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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박변 Feb 13. 2024

뉴욕박변: 유방암 중 제일 못된 삼종 음성암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2019년 국가 암 등록 통계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약 36%가 인생 중 암을 경험한다. 이 중 유방암은 20.6%를 차지한다고 한다. 내 소식을 들은 대다수도 유방암은 완치율이 높으니 괜찮을 거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모르지만 유방암엔 4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 종류에 따라 치료법도 생존율도 매우 다르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 (에스트로겐 수용체, 프로게스테론 수용체의 여부에 따라 나뉨), HER2(인간 표피 성장인자 2형) 양성 유방암, 그리고 에스트로겐 수용체,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HER2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 삼중 음성 유방암이 있다. 이 중 가장 지독한 암은 삼중 음성 유방암이다. 특정 암세포를 상대로만 죽이는 표적 치료가 불가능한 삼중 음성 환자의 경우, 100% 자가부담으로 한 번 맞는데 450만원 정도 되는 키투루다라는 주사를 맞아 면역력을 높인 후, 독한 항암제를 주입한다. 주로 40대 미만 여성, 흑인과 라틴계 여성에게 많이 발병한다고 하며, 급격히 퍼지기 때문에 수술 전 항암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한 영어로 된 논문은 삼중 음성 유방암은 하루에 1%씩 퍼진다는 무서운 결론을 적고 있기도 했다 (나중에 종양내과 교수님께 여쭤보니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셨다). 심지어 어떤 자료는 삼종 음성인 경우 2년안에 재발률이 80%라고 했다.


아직 내가 어느 종류의 암인지알기 전에 인터넷에서 이것 저것 혼자 뒤져보다가, 제발 삼종 음성만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3번의 반복된 랩테스트 후 나는 결국 삼종 음성 암환자로 분류되었다. 따라서 수술 전 6개월동안 선항암치료를 통해 최대한 암을 줄여 보자는 유방외과 선생님의 말씀대로 바로 매주 항암을 시작했다.

그렇게 걱정을 할 틈도 없이 1차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뭘 몰라서, 진료 후 주사실 문이 닫히기 직전인 오후 5시에 접수하고 나서 네 가지 주사를 다 맞고 나니 오후 9시였다. 다음부터는, 최대한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항암 전날 업무를 다 마친 후 저녁 기차를 타고 울산에서 병원 앞 숙소에 도착하면 밤 10시~11시였다. 침상에서 항암을 해야하는 경우 평균 대기시간은  4시간. 이를 줄이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항상 1등 등록을 목표로 하고 기계처럼 분단위로 움직였다.


항암이 있는 날은 우선 피검사를 해야한다. 백혈구 수치와 호중구 수치가 너무 낮으면 항암 치료를 진행하기 위험해지기 때문에 먼저 확인이 필요하다. 일단, 오전 6시반에 암병원 2층 주사실에서 피검사 등록을 할 수 있는 키오스크가 켜진다. 그럼 7시 정시에 12개정도 되는 병리사들이 주루룩 앉아 기계처럼 피를 뽑는다. 우리나라 암병원 병리사님들은 기가 막히게 주사를 잘 찔러서 대부분 수월하게 채혈을 하지만, 항암 횟수가 늘어날 수록 피부도 약해지고 핏줄도 찾기 힘들어진다. 채혈이 끝나면 병원앞에 있는 요가 수련원에서 1시간 수련을 하고,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병원에 돌아와 종양내과/유방외과 셀프 도착 확인을 한 후, 바로 재택 근무에 돌입한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까지 일하다 컴퓨터를 허겁지겁 손에 들고 진료실에 들어가면, 대부분 대학병원이 그렇듯 3초만에 진료가 끝난다. 그리고는 한 층 부리나케 내려야 주사실에 접수를 하면 그 때부터 대기시간이 정해진다. 그러면 눈을 크게 뜨고 병원 구석에 있는 몇 안 남은 콘센트를 찾아 컴퓨터를 연결 시켜 재택 근무를 계속하고, 항암실에서도 업무를 계속한다. 8개~10개 정도 침상이 놓여 있어, 통화나 회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관부서에 양해를 미리 구하고 계약서 검토나 질의에 대한 법률적인 검토등을 하며 4시간 항암을 견딘다. 오후 5시가 되면 다시 서울역으로 가 울산집에 도착하면 밤 11시경. 그렇게 매주 반복했다.


항암 중 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종양내과 교수님도 놀라셨고 동료들도 항암 중에는 휴직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염려해 주었지만 내 성격상 휴직하고 집에서 가만히 있는 시간이 더욱 견디기 힘들 것 같아 계속해서 풀타임으로 근무했고,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루틴이 잡혀있는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뭔가 아직도 누구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느낌, 쓰임새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항암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또 하나는, 항암을 견디기 위해 최대한 많이 여행을 계획했는데, 2023년 항암 치료 하는 6개월 동안 비행기만 30번을 탔다. 이 중 대부분은 뉴욕, 애틀란타, 앨라배마였다. 물론, 15시간이 넘는 오랜 비행은 몸에 좋을리 없겠지만, 나는 어디론가 '탈출'을 하여 숨 쉴 기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항암 기간을 견디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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