어주곤 했던 엄마표 수제 간식 모임 일원이었던 703호 울 이모. 에서 출산한 내 동생을 옆집 할머니 옆에서 바글바글 뜨거운 물을 끓였다던 207호 이모.


본명은 모른 채 아이들 이름으로 불렸던 OO의 엄마. 지금 와서 딱히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물어볼 생각도 나지 않는 동네 이모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동 + 호수로 생생하게 매치되는 정다웠던 이웃들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도, 서로 눈인사라도 하는 게 아니라 핸드폰에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요즘.

'아랫집 이모'가 아니라 '층간소음으로 컴플레인하는 예민한 이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 지금. 더 그립고 아련한 사람들.


이제는 정겨움을 잃은 아파트에 살면서...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오랜 이웃을 만나니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성인이 되어, 할머니가 된 이모들과 처음으로 소주 한잔, 맥주 한잔 나누었다.


시댁에서 며느리 몫만 없었다던 계란 프라이가 서러워,

집에 돌아와 계란 한 판 프라이를 부쳐 우걱우걱 먹었다는 프라이 계의 전설적인 봉 며느리. 1502호 봉 이모에게 소주 한 잔.


지금은 맞벌이 가정  내외 대신 두 손주들 학교- 학원 동선을 전담 케어한다는 봉 할머니에게 맥주 한 잔을 더해 폭탄주를 만들어드렸다. 허리 디스크 수술에 허리가 아프지만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어서 할 만 하다시며 시원하게 술 한잔 털어넣으셨다.



음식은 정성 어린 손맛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며 장갑을 못 끼게 하셨던 서슬 퍼런 시어머니 말씀에, 매번 맨손으로 김치 양념을 비벼 지금도 매운 손이 서럽다는 김장업계의 큰 손 며느리. 301호 근 이모에게 소주 한 잔.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 엄마를 부탁해


이모 역시 이혼한 아들 내외 대신 두 손주들을 키우는 정엄마였다. 스트레이트로 드려야 할 판이었다. 이모는 손맛을 강조할 며느리도 없이 혼자 김장김치를 비비시는데... 정작 절임 배추 주문할 봇장도 못 내신 다하셨다.


그리고 경상도에서 시집와, 전라도 시집살이 지옥을 맛봤다던 며느리 703호 울 이모에게 소주 한 잔.


이모는 손주가 보고 싶어 아른아른거리지만 mz세대 며느리가 행여 불편해할까 봐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손주앓이를 자제한다던 시어머니였다. 이모는 가끔 육아일상 중 밤마실 나가는  대신 손주를 봐주친정 엄마이기도 했다.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207호 이모는,  90대 노모 시어머님을 뵈러 매일 남편이자 아들인 OO 아빠가 다닌다며

... 며느리인 본인 대신 고생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아내였다. 아들이 노모를 매일 찾아뵈는 일에, 왜 이모가 감동인건지 모를 일이었지만  대리 효도 대신 셀프 효도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일한 남편을 둔 아내서 그런걸까...생각이 들었다.


 와중에 며느리와 함께 목욕탕에 가신다는, 며느리와 39금 대화도 서슴없이 나눈다는 시어머니이기도 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생신상을 거하게 차렸다며 자랑도 곁들이셨다. 즐거움이 깃든, 그 테이블에서 흔치 않은 한 잔이었다.


(왓! 목욕탕을 같이 다니신다고요.)


내가 소주 한잔을 털어마셨다. 저에겐 그런 용기가 없습니다. 제가 대신 마시겠어요.



그리고 맥주 한 잔 한숨에 들이켰다. 가 우리 친정 아버지, 생신상을 거나하게 차려드린 적이 있었던가.


육아 일상에 버거워하면서 거창한 아빠의 퇴임식은커녕,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아빠의 평생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도 못 마련하지 않았던가.


시댁에서 돌아와 친정에 오면 눕기 바쁜 딸이 아니었던가.


결국 문제는 균형에서 얼마나 벗어날지에 대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전략적으로 균형을 벗어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 마리아 벤저민 Marina benjamin


의구심이 생겼다.


애초에, 균형점을 벗어난 기울어진 저울에서 우린 어떻게 전략적으로 균형을 잡아야할까. 


그런데, 누군가의 딸, 엄마,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엄마인 우리는. 왜 굳이 서로 균형을 잡아야하는걸까. 무작정, 마냥, 이해하지 못하고. 무한한 애정과 응원을 보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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