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랑해요.”

어린이집에 들어가며 아들이 해준 말 “엄마, 사랑해요.”

by 허경심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듯 나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기까지 마음고생을 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며 엉엉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나올 때마다 가슴이 시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내 품에만 둘 수 없는 걸 알기에, 사람은 사회적 동물임이 틀림없기에 가슴 시림 정도는 참아내야 했다.

고맙게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우는 횟수와 시간이 줄었고 어린이집을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더 이상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울지 않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주고 출근하려는데 원장님이 아이에게 말했다.

“00아, 엄마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해야지.”

나는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라는 말을 기대하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몇 초 뜸을 들이더니 그 작고 앵두 같은 입으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사랑해요~”

뜻밖의 말에 원장님도 나도 놀라 하하하 웃었다.

아이는 뒤돌아 2층에 있는 자기 교실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계단을 하나 둘 씩씩하게 올라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찌르르했다. 우는 것 밖에 못 하던 갓난아이가 어느새 커서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는구나. 앞으로는 이렇게 내가 아이를 지켜봐 주어야 할 날들이 많겠지. 그때마다 나는 마음이 시릴 테지만 꿋꿋이 버티며 지켜봐 주어야겠지.

하임 G. 기너트는 <부모와 십 대 사이>에서 부모와 십 대의 자녀가 평화롭고 의미 있게 공존하는 길은 부모가 아이를 놓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가 않다. 부모라면 누구나 우리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내길 바란다. 그런 마음은 때론 조급증이 되어 간섭이 되어 독단이 되어 아이와 부딪힌다.

수년 전 함께 일하던 동료 K가 상처 투성이 얼굴을 하고 출근한 적이 있었다.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와 다투다가 그랬다고 했다. K의 아이는 그림을 좋아하고 재능도 꽤 있었다. 그러나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웹툰 만화가가 되겠다는 아이를 K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겠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중 홱 돌아서는 아이를 잡으려다가 그만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한다.

“우리 집이 돈이 많아서 물려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 그려서 잘 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나마 공부라도 해야지 지가 커서 밥 벌어먹고 살지 않겠어요.”

그 말에 ‘그래도 그렇지,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줘야지’라는 생각보다 오히려 공감이 되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에 그림을 그리다가 공부 시간을 뺏겨 이도 저도 안 되는 것보다 공부해서 전문대라도 나온 뒤 기술을 익혀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가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부모의 잣대로 그 싹을 잘라버리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겪어보지도 않고 당장 주어진 생각과 상황으로만 미래를 짐작하는 것은 그야말로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이 아닐까.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사회 속에서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 및 경제적 위기의 돌파구로 청년들의 창업을 권하고 있다. 이것은 단연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추구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창업 생태계 평가 지수 세계 20위 도시 가운데 서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의 청년들의 창업 의지 조사에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 창업의지는 20%인 반면 한국 대학생의 창업 의지는 3%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는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는 탄탄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 미국만큼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거기에 이유를 하나 더 붙이자면 아이들을 놓아주지 않는 부모의 역할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아이들이 실수하거나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놓아주고 지켜봐 주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주도적인 삶, 주체적인 삶을 살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런 현실에 익숙해진 청년들이기에 창업보다는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게 아닐까. 100번의 이력서보다 1번의 창업에서 얻는 삶의 교훈과 가치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직장 동료 K의 아이가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그 길로 가다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실패는 오히려 그 아이를 더 탄탄하게 해 주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모든 일은 실패로부터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부모로서 내 아이가 실수와 실패로 낙담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를 믿고 지켜봐 줄 수 있어야 한다. 격려해 주고 지지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우리 아이가 원장님이 제시한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가 아닌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한 것이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어른이 제시한 말이 아닌 자신 스스로 선택한 말을 내뱉은 우리 아이가 다시금 대견하다. 한발 한발 내디뎌 올라간 그 계단이 아이가 앞으로 갈 인생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앞으로 나에게도 내 기준에서 용납하기 힘든 일을 아이가 한다고 나선다면 이 날을 기억해야겠다.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나는 그저 묵묵히 지켜봐 주어야지. 그러기 위해 내 마음의 텃밭을 튼튼히 가꾸어야겠다. 아이가 힘들 때 언제든 나의 밭에 와서 먹고 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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