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삶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디미누엔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태어날 때 울음으로 시작해,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다가, 점점 말이 줄어들고, 마침내 침묵 속으로 사그라드는 곡선.
살아 있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 조금씩 작아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여림 속에야 비로소 들리는 것들이 있다.
가끔은 세상도, 나 자신도 그 정도로만 여려졌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 힘을 다해 연주하는 음악은 없다.
모든 곡은 사라지는 방식으로 끝난다. 수십 명의 연주자가 각자의 타이밍으로 입을 다물고, 활을 일제히 공중에 띄우는 그 순간이야말로, 음악이 가장 조심스러워지는 때다.
디미누엔도.
힘을 빼는 연습,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움직임.
이탈리아어로 ‘점점 여리게’라는 뜻의 디미누엔도는 악보에 작게 쓰이나, 실제로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눈에 띄지 않게 사라지는 일, 티 나지 않게 멀어지는 일. 누구 하나 앞서 나가면 소리는 끊기고, 누구 하나 늦게 빠지면 잔향이 뭉툭해진다. 그래서 연주자들은 자신이 내는 소리뿐 아니라, 그 소리가 적절하게 사라지는 법까지 연습한다.
아름답게 사라지는 일은, 절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말을 끝내는 타이밍, 자리를 물러서는 리듬, 열기를 덜어내는 시점은 연습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이들이 부럽다. 문장을 흘리듯 하면서도 우아하게 마무리하거나,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무언가를 남기는 사람들. 그들은 성장이란 어쩌면 자기 자신이 작아지는 일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종종 시작에 집착한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더 크게 울릴 것인가.’ 하지만 음악이 감정을 건드리는 순간은 오히려 끝자락에서 온다.
모든 게 점차 사그라질 때, 어떤 잔향이 남는지. 그것이 가장 쉽고 직관적인 해석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은 오늘도 알려준다.
가장 오래 기억되는 순간이야말로, 우아한 고요함으로 끝맺는 순간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