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분들에게는 친절의 의무를 다하고 싶다.
공무원은 친절해야 한다.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에는 이 친절의 의무에 관한 법 조항까지 있다.
5년 정도 근무기간동안 대부분 민원과 관련된 업무를 보았던 나에게 민원은 오래해도 익숙해지기 힘든 업무였다. 이유없이 욕을 듣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종종 마주하면 친절하게 업무처리를 한다는게 쉽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힘들게 하는 민원인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오늘은 세상엔 좋은 사람들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 민원인들과의 에피소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주민센터에서 발급해주는 서류 중에는 전입세대열람이라는 서류가 있다. 어떤 곳에 거주하고 있는 세대의 수와 세대주, 전입일 등이 나와있는 서류이다. 임대인이 대출을 받거나 임차인이 전세보증보험을 들기 위해 주로 발급해가는 서류였다. 그날 찾아온 민원인은 자신 소유의 집에 대한 전입세대열람서를 발급받으러 왔다. 은행에 제출해야해서 서류가 필요한 것 같았는데 전 세입자가 이사는 나갔지만 다른 곳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서류에는 그 세입자의 이름이 그대로 나와있는 상태였다. 웬만한 서류들은 인터넷으로 발급이 되는데 전입세대열람서만큼은 방문해야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였다. 민원인분은 세입자가 빠져나간 전입세대열람서가 필요했는데 전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골치아파하는것 같아 보였다. 세입자가 나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3번은 재방문을 하신 그분이 안쓰럽다는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그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5시 55분에도 한번 더 방문을 하였는데 그때도 세입자의 이름은 그대로 나왔다. 항상 6시가 되자마자 퇴근하고싶어하던 나마저도 그분에게 감정이입이 되서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세입자와 통화를 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다음날 또 오겠다는 민원인이 안쓰러워서 제안을 드렸다. 신청서를 미리 쓰고 가시면 내일 9시에 제가 출근해서 열람을 해보고 세입자분이 빠져신게 확인이 되면 전화를 드릴테니 그때 방문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분은 계속해서 불필요하게 방문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항상 보수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나였지만 그정도의 재량은 발휘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 말씀드렸는데 그분은 너무 감사해하셨다. 그러면서 안경점을 하고 있으시다며 나에게 안경을 하나 해주고싶으시다고 명함을 주셨다. 나는 눈이 좋지 않아 여러번 압축했는데도 두꺼운 안경알의 안경을 쓰는데, 눈썰미가 좋으신 그분은 언제 또 그걸 보시고 "안경맞추실 때 돈이 많이 드실 것 같은데 꼭 하나 맞춰드리고 싶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
마음은 정말 감사하고 솔직히 한번 가고 싶다는 마음도 살짝 들었지만(시력이 나쁜 나는 안경 하나 맞추려면 40만원에 가까운 돈이 든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다고 감사함을 전하고 그분을 돌려보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그분의 신청서대로 조회를 해보았고 세입자가 빠져나간 전입세대열람서가 조회되었을 때 민원인분께 전화를 드렸다. 민원인분은 근처에 계셨는지 바로 달려오셨고 꼭 본인이 안경을 하나 맞춰드리고 싶으니 방문하라는 얘기를 재차 건네고 가셨다.
나는 작은 선의만 베풀었을 뿐인데 감사하게 생각해주시는 그 분이 더 감사했다. 마음이 감사해 사비로 안경을 맞춰볼까 하고 그분의 안경점을 검색해봤는데 내가 평소에 다니는 체인안경점과는 다른, 꽤나 고급안경점이었기에 엄두도 못내고 그날의 일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두달 정도 지나서였을까,어느날 그분이 양손가득 커피를 사가지고 오셨다. 왜 안경 맞추러 안오셨냐는 말을 하시며 그때 덕분에 일이 잘 처리가 됐는데 감사해서 동료분들이랑 드시라고 커피를 사오셨다고 했다. 감사하지만 받으면 안된다고 말씀드리는 내가 정신없는 틈을 타서 그분은 과자랑 커피를 놓고 달아나버리셨다. 아쉽게도 정작 나는 카페인때문에 커피를 먹지 못해서 동료들에게 나눠주었지만. 나의 작은 호의를 알아주셨던 그분께 감사했다.
이 분 말고도 한 분 더 생각나는 민원인이 있다.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러 오신 할아버지였다.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려면 수수료 5,000원이 필요하다. 재발급신청이 완료되고 수수료를 말씀드리자 가지고 있는 돈이 없다고 하셨다. 내일 가져다주면 안되냐고 하셨다. 수수료를 가불해달라는 분은 처음봐서 당황했지만,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기도 했고, 할아버지가 돈을 안주실 것 같진 않아서 알겠다고 하고 내가 일단 결제했다. 주변에서는 "00주사님 돈 떼먹히는거 아니야?" 하며 장난섞이게 말했다. 다음날 오전, 그 할아버지께서는 오천원과 함께 뻣뻣한 쇼핑백에 과자를 가득 담아오셨다. 할아버지의 입맛에 맞으셨는지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찰떡파이와 초코파이를 사가지고 오셨는데 내가 초등학생 때 돌아가셨던 우리 할아버지도 생각이 나고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너무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다고 말씀드리자 그 할아버지도 과자를 놓고 가버리셨다. 직원들과 당충전을 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이런게 사람사는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벌써 브런치스토리에 공무원생활과 관련된 글을 5개나 넘게 올렸다. 검색어로 유입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유심히 살펴보면 "공무원 장점"을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았다. 하도 공무원 조직에 대한 뒷담화만 늘어놓은 것 같아 약간의 죄책감에 써놓은 글이었는데 ( 이 글입니다!-> https://brunch.co.kr/@dus0416/10 ) 생각보다 라이크수가 많은 것을 보고 살짝 놀랐다. 공무원에 대해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장점이 있기는 할까 하고 검색해서 들어오신 분들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이 공무원의 장점을 보태는데 도움이 크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나름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들이었기에 공무원의 장점을 검색하셔서 들어오신 분들께도 읽어봐주시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