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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Nov 01. 2024

입관식 그 이후. 그리움이 아니라 후회만 남기고.

저녁거리를 사러 동네 마트에 들렀다. 그런데 바나나를 고르시던 할아버지를 보고서, 뭘 사러 왔었지... 깜빡 잊어버렸다. 바나나를 사려고 했던 건 분명히 아니었는데... 할아버지 앞에서 한참을 멍하게 서있었다. 할아버지 눈은 분명 5천 원짜리 바나나에 한참 머물러있었다. 브랜드 스티커가 붙여져 있던, 노란빛과 초록빛이 공존하던 5천 원짜리 바나나.


하지만 덜덜 떠는 손으로 집으신 건  2천 원짜리 이름 없는 바나나였다. 익을 대로 익 점바나나. 이 날씨로 치면, 내일 오후즈음엔 사그라져서 알아서 바나나 셰이크가 돼있을지도 모를 그런 바나나. 하지만 누구도 말리는 이 없이,  바나나 한 손을 들고나가셨다.

애초에 넓지도 않은 바지통 다리 근육이 없는 통에 더 할랑거렸다.



(할아버지! 그 바나나 말고 저 바나나로 사가세요. 제가 사드릴게요)


머릿속에 맴돌던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눈물만 나와 우두커니 서있었다. 단골 마트 계산대 직원은 영문을 모른 채 손을 잠시 멈추고 어디 둘지 모를 눈동자만 굴리셨다.


(... 밴드 물품 있으실까요?)


언젠가 아빠가 사 왔던 점점이 바나나. 껍질을 까면 문드러질 대로 문들어진 허멀건 속살이 흘러내렸다. 음식물 쓰레기 통에 내던지면서


(아빠, 바나나 이거 얼마나 한다고!)


애먼 바나나를 내동댕이치며 화를 내던 내가 보였다.


아빠는 연금 수령자였지만 3달에 1,700만 원 타그리소 약값에 휘청이지 않을 순 없어서 2천 원짜리 점박이 바나나로라도 아껴볼 심산이었나 보다 했다.



입관식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까 잠시 고민했다. 좁은 관 속에, 삼베옷을 입고 누워있는 할아버지. 이제는 온기 없이 차디차게, 굳어버린 할아버지를 보고 6-8세의 아이들 심정은 어떨까 싶어서였다. 입관식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나에게도 어떻게 각인될지 몰라 나조차도 걱정되는 마음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삼베옷의 할아버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보통의 날보다는 엄숙했지만 여전한 해맑음으로 할아버지의 관에 저마다 깨알 글씨를 남겼다. 저마다 쓴 문장 속_글자, 띄어쓰기, 맞춤법 어느 문장 하나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할아버지 사랑해요.)

마음 하나는 단단하고 옹골차게 꾹꾹 눌러 담음 손글씨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준비가 안 돼 있어요. 저기요, 그건 정말 쓸쓸한 장례식이었어요. 사람은 그렇게 죽는 게 아니에요." 레이코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어루만졌다. "우리들 모두가 그런 식으로 죽어요. 나도 와타나베 씨도."

- 노르웨이의 숲


장례식이 끝나고 난 후 한 번도 입관식에서 수의를 입은 아빠의 모습이 아른거렸던 적 없다.



아빠가 좋아하던 단골식당을 지나치면 그날의 휘청거리던 아빠 대신, 느린 걸음의 아빠를 부축하면서도 마음은 바빠 빠른 걸음으로 동동거리던 내 모습이 보였다.


애써 끓여간 전복죽은 두 숟가락도 제대로 먹지도 않고 무르면서 어린아이처럼 떡을 찾는 아빠를 미워하던 내가 보였다.


아빠가 좋아하던 추어탕, 갈비탕, 민물 매운탕... 온 탕 집은 다 돌며 나 역시 탕 부림을 하면서. 가끔 결제하는 그 탕 두 그릇값에, 눈치 보여하던 내가 보였다.



외벌이 살림, 쌍둥이 육아에, 하루에도 몇 번씩 친정집을 오가는 딸 노릇 하는 내가 버거워 보일까 봐 더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내가 보였다. 실은 자주 버거웠다. 그리고 그 버거움은 늘 아이들에게 들켰다.


아빠에게 전했던 그 마지막 인사 뒤로, 그리움 대신 후회들만 동동 떠올랐다. 그때마다 '그때의 나의 최선'을 핑계 대며 눈물 몇 톨 후둑거렸다. 이내 부산스러움 안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죽음은 내 탓이 아니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니며, 그것은 내리는 비처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세계로, 나는 나 자신의 진흙탕으로 돌아갔다.

- 노르웨이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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