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을 떠올리면 언제나 나 자신이 어처구니없이 느껴진다. 그 생각이란 바로 내 아이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세상에 처음 나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믿고 따라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엄마다. 좋고 싫고 자체가 없다. 아이에게 엄마는 생존 그 차제이다. 사랑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쩌면 우리 아이가 나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러한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온 걸까? 아마도 언제나 나를 지배하는 신념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에서 나온 생각일 것이다. 쓸모없는 사람을 누가 사랑해주겠는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에게서 보고 배운 것들에서 온 생각일 것이다.
엄마는 내가 말을 잘 듣거나, 상을 타오는 등 긍정적인 일들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주었다. 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징징대거나, 울 때처럼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일 때는 부정적인 반응으로 나를 대했다. 힘들 때 위로받거나 격려받은 기억은 없다. 언제나 긍정적인 일들로만 좋은 피드백을 받았기에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경우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이것은 훗날 나의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그 사람이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나의 실수와 단점을 보고 실망해 떠나버리면 어쩌지?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부담스러웠다. 나의 단점을 들킬까 봐 그랬던 것 같다. 그러한 생각 때문에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방어벽을 쳤다. 그러다 보면 상대와는 멀어지기 마련이었다.
연인 관계에서는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나에게 실망하지 않았을지 내가 싫어지진 않았을지 너무도 불안했다. 나에게 주는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했다. 쓸모없는 사람을 사랑할 사람은 없다는 걸 증명하려 들었다. 나의 이런 반응은 상대를 질리게 하고 숨 막히게 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결국 버림받음으로써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걸,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보였다. 그러고선 상대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고 원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그 상처는 상대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준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달랐다. 내가 저에게 화를 내었든 찡그려 보였든 언제나 나를 보며 웃어 주었다. 내가 저에게 잘해주었든 못 해주었든 언제나 나에게 와 안겼다. 내가 어설프고 서툴러도 아랑곳없이 나를 따라주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아, 아이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구나. 이런 게 사랑이구나.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 이런 너마저 나는 의심을 했구나. 누군가 나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내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그저 내 존재 자체를 사랑으로 인정해 주는 거구나.
아이였던 적이 없던 성인이 없기에 우리는 모두가 이렇게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한 겹 두 겹 보고 듣고 경험한 지식으로 쌓은 선입견과 편견으로 잊히고 덮인다.
‘중요한 건 마음으로 보아야 보인다.’는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어린 왕자>에서 나오는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은 얼핏 보면 모자로 보인다. 만약 우리가 한 번도 모자를 보지 못했고 모자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면 모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이것을 통해 어른들은 진실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어른이 가진 알량한 지식 때문에 우리는 진실을 보지 않고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매사를 보게 되었다. 그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색안경으로 볼 때 사람이 미워진다.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징징거려서, 신랑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잔소리를 해서 미워진다.
어린 왕자도 장미가 미워진다. 장미는 오만함, 허영심, 까다로움과 위선이라는 네 개의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장미는 그 가시들로 어린 왕자를 괴롭혔다. 결국 어린 왕자는 장미를 떠난다.
자신의 별을 떠난 어린 왕자는 여섯 개의 별을 여행하고 마지막에 지구에 온다. 그리고 지구에서 만난 여우에게서 깨달음을 얻는다.
여우가 말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비밀을 하나 알려 줄게.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볼 수 있다는 거야.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는 장미의 가시, 즉 오만함과 허영심, 까다로움과 위선은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가 아니라 그 또한 자신을 향한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겉으로 봐서는 가시였지만 자신을 향한 관심이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가시마저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가시까지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은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볼 수 없다.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어떤 의심의 편린 하나 없이 엄마를 바라보고 온전히 사랑하는 것은 엄마의 사랑을 아이 특유의 순수한 마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이가 징징 거릴 때, 신랑이 잔소리할 때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아이의 진심, 신랑의 진심을 보도록 노력해야겠다. 사실 아이가 징징거리는 건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다. 신랑의 잔소리는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타인을 바라볼 때 선입견과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그들의 진심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우리 아이가 온전한 사랑을 주었듯이 나도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우리도 한 때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