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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Nov 27. 2024

로맨스와 에로 장르가 빠진 육아 드라마

드라마 정숙한 세일즈가 쏘아 올린 39금 토크는 브런치 모임에서 꽃을 피웠다. 하지만 이내 다들 손사래를 치기 일쑤.


우리 모두에게,

눈물을 그렁그렁 거리며 돌아서는 여자 주인공의 손을 거칠게 낚아채고 넓은 가슴팍 속으로 힘껏 끌어당기는 남자 주인공현실 속 없었고.


눈가에 아롱다롱 맺힌 눈물을, 남편은 다정한 엄지로 닦아주 않으며.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각도가 예쁜 키스 신도 없다.


출산과 육아가 시작된 부부 일상엔 로맨스 장르와 에로틱 무드가 빠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갑자기 드라마 한 편 보고, 과감하게 성인용품을 끌어들여올 배짱 있었을까.


하늘하늘한 슬립을 열어젖히면 김성령 배우님 만큼 섹시한 자태가 나올 것도 아니었다. 오호, 통제라.



출산 후, 늘어난 건 뱃살. 쳐진 건, 가슴.

그리고 내 몸엔 고장 난 데가 또 하나 있었다. 새삥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어도. Impossible is nothing라는 말이 무색하게, 10분 러닝도 불가능한 몸. 내가 이러려고 쌍둥이 자연분만으로 낳았나, 싶어 지면서 모멸감이 느껴지는 순간. 젖어드는 건 슬픔만이 아니었다. 줄어드는 건 자신감뿐만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가장 심한 건 부부 관계에 대한 열정과 의지.

아이들 칭얼거림을 배경으로,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배려를 잊었고, 각자의 노고를 치하할 여유를 잃었다. 지친 감정을 북돋아줄 여력이 없던 부부 점점 침실에서마저도 멀어져 갔다.


육아일상 중 내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그리고 본능적으로 표출하게 되는 대상이 빈번하게 내 아이들이 된다는 사실에 시시때때로 속이 시끄러웠다. 우는 아이를 마주하고 깨어있는 새벽. 내 잠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육아는 다정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엄마 품에 파고드는 건지, 엄마가 아이의 작은 어깨에 굳이 기대어 자는 건지 모를 정도로 두 아이 사이에서 잠드는 게 그저 행복할 지경!



하지만 예민한 잠 귀에, 새근새근 숨소리 대신 남편의 드르렁 코골이 소리와 불현듯 숨이 멎다가 컥컥 대며 몰아쉬는 숨소리를 들을 때면 간신히 들었던 잠도 달아났다. 수면무호흡증의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걱정과 함께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게, 밤맥주라도 마시지 말았어야지!)


'당신은 그래도 집에서 쉬지 않느냐' 말하는 무심한 말 앞에 분노가 일렁거렸다. 아이들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토스하고, 남편에게 느꼈던 서운함은 아이들에게 분노로 투하하는 때가 늘었다. 아이와도, 남편과도 서로 평행선을 걸었다.


그런데 언제 슬립으로 갈아입을 것이며, 맥주 몇 캔 이미 까드시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남편을 무슨 비위로 돌려 깨울 것이며. 깨운다 한들, 후끈달끈한 밤오려나.


드라마 속 채찍과 안대, 망사 속옷과 마사지 크림 중 육아 현장 현실에서 쓸 수 있는 것 무엇일까. 배를 긁적이며 맥주 캔을 눈치 없이 따던 남편의 엉덩이를 휘릭휘픽하면 모를까.


정숙한 세일즈의 방판 시스터즈가 육아맘들 앞에서 잔뜩 물품을 늘어놓는다 한들... 육아맘들은 육아용품이 아닌, 아이들 옷이 아닌, 성인용품 컬렉션 앞에서 지갑을 열었을까.


육아의 굴레 속에서는 로맨스와 에로 없이, 전우애도 없이 육아 전쟁터 속에서 각개전투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24시간 아이들과 집안일 사이뿐이라며. 남편은 육아와 직장만 오가는 일상이라며.


부부는, 각자 하루의 기색을 살펴야 했다. 일과의 끝자락에서라도 '아이'라는 단어는 내려놓아야 했다. 각자의 취향을 함께 탐색하고 나누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온통 '아이'라는 단어를 붙들고 사는 나와는 달리, 여전히 '자기 자신'이라는 고유의 영역을 지키며 그 안에 좋아하는 것들로 에너지를 채우는 남편이 미워졌다.


남편이 여전히, 오롯이, ''라는 한 사람으로 남아있는 게 억울했다. 아이들 틈 사이에서 취향이라는 단어를 잃고 빛이 바래는 중이었건만. 모되고 있었건만. 아이들의 아빠로라기보다 자기 자신으로 기능하려는 모습이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밤마다, 더 멀어져 갔다. 차갑게 식어갔다. 식은 열정 앞엔 mbti도 필요없었다. 내향형과 외향형을 따질 접점 조차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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