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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사주를 믿으십니까. 도리를 아십니까

by 김여희 Feb 11. 2025

친척이라지만 연락처도 없는 친척분들을 장례식장에서 연달아 만나는 것도 난처할 일이었다. 성함도 잘 모르지만 얼굴이나 체형 어딘가, 닮은 구석을 타인에게서 발견하고 접점을 찾는 것도 신기할 일이었다. 하지만 연달아 터진 조사에, 장례식장에서 매번 만나다 보니


(여기는 지난번보다 홍어가 더 쿰쿰하네요.)

(지난번 매실 장아찌는 새초롬허니 입맛 돌게 하드만...)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장례식장 한상 차림 앞에서 반찬으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제법 이물 없이 안부를 주고받게 되었다. 근 3년 동안 사촌동생,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작은 아버지까지 총 4번째 장례식. 지병 없이, 금슬 좋게 사시다가 아흔 넘은 연세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반갑지 않은 장례식장 회동에서 마주하는 일은 대체 언제쯤 멈출 것인가.


장례식장 13첩 반상을 놓고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저마다의 꿈 이야기를 쏟아냈다. 누군가는 꿈에서 본 증조할머님 이야기를 했고... 고모의 꿈에선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꽃 무더기 속에서 손짓하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의 시선이 제단 장식 꽃들 앞에서 멈추었다. 누군가는 4년 전, 상의 없이 옮겼다던 문중 자리를 말했고 또 다른 이는 몇 대에 걸쳐 지낸 적이 없던 조상님 제사를 탓했다.


우리가 그동안 조상님 제사에
소홀해서 그런 것 같아...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고 가족 모두의 생시를 놓고서 최적의 날에, 묫자리를 옮겼다는 이야기. 무당의 말에 묘를 파보았더니 대체나 수맥이 흐르는 듯 땅이 촉촉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나무가 있 자리도 아닌데 나무뿌리가 무성하더라는 말까지. 영화 파묘 이후 뒤풀이 현장이라도 온 듯했다. 


관을 휘감고 있었다는 나무뿌리 이야기를 들으며 더덕 무침을 질겅거렸고. 주문이 한번 더 돌아 스티로품 박스 안에서 갓 꺼내 따뜻하고 촉촉하던 술떡을 연신 오물거렸다. 그러다 깊은 밤 파낸 무덤 자리에 오물을 투척하고 오라는 무당의 과제 수행하느라 진땀을 뺐다던 누군가의 에피소드 간담 서늘하게 들었다. 꺽.


(참...)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천, 가톨릭 신자, 불자까지... 저마다의 믿음을 가지고 나름의 종교 생활을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불현듯 이 비극적인 사고 앞에 '제사와 파묘, 조상신'이라는 온통 신의 색채를 띈 키워드로 대통합 대화의 장이 되는 모양새라니. 명절 전후 가족 간 불화나 갈등, 가사 노동 등에 대한 스트레스의 중심엔 늘 제사가 있지 않았던가. 


각 나라마다 서로의 의식과 의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만 최근 로봇 관련 종목연일 강세였던 요즘, 다시금 '제사와 묫자리, 조상신'이라는 단어로 회귀되던 장례식장에서의 대화가 신기했다. 


하긴 비상계엄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무속인 '비단 아씨'가 증인으로 채택되는 판국인데...


대만의 여배우 쉬시위안이 일본에서 가족 여행을 하던 중 폐렴을 동반한 독감으로 사망한 일을 두고, 남편인 클론 구준엽의 관상과 사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구준엽이 사별할 것이라고 예언한 역술가의 영상이 화제마당에...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건가.


어쨌거나  '제사와 묫자리, 조상신'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로 시작해서 장흥 ○○선녀, 영암 ○○당 전화번호가 오고 갔던 대화들 또한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슬픔 속에, 원망할만한 구실타개할 만한 방도를 찾으려 애쓰는 와중에 나온 말들이었을 테다. 이 자리가 딱했다. 그래도 들리는 말로, 누구 하나 남겨진 가족들을 탓하는 이야기는 없어 다행이다 싶었다. 원망을 애먼 데서 찾아 '그 배우자 관상이나 사주'를 운운하는 것만큼 못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시중에서 파는 냉동 전을 해동해서 기름을 두르고 제대로 부치기나 했을까... 어쩜 탄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모양새로 이렇게 예쁘게 부쳤을까. 줄 맞춰서 나온 전들을 요리 저리 보다가 한 입에 쏙 넣어 오물거렸다.


그러다 며칠 전, 설날 차례상을 위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5종의 전과 육전을 준비했던 명절날이 생각났다. 전을 부치고 시댁과 친정을 오가느라 작은 아버지께 명절 안부 인사조차 생각하지 못했었던 나의 설 연휴.


틈이 나면 나를 위한 커피를 마시러 나가야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꿈꾸며 혼자만의 시간을 꾸려볼 잔머리만 굴렸던 나의 명절말이다.


그 틈 속엔 작은 아빠 안부 전화 한 통 해볼 몇 분도 안 넣었던... 그 궁리도 못했던, 무심했던 조카 설.


그럼 이제 누군가는 무심함을 탓하는 나를 위로해 주려, 출가외인이라는 단어를 꺼내놓으려나.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 씨의 음주운전 사건과 관련해 "출가외인인 딸이 한 일에 '사과하라'라고 하는 이도 모자란 사람이지만..."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것도 이상할 일은 또 아니지 싶다.


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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