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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Oct 21. 2020

너의 행동이 들리기 시작했어

자아성찰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건 반성과 후회였다.

조금은 더 아이에게 따뜻하게 대해줄 걸, 훈육을 할 때는 조금 더 화를 내지 말걸 이라는 이런 반성들이었다.

아이를 훈육하고 나서는 , 항상 아이에게 미안했다.

나는 아이에게 친구같은 편안한 부모, 다정한 부모가 되고 싶었다.

우리 부모님 역시 그런 부모님 이셨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우리 친척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 둘째 작은 아버지는 자식들에 대한 복이 없으신 분이다.

복이 없느니 있으니 내가 이렇게 판단을 하는 것도 어쩌면 주제 넘은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어떻게 자식이 부모에게 그렇게 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자녀에 대한 복이 없으셨다.

우리 둘째 큰아버지는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그런 분이셨다. 까마득한 시골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 공부를 늘 잘하셨다.

작은 아버지는 집에 희망이었고, 늘 전교 1등을 할 때면 집 마당에서 잔치를 벌이고 했었다.

그렇게 귀하게 크고 자라왔는데, 현재 지금은 대장암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다.

수술을 하셨고, 지금은 아직 치료 중이다.

이렇게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 작은 아버지의 딸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려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일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게 바로 현실이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고 자식들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일할 만큼, 열심히 살아왔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저 자식들에게 작은 아버지란 존재는 '우리에게 시간을 주지 않은 사람'

'자식에게 다정하지 않는 사람' 그런 존재였다.

참 슬픈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그 실마리를 풀어가려면 과거로 가야하는데, 과거는 어땠을까?

그리고 이 모든게 작은 아버지의 책임인걸까? 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쉽게 끊을 수 없는 천륜인데도 불구하고 , 그들의 관계는 서먹했으며 어색했다.


그렇다보니, 나는 자식에게 어떤 부모가 되야하는지 늘 고민하고 자아성찰을 한다.

내가 정말 아이들에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하는 생각들이 정말 맞는 생각인지 고민이 된다.

인덕이와 현덕이를 볼 때면, 지금은 이렇게나 엄마 아빠를 좋아하는데 나중에 커서도 좋아할까 ?

그런 쓸쓸한 생각도 들 때가 있다.


나는 31살의 나이이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의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육아에 대한 글들을 보고, 책을 읽으며 공부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들은 필요하다고 했는데 아이들에 대해 깊게 알아가려고 하는 시도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육아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건 수박 겉핧기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라는 우주속에서 망원경만을 가지고, 우주를 판단하려는 미련스러운 과학자는 아니었을까?


나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우리에게는 자아성찰이 필요하다.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 그 진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우리를 들여다볼 현미경이 필요하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 돈이 아닌 , 학벌이 아닌 , 누군가에게 자랑하려고 하는 마음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함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가질 수록, 나는 어제의 나보다 괜찮은 사람이 될 것 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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