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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 간 엄마 옆, 나는 호위무사

누가 우리 엄마에게 돌을 던지느냐.

by 김여희 Feb 24. 2025

20대 초반의 나이에, 시집 가 맏며느리로 시댁의 경조사를 도맡아 했어야 했던 몇 십 년. 15평 주공아파트에서 시동생들을 데리고 살아야 했던 몇 년. 우유 배달과 출판사 영업을 하며 세 딸들을 독박육아로 키웠던 몇 년. 늦깎이 대학생으로 대학 2곳을 졸업하고

뒤늦게  교원 자격증을 취득했던 십 년. 학교에 몸 담고 일했던 몇 십 년. 아빠의 투병을 지켜봤던 십 년. 2년 사이에 5명을 출산한 세 딸들과 5명의 손주들을 돌봐줘야 했던 근 십 년. 딸의 재활 병원에서 쪽잠을 자며 간병했던 지난 1년. 결혼 생활 내내, 투병 기간까지 쉬임 없이 분란을 일으켰을 남편의 도발을 지켜보며 속 끓였을 십십십십수년.


그럼, 우리 엄마 나이는 도대체 몇 이란 말인가?

하지만 엄마에겐, 이 고난과 고통이 중첩된 시간들을 거스르는 방법이 있었다. 취미 삼아하는 밭일과 자전거 타기, 독서. 돈 쓰는 취미 없이, 스스로 호화롭게 하는 시간들은 일절 없이. 그렇지만 엄마의 여백은 늘 알찼다. 하지만 외관상으로도 확연하게 퉁퉁 부은 무릎이 남았다. 허벅지 한쪽 근육이 빠져 엄마의 뒷모습은 갸우뚱해 보였다.


그런 엄마와 나는, 내 인생 첫 여행을 함께 떠나려 했다.

처음부터 엄마내 여행 속에 끼웠던 것 아니다.

얼마 간의 취소 수수료를 부담하고 기존 여행 기간에 며칠을 추가다. 그렇다고 엄마의 여행비를 대며, 모시려 했던 효도여행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할 뿐인 그런 여행이었다. 나는 효녀가 못 되었다. 이번에도 외벌이를 핑계 삼는 못난 딸이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 모녀는 여행 대신 장례식장의 문턱을 밟게 되었다. 내 옆의 엄마는 한껏 위축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의 호위무사라도 되는 양 도리어 의기양양했다. 적어도 눈물은 흘린 지언정, 양 어깨에 가시 뽕 하나는 얹고 가야 했다.


시댁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시동생이자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여대장부 엄마의 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명예퇴직을 불사하고 투병 수발결심했건만... 친정집 냉장고 안에, 출처 모를 반찬통 몇이 들고나갔다 하는 걸 봤던 때에도 슬픔도, 노여움도, 드러냈던 적이 없던 엄마였다.


남편이자, 내 아빠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던 엄마. 독일에서의 엄마는 손주들을 돌보는 왁자지껄함 속에서 잠시 서글펐을까.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동생들과 문상객을 맞이하면서 잠시 궁금해하던 그런 엄마였다.


엄마는, 작정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섧게 울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작은 엄마를 힘껏 껴안았다.

돌아가신 작은 아빠에게, 엄마는 주선자이기도 했다.


겹사돈이 불러올지 모를 잠재된 갈등마저 불사한 채 엄마는 지금의 작은 엄마를 소개한 사람. 주선을 우려하는 마음보다 두 사람의 새 출발을 누구보다 바랐던 사람. 전에 없던 오지랖 부렸던 사람말이다.


작은 엄마와 작은 아빠가 결혼하시고 나서 몇 십 년, 그 둘은 새 울타리 안에서 행복했다. 보통의 부부들이 겪는 행복과 불행 사이를 넘나들었을지언정. 하지만 그 둘의 결합 앞에 무한정 축복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데다, 막상 슬픈 결말에 당도하고 나니 엄마는 위축되는 모양이었다.


긴장된 모습이 역력하던 엄마 앞에, 각각 두 사람이 다가왔다.


지난해 9월 초, 돌아가신 우리 아부지의 사촌 동생.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작은 소동을 일으켰던 아빠의 먼 친척. 그리고 올해 2월 초, 돌아가신 우리 작은 아부지의 처제이자 엄마에겐 시누이.


엄마를 주축으로, 시댁과 친정 양 가의 두 사람이 나와는 다른 어깨 뽕을 장착한 채로 엄마에게 다가섰다. 이 날만큼은 호위무사 역할이었던 엄마의 첫째 딸 나는 먼발치에서 각각의 회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위축된 엄마 앞에서 점점 언성을 높이는 두 사람.


- 사람 마음속엔 벌레가 하나씩 산다잖아.
그 벌레가 날 집어삼키면
그래서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면
그렇게 내가 변하게 되면...

-죽여버릴 거야


육룡이 나르샤 대사가 떠올랐다. 치맛자락 사이로 검을 매만지고 있었다.


(누가 우리 엄마에게 돌을 던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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