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에는 언제나 부부싸움하는 날이다. 그날도 신랑이 술을 먹고 들어왔다. 어깃장 놓는 소리만 해대는 신랑의 주사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잠든 아이를 둘러업고 집을 나왔다. 어디로 갈 것인가. 아주 잠깐의 고민도 없이 무작정 시댁으로 차를 몰았다. 밤 12시가 다 된 시간에 내가 들이닥치자 너무나 당연하게도 시어머님은 깜짝 놀라셨다.
보통 이런 경우 친정으로 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내가 친정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우리 엄마는 내가 슬퍼하면 더 슬퍼하는 사람인 걸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힘들어하면 본인이 더 힘들어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은 자주 싸웠다. 아빠는 자주 취해 들어왔고 그때마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어린 나는 너무 무서웠고 늘 불안했다. 어느 날 밤 자고 있다가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부모님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나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이불을 꼭 쥐고 긴장하고 있던 찰나 우당탕탕!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으아아 앙!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울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자던 언니가 놀라서 깼다. 언니는 영문을 모른 채 왜 그러냐며 나를 토닥여주었다. 부모님이 싸우던 날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그날이 가장 공포스럽던 날로 머릿속에 생생하다.
엄마는 아빠와 다툰 다음 날이면 기분이 많이 안 좋았다. 그 기분은 나에게 꼭 전가되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떠날 까 봐 불안했다. 엄마에게 크게 맞기도 했다. 단지 엄마가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에서는 아니었지만 내가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엄마의 기분에 따라 반응은 달라졌다. 너무 심했다 싶은 날에는 엄마가 울면서 사과했다. 엄마가 울기에 나도 울었고 슬펐다. 하지만 그 슬픔은 ‘나는 참 쓸모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체화시키는 과정이었던 거 같다.
이런 내가 아이를 안아 들었을 때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이렇게도 소중하고 신비한 생명체를 내가 낳았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가 이렇게 고귀한 생명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라고? 가만있어 보자. 세상에나. 그럼 나도 소중한 사람이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아이를 낳을 수가 있을까? 아. 나도 소중한 사람일지도 모르는구나. 소중한 사람일지도 몰라. 수십 년 동안 단단히 고정되어있던 나의 신념이 조금씩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굉장히 예민했다. 아기띠에 안아 재우고 난 뒤 침대에 내려놓으면 귀신 같이 알고 깨어 울었다. 어쩔 수 없이 아기띠를 한 채로 소파에 반 눕다시피 앉아 재웠다. 몇 달 뒤 아이는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놓으면 안 깨고 잤다. 그러나 내가 옆에 누워 있다가 살살 일어나면 또 귀신같이 알고 깨어 울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 잠귀 밝던 나를 쏙 빼닮은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아이가 깰 때까지 옆에 같이 누웠다. 산후 우울증으로 인한 불안감이 잠재되어 있던 터라 몸은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스마트 폰도 없던 시절, 멀뚱멀뚱 아이를 바라보며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책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한 권이 두 권이 되고 세 권이 되었다. 빨리 책을 읽고 싶어서 아이가 얼른 잠들었으면 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그러한 날들을 보내다 보니 한 뼘 밖에 되지 않던 나의 시야가 한순간 확 넓어졌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인의 행동, 감정, 혹은 어떤 상황 속의 의미, 나의 감정, 나의 객관적인 모습도 보였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부부 싸움하고 시댁으로 도망간 날, 아이를 재우고 어머님과 나란히 누워 어머님께 이 이야기를 모조리 했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이야. 그래, 00 엄마야, 너 엄청나게 성장했구나.”
“그런데 신랑에게는 성장한 마음으로 대하는 게 잘 안 돼요. 술 취한 모습을 보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요.”
참고 있던 눈물이 흘렀다.
“어머님, 저는 어머님을 보면서 나도 어머님 같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님은 제가 어떤 실수를 하든 잘못을 하든 늘 저 위에서 다정한 눈빛으로 저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눈물을 흘려도 내 감정에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어머님이 신기했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00 아빠가 내 아들이지 않니? 그러니까 소중하지. 그런 소중한 아들이 같이 사는 사람이 너잖니. 그러니까 너도 똑같이 소중하단다.”
너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말에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도 소중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확실성으로 바꿔준 말이었다. 어쩌면 평생 내가 듣고 싶던 말이었는지도 몰랐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시어머님은 잠도 안 주무시고 새벽 4시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날 나는 시댁에서 바로 출근했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마음이 충만했고 내 몸에 어떤 보호막이 쳐진 느낌이 들었다. 종교에서 말하는 ‘은총 받았다’라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었다. 그러다 불현듯 머릿속에 하나의 문장이 완벽하게 떠올랐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를 살아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연기자가 종종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고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게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그때부터 과거의 상처들을 하나 둘 떨쳐냈던 것 같다. 그날 시어머님은 상담가였고 치유자였다.
사람은 누구나 소중하다.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자신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타인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사람 또한 소중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당신도 나도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다. 그러니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중한 건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게 맞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감사하게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공감과 위로를, 나아가 치유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