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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Dec 16. 2024

몇 년 만에, 네일아트

네 여자의 네일아트(1)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한 친구는 늘 멋져 보였다. 평생토록 한 번도 내게 없던 재주를 가진 사람. 노력을 한다한들, 비슷한 느낌조차 흉내 낼 수 없을 독보적인 그런 솜씨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재주를 흠모했다.


학창 시절부터 외모에도 관심이 많던 친구는, "○○ 최고의 미녀가 될 거야." 진심 어린 우스갯소리를 하며 찰랑거리던 단발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런 다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 당당함에, 언젠가 정말 우리 지역, 최고의 미녀가 될 것만 같았다. 내 눈에 모든 면에서 야무지던 친구와 십수 년을 붙어 지냈다.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항상 같이 있는 양.


그러다, 신혼생활을 기점으로 한번, 난임을 기점으로 한번. 우리는 거리두리를 몇 년 이어나가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애달파하던, 인간관계의 씨줄과 날줄은 실은 언제든 닳아지고 끊어질 준비가 되어있었다. 내가 아닌 타인과 완벽하게 조화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 친구와의 거리 두기를 나는 한참 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완벽한 절연은 아니었다. 연락을 안 하고 지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럼없이 서로의 집을 오가며 온기 어린 떡과 김치를 나누고, 방앗간에서 짜온 참기름병을 나눠가지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서로의 일상을 촘촘히 나누다,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의 갈림길에서 데면데면해진 우리. 우리는 이렇다 할 화끈한 계기도 없이 멀어졌다. 굳이 계기를 찾자면, '결혼'이었을까 아님 '임신'이었을까.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땐 친구는 남편의 병원에서 '직원'겸하는 ' 사모'가 되어있었고. 나는 하교 후 아이들 피아노 가방과 태권도 가방을 각각 2개씩 들고 뛰어다니는 쌍둥이 엄마가 되어있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일상을 나누지 않았다. 어색함을, 빙빙 도는 주변의 말들로 무의미하게 채우는 시간이 가까스로 이어졌다. 그러다 우린 자격증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놓고 대화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나는 임신 전엔 향토 음식 수업 들었었는데... 그거 너무 좋았잖아. 한국사 능력시험 자격증 공부도 좋았고. 다도 수업도 괜찮았었어!"


"니 한국사 능력시험 필기 노트 아직도 나한테 있잖아... 근데 난 시험 보고 다 빛삭됐어! 난 베이킹 수업이랑 피부관리사자격증 수업이 좋았어."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무엇이라도 견딜 수 있다. 그 '이유'가 될 수 있는 있는 것들은 세상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끊임없는 즐거움은 그중 하나가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좇지 마라. 행복은 그 자체에 골몰하지 않고 의미 있는 무언가에 집중할 때 찾아오는 부산물이다.
-마음을 돌보는 뇌과학, 안데르스 한센


자격증과 자기 계발, 취미 수업으로 다시 우리 대화에 불이 붙었다. 친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과정, 네일아트 과정, 각종 조리사 요리수업 과정을 다 마스터하곤 마지막 정점을 지게차 자격증으로 찍었다.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하고 의사 사모님이 된 친구는, 왜 지게차 운전 자격증까지 땄을까. 자기 계발을 향한 열정이 부럽고 대단했지만 갑자기 지게차에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게 피아노 건반을 똥당거리며 소프라노 성악을 하던 드레스를 입은 친구의 모습과 터프하게 지게차를 운전하던 친구의 모습 간극이 너무도 컸던 까닭이다.


뭐, 아무렴 괜찮았다. 뭐든 배우면 좋은 거라고 생각하니까. 집에 잘 안 쓰던 물건도, 놔두고 있으면 언젠가는 쓰임을 찾는 날이 올거리고 생각하며 물건을 잘 안 버리는 사람이... 뭐든 배워놓고 자격증을 따놓으면 생활에 큰 쓰임이 있을 거라 믿, 수업이며, 자격증엔 오픈마인드의 사람이까. 그리고 지게차 자격증을 따는 누군가의 열정에, 감 놔라 배 놔라 오지랖을 펼칠 일도 아니었다.


지게차의 작동원리에 대해 설명하던 친구는 불현듯,

(제, 너 손톱에, 네일아트 해줄까)

맹하게, 색감 없던  손을 바라봤다.


이 친구에게, 오랜만에 잡혀보는 손. 생기 없는 손 멋쩍어하면서, 고등학교땐 서슴없이 조물조물하던 손을 오랜만에 잡아봐 어색해하면서.... 친구에게 네일아트 받는 상상을 해봤다. 그런데 거의 몇 년 만에 만나서 갑자기 네일아트를 받는다는 건 또 좀 그렇지 않나...


(피부 미용 공부하고, 네일아트 공부하면... 네 피부에도 마사지해 주고. 네 손톱도 칠해주고 그러는 거야?)


친구에게, 손 내미는 대신 물었다.


친구는 답하진 않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아, 메이크업 박스 살림까지 별도로 있었던 친구의 얼굴은 화장기 하나 없이 색감이라곤 없었으니까.


배우지만 말고... 너한테도 해줘.


친구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었지만 손잡기도 무색한 마당에, 말은 띄엄띄엄 이었다.


우울해서... 더 자격증을 땄던 것 같아.


예상했던 대답이 막상 친구의 입에서 나오니, 잠시 먹먹해졌다. 그렇다고 몇 년을 거슬러 만나 친구의 우울감을 감히 짐작하고 섣불리 위로할 일도 아니었다.


친구와 그날의 밥과 차값을, 기가 막히게 1/n 하고서 헤어졌다. 그 후 무미건조하던 내 손톱에, 민트색 색감이 입혀졌다.  마침 가족 여행을 앞두고 있던 데다, 가족의 사업체 홍보를 해줄 일이 있었던 터라... 겸사겸사 기분을 내었다.


오랜만에 기분전환 삼아해 본 네일아트에, 한 번씩 손톱에 눈길이 머물렀다. 친구 생각이 났다. 지금쯤 손톱에 화려한 비즈로 장식도 하고, 매끈하게 광나는 피부 위에, 메이크업도 살뜰히 하고, 웃고 있으려나. 이제 우울감 대신 생기를 채워 넣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카카오톡 메인 사진을 힐끗거려 봤지만 친구는 몇 년째 사진을 바꾼 일이 없다.



맨 손톱으로 잡는 것보다 군고구마 하나를 집어도 네일아트가 된 매끈한 손톱으로 잡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며. 가족 여행이지만 홍보 사원의 마음으로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었던 현장에서 네일 칠해진 손은 빛을 발했다.


그런데, 김장을 앞두고서... 미리 지우 지를 못했네. 다른 시댁 식구들보다 한 나절은 더 늦게 도착한 와중에, 손톱까지 블링블링 네일을 바르고 와 주섬주섬 앉은 며느리는 다시금 손톱을 매만지고 있었다.


김장 전에, 네일아트를 지우고 왔어야지...


늦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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