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공공기관이 돌아가도 되는걸까?

말로만 들었던 공포의 공무원 인수인계

by 솔직히

대학생 시절, 나는 나의 좋지 않은 사회성을 강화하기 위해 쉬지않고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알바, 개인 음식점 알바, 학습시터 아르바이트부터 나에게 꽤나 큰 도전이었던 마트 시식알바, 전단지 나눠주기 알바까지 꽤나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었다.

딱 한번, 쌀국수집에서 빠르게 서빙을 해야하는 알바를 하루하고 잘린 경험을 빼면..

대부분의 알바는 그만둘 때 사장님이랑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정이 들며 헤어지곤 했었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 있으면 연락달라는 이야기도 몇번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일머리가 아주 없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고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나는 내가 매우 부족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인사발령 날짜부터 당장 나는 어떤 업무의 담당자가 되게 되는데, 자리정리도 할 새도 없이 걸려오는 민원전화들과 공문들을 처리하는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인수인계가 편의점 알바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인터넷 검색창에 "공무원 인수인계"만 검색해도 "공무원 인수인계 개판"이라는 연관검색어가 뜰 정도이니 말이다. 나도 이 말에 꽤나 동의한다. 내가 사직서를 제출했었던 이유 중에 마지막 근무지의 전임자도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 전임자 뒷담화를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휴직을 낸 부서의 전임자는.. 떠올리기만 해도 중학생 이후로 끊었던 욕이 나올정도로.. 엉터리로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이전부터 내려오는 인수인계서를 읊어주었고 나머지는 나보고 다 알아서 하라는 말 뿐이었다. 행정처분에 대한 인수인계를 위해 처음 같이 출장을 간 날, 내가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물어보자 본인은 디스크가 있어서 앉아있기 힘들다며 뒷짐을 서서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주사님이 그냥 보시면 돼요~" 라는 말만 반복했던 그였다.

심지어 그는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행정처분이라는 부담감 있는 업무를 해야하는데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주는 전임자와 나몰라라 하는 스타일의 팀장님의 조합은 정말 최악이었다.

나의 이전 전임자들이 얼마나 천사같은 사람들이었는지 깨달았고 인수인계의 극강의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공무원조직에서는 이런 인수인계가 일어나게 되는걸까?

아마도 급박하게 이루어지는 인사이동과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는 식의 악순환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1.

급박하게 이루어지는 인사이동

공무원의 인사는 보통 수시인사와 정기인사가 있다. 수시인사는 정말 말 그대로 수시로 나는 인사이고 정기인사는 보통 1월과 7월에 있지만 정확한 날짜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인사시즌이 오면 분위기는 굉장히 어수선해지기 시작한다. 보통 한 자리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들은 이번에는 내가 가겠지? 하고 예측만 할 뿐이고 누가 가고 누가 남게될 지는 인사가 날 때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7월 1일자 인사라고 하면 보통은 한 삼일이나 이틀 정도 전인 6월 29일쯤 국인사가 난다. 국인사가 나도 그 안에 다양한 과들이 있고 팀들이 있기 때문에 인사가 나고 담당업무가 정해지기까지는 또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당장 7월 1일이 되었는데도 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인사를 넉넉한 기간을 두고 내지 않는 이유가, 인사를 빨리 낼 경우 남은 기간동안 전임자들이 일을 안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급박한 인사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기관이 돌아가는 것보다는 법정 기간안에 마땅히 처리해야 할 일을 처리하지 않은 전임자를 벌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지만)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공무원의 현실을 재미있게 잘 반영해서 유명한 충주시 유튜브 채널에 있는"왜 지우고 가셨어요?"라는 영상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다. 특히 전임자가 자신이 만든 파일이니 다 지우고 갔다는 부분은 정말 웃픈 부분이었다. 출장을 가서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전임자에게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주사님, 죄송한데 주사님은 이 업무를 일년넘게 하셨지만 저는 처음이잖아요. 출장 이렇게 같이 와주신건 정말 감사하지만 저보고 알아서 서류를 보라고 하면 제가 어떻게 판단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네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전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저도 인수인계 받은게 없어요. 그리고 전임자분이 출장도 같이 나와준적 없구요."

같이 출장을 나와준건 정말 고맙게 생각헀다. 하지만 본인이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받았다고 나도 똑같이 알아서 하라는게 말이 되는건가.. 나는 한번도 인수인계를 저런 식으로 했던 적이 없었고 이정도로 무책임한 전임자는 처음이었기에 매우 화가났다.

시집살이도 대물림되지 않는 시대에 악덕 인수인계를 대물림하는 건, 안그래도 힘든 공무원사회에서 없어져야 하는 안좋은 관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마음 씀씀이를 가지고 있는건 아니고, 정말 책임감있고 좋은 전임자들도 있다는 점 또한 이야기하고 싶다.)


충주시의 공무원 인수인계에 대한 영상이 많은 조회수와 공감을 받아낸 데에는 많은 공무원들이 인수인계와 관련해 비슷하게 스트레스를 받고있기 때문인 것 같다. 공공기관이 잘 돌아가서 국민들에게 좋은 행정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지자체나 나라 차원에서 개선방법을 조금만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살포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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