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사회라는 공무원사회가 나에겐 힘들었던 2가지 이유

공무원이 사회생활도 이렇게 잘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by 솔직히

한번은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공무원 조직이 힘들까?

다른 사람들은 공무원 조직은 사회의 순한 맛이라고들 하던데.. 나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곳이 순한 맛이면 다른 곳은 도대체 얼마나 지옥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서 나약해서 그런걸까? 사회에서 좀 더 구르고 왔어야 되는데 무장이 덜 된 채로 들어온걸까?

대학생 때 나름 사회성을 길러보겠다고 베이커리알바, 음식점 알바부터 전단지 배포알바, 마트 시식코너 알바까지 다양한 알바도 해보았고 유난히 기가 센 직원들이 많았던 여초집단에서도 인턴을 몇 달 해본 나였다. 정식 직장은 이곳이 처음이었지만 이곳은 내가 경험해 본 사회조직 중 가장 힘들었다.

결국 나는 내가 기대했던 공무원조직의 모습과 실제 공무원조직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큰 실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나에게 공무원 조직이 힘들었던 두 가지 이유


-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에겐 힘든 조직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것 같으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다. 대학생때도 좋은 성적을 받고 싶어서, 듣고 싶은 수업을 도전해보기보다는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수업을 골라 들었다. 그덕에 장학금을 여러번 받아 부모님께 효자노릇을 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 도전들을 해볼 수 있는 시기에 도전을 회피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완벽주의가 심한 나였기에 이 조직에서의 적응이 힘들었던 것 같다.

공무원의 업무는 애초에 빈틈없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2-3시간, 길면 하루 정도 안에 끝나버리는 인수인계를 받고 업무에 투입되기에 인사가 나서 처음 얼마간은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어떻게든 적응을 해나가고 나도 그런 과정을 경험해 봤다. 하지만 처음엔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하나하나 해나가야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저지른 일들도 수습해가야 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일을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친한 동기동생이랑 같이 근무했을 때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언니는 쓸데없는 완벽주의가 있어. 그러면 언니만 너무 힘들어." 너무나 맞는 말이다.

나는 내가 초보자이기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민원인들이 그런 상황까지 이해해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인사발령이 난 지 얼마 안되서 업무를 잘 몰라서..."라는 말이 그들에겐 업무공부를 하지 않는 게으른 공무원의 핑계로 들릴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부서에 발령날때마다 나를 옥죄가며 빨리 업무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그러다 어느날 관공서에서 일을 보고 온 엄마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주셨다.

"나 오늘 세무서에 갔다왔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지 뭐야. 알고보니까 직원이 온 지 얼마 안되서 그 업무를 잘 몰랐나봐. 자기가 온 지 얼마 안되서 업무를 잘 몰라서 죄송하다면서 책을 나랑 같이 보면서 알려주는데 답답하긴 해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안쓰럽고 우리 딸 생각이 났어."

우리 엄마가 이해심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살짝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민원인들도 업무를 맡은 지 얼마 안되는 초짜들을 이해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복직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너무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나를 옥죄기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하지만 되도록 실수는 없이) 업무를 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생각보다 사회생활을 잘 해야 하는 조직

공무원이 되기 전에, 나는 공무원은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집단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주민센터에 가서 공무원들을 보면 조용하고 한산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직원들끼리 친해보이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사기업처럼 경쟁이 치열한 이미지도 아니기에 이곳이라면 떨어지는 나의 사회성도 보둠아줄 수 있는 곳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시험을 보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들어와서 느낀건.. 이곳은 생각보다 좋은 사회성이 중요한 덕목인 곳이었다. 심지어 업무능력이 특출난게 아니라면 능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사회성이 좋은 편이 더 유리한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휴직을 들어오기 전에, 나는 나와 같은 팀에 있던 직원과 같은 국으로 발령이 났다. 인사과에서는 국단위로 발령을 내주고 그 이후의 인사배치는 그 국 내부에서 결정한다. 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국 내부에 과가 있고 과 안에 팀이 있는 구조이다. 같은 팀에 있었던 직원은 나와 동기였는데, 같이 일하면서 느꼈지만 일을 정말 못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예전에 근무했던 부서에서는 일을 너무 못해서 2달만에 과장님이 다른 곳으로 쫓아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을 못하는데다 헛소문까지 잘 퍼트린다는 소문이 있어서 주변에서 후배 직원들까지도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 직원은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그 직원은 특기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윗사람들에게 특유의 눈웃음을 치며 살살거리는 걸 굉장히 잘했다.

국 단위 인사발령이 나고 과장님이 인사가 난 사람들끼리 저녁에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하셨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나는 이전에 2번이나 취소가 됐던 저녁약속이 그날 있었다. 인사가 나면 당분간 바빠질것이고 더이상 미루는건 지인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회식에 불참해야 하는 불가피한 사유를 급하게 만들어야 했다. 나는 병원을 예약해놓았다고 했고 과장님은 병원을 갔다가 다시 오라고 하셨다. 결국 나는 병원을 멀리 가야한다는 거짓말을 했고 나의 의도를 눈치챈 과장님은 "건강해보이는구먼 뭐!" 라고 이야기하시고 더이상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그날 회식자리에서 그 직원은 과장님께 어떤 과에 어떤 자리가 가고싶다고 찝어서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 직원은 진짜 그 자리에 가게 됐다. 그날 회식은 12시가 넘어서 끝났다고 했다.

휴직을 들어오고 그 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이모티콘 하나가 왔는데 안녕이라고 할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 직원하고 악감정을 만들고싶진 않았고 그녀가 나를 걱정해서 연락했다고 생각했기에 "휴직하고 싶진 않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답장"했다.

그랬더니 그 직원에게 온 답장..

"자기는 장수할 거에요 ㅋㅋ 욕을 하도 먹어서"

내가 그걸 모를까? 왜 그 직원이 폐급으로 소문이 났는지, 윗사람들은 몰라도 주변 후배와 동기들에게 소문이 안좋은지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말을 보고 하고싶은 말이 우다다 생각났다.

"주사님은 이미 동기들이랑 후배들한테 폐급으로 소문난거 모르세요? 그런 말 할 시간에 일이나 제대로 하세요."라고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 사람한테는 소모할 감정조차 아까웠고 다만 내가 기분이 나빴다는 표현은 하고 싶어서 이렇게 보냈다. "지금 저 비꼬시는 건가요? 저라고 욕 먹을거 모르는거 아니에요. 하지만 주사님이 그런 내용 전달해주시는게 더 기분이 나쁘네요."

그러자 그녀는 꼬리를 내리며 비꼬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사과를 했고 나는 그녀에게 내가 예민했던 것 같다, 미안하다고 보냈다. 그리고 그녀를 차단했다.


몇 번 그런 후회를 했다. 그날 회식자리에 갔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를 말이다. 그랬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갔을수도 있고, 이렇게 계획에 없는 휴직도 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한다.

내가 사회생활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요한 업무얘기는 업무시간이 아니라 담배타임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텐데..


앞으로 복직을 하게 된다면 그 어떤 선약이 있어도 회식 자리는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의 작은 월급에는 사회생활을 감당하는 몫까지 포함되어있음을 기억하면서..!

예전의 나였으면 내 고집을 잘 꺾지 않았을 것이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하고 진화한다는데 조금 더 빨리 조직의 특성을 받아들이고 그에 순응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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