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버 밤반(낮에 버럭하고 밤에 반성한다)

아이가 나를 키운다

by 허경심

아이가 나를 키운다


극심한 산고를 버텨내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작고 여린 핏덩이를 보며

나는 생명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밤이면 1시간이 멀다 하고 울어대는 아이.

얼러주고, 달래주고, 노래해 주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그러나 하염없이 울어 재치는 아이.

그 수많은 밤을 보내며 나는 인내를 배웠습니다.


내 어릴 적 이후로 한 번도 불러보지 않던

‘어린 송아지’를 아이에게 불러줍니다.

평소 내가 좋아하지 않던 음식을 아이를 위해

기꺼이 만들어 줍니다.

내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나는 배려를 배웠습니다.


내가 저한테 잘해 주었든 못해주었든

웃어 보였든 찡그려 보였든

아이는 나를 보며 어떤 의심의 편린 하나 없이

자신을 다 내보이며 웃어 줍니다.

아이가 나를 키우며 나는 행복을 배웠습니다.

아이가 나를 키우며 나는 사랑을 배웠습니다.

위의 시는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쓴 시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고, 오글거리는 면이 없지 않지만 이 시는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공감할 만한 시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시를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우리 아이가 네 살 때 나에게 보여준 순수함 때문이었다.

지금의 우리 아이를 봐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그때는 밥을 참 안 먹었다. 아이는 모유를 끊으면서 흰 우유에 집착했다. 빨대 컵에 우유를 데워서 넣어 주면 마치 엄마 젖을 빨듯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쭈욱 내밀고 순식간에 잘도 빨아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유만 먹고 밥은 잘 안 먹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밥을 잘 먹이려고 나름 노력을 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레시피만 모아 놓은 책을 사다가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곰돌이나 토끼 같은 동물 모양 틀로 예쁘게 음식을 차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노력에 비해 아들의 먹는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얼마 안 있어 아이는 우유를 달라며 떼쓰기 일쑤였다.

그날도 여느 날과 비슷한 날이었다. 저녁으로 각종 야채를 잘게 다지고 소고기를 볶아 볶음밥을 했다. 아이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몇 숟갈 뜨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또다시 우유 타령이었다. 그동안 참아오던 화가 가슴부터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너, 이렇게 우유만 먹고 이따가 밤에 또 배고프다고 우유 달라고 하면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나는 아이에게 엄포를 놓았다. 이제 잘 시간이 되어 아이와 침대에 누웠다. 잠이 스르륵 들려는 찰나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유.”

슬금슬금 올라왔던 화는 그 한마디에 폭발하고 말았다. 아이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아이는 울고 나는 내 화를 못 이겨 씩씩대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나는 결국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서 우유를 데워 아이에게 주었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쭈욱 내밀고 열심히 우유를 빨아먹는 아이 눈에 아직 떨어지지 않은 눈물이 맺혀있었다. 다시 자려고 누운 아이를 바라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참 좋아.”

그러고선 미소 짓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섭섭하게 하거나 화를 내면 그 순간 상대가 나에게 잘해줬던 기억은 모두 사라진다. 이내 서운해하고 또 그것을 곱씹고 되뇌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좋은 기억만 떠올리나 보다. 아이들은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라더니 그 말이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참 좋아.”

지금도 그 목소리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섭섭하게 하거나 화를 낼 때 우리 아들의 목소리를 생각해야겠다. 그러면 좀 더 멀리 떨어져 생각하며 지금 나에게 섭섭하게 하는 사람을 조금이나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운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매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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