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지휘자는 꼭 필요할까?

무대 뒤 숨겨진 진실

by 서유진




“근데 지휘자는 꼭 있어야 해?
사실 없어도 되는 거 아냐?“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 친구들에게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무대 위에서 악기 하나 들고 있지 않은 사람이, 가운데에서 막대기나 열심히 흔들며 서 있는 모습이 신비하게 보일 수밖에.


관객은 지휘자의 ‘영혼의 추동력’이 단원에게 전해지는 과정을 보지 못한다. 공연 전 수많은 리허설을 통해 음악적·정서적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휘자의 악기는 바로 오케스트라다. 귀가 밝은 청중이라면, 수십 개의 악기를 하나의 호흡으로 묶어내는 사람이 지휘자이며, 그의 재창조적인 영감이 연주자라는 도구를 통해 관객에게 음악의 내적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지휘자의 중요도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빈 궁정 오페라의 명지휘자 한스 리히터에게 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말하기를, 얼마 전 자신이 오케스트라를 처음으로 지휘할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한스 리히터가 어땠느냐고 묻자, 단원은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지휘자님… 사실 지휘가 아주 쉬운 것이더라고요!” 라고 대답했다. 한스 리히터는 단원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부탁이니, 제발 그 얘기 남들에게는 하지 말아줘요!”


(출처: Arthur Nikisch, On Conducting)

(사진 1. 젊은 날의 한스 리히터)


친구들의 순수한 질문이나, 빈 오케스트라 단원의 발언이나 그 바탕엔 똑같은 견해가 깔려 있다.

지휘자의 과제는 박자를 맞추는 것이며, 따라서 그의 일은 기계적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공고한 사람이라고 해도, 만일 단순한 곡이 아니라 교향곡 혹은 바그너의 작품이 연주되는 자리에 갔다면 그 믿음에 의혹을 품을 것이다.


지휘자의 가장 큰 역할은 해석이다.

템포, 다이내믹, 악센트와 같은 표기는 사실 그 양상이 매우 다양하며, 작곡가가 직접 지시하지 않은 부분은 더더욱 여백이 많다. 심지어는 작곡가가 완성한 총보를 자신의 해석에 맞춰 수정하는 과감한 지휘자도 존재한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할 때, 목관악기의 주제를 호른으로 보강한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브루노 발터는 그렇게 함으로써 울림의 강도를 획득했으나, 음색이 ‘베토벤스럽지 않게’ 변모했다며 비판했다. 이렇게 지휘자마다 달라지는 부분을 캐치해 듣는 것도 작지 않은 즐거움이다.


오케스트라 연습은 70여 명에게 ‘공용어’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현악기의 보잉을 어떻게 할 지, 관악기가 어느 음색으로 노래할지, 팀파니가 어떤 강약의 어택으로 들어갈지, 이 악기들의 모든 가능성과 연주 방식에 따른 차이를 인지하고, 그 차이를 하나로 엮어내는 것이 바로 지휘자의 역할이다.


나는 크게 두 부류의 지휘자를 겪어왔다.

강압적이고 절대적인 통제력을 행사하는 권위적 지휘자, 그리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성정을 가진 지휘자.


사실, 내가 만난 지휘자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지휘자가 전자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휘자의 악기는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는데, 지휘자는 연주하는 기관과 점검하는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악기의 연주에서 잘못된 음을 귀로 알아채도 그것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바로잡을 수 없다. 이런 지휘자의 어려운 과제가 그를 어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



권위적인 지휘자와 함께하는 오케스트라 연습은 거의 전쟁 상태에 가깝다. 이 방법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면,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일종의 집단정신, 집단적인 연대감이 놀라울 만큼 강화되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카라얀, 바렌보임, 마젤, 말러, 토스카니니 등의 수많은 지휘의 대가들이 대부분 이 ‘권위적 지휘자’ 유형에 속한다.


그 중 토스카니니는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단원을 다루는 방식은 가히 폭군이라 칭할 만하다. 툭하면 지휘봉을 던지고 부러트리는 다혈질에, 자기 지휘봉만 망가트리면 다행이고 단원의 바이올린 활을 고의로 부러트려 몸싸움이 일어날 뻔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현악기의 활은 그 악기 가격과 맞먹거나 더 비싼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토스카니니의 리허설을 보고, 그가 단원들을 다루는 모습에 질색하며 자신은 단원을 정중히 대하겠다고 결심했고, 실제로 그는 부드러운 성정과 음악성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야기 출처: Harvey Sachs, Toscanini: Musician of Conscienc)


‘절대 권력’으로서의 지휘자는 음악의 질서를 완벽하게 유지하지만, 그 대가로 모든 단원은 자신의 개성을 지우고 오직 지휘자의 의도에 복종해야 한다.

엄격함은 사람을 다룰 때 정당할 뿐 아니라 필요 조건이라서, 이것이 없으면 지휘자는 무능력하다.


하지만 독재는 예술적인 자질이나 인간성을 꽃피우게 하지 못하며, 그에 순응함은 음악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게 하고, 지휘자의 폭언은 연주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는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도 그 기본은 호의적인 열린 태도, 즉 선의라고 할 수 있다. 선의가 진정성과 결합하면 생산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도 따뜻한 음색이 울려 퍼진다.

나는 오케스트라 주자가 예술적 능력을 온전히 펼치기 위해서는 이 따뜻함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지휘석으로부터 불만족이나 폭언에 가까운 조롱이 들려온다든지, 지휘자의 조급함과 분노에서 격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면 어떤 연주자는 얼어붙거나 말라버린다. 하지먼 선의와 진정성이 가져오는 윤리적인 힘은 단원들의 마음에 이르는 길을 찾아낼 정도로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휘자의 개성이 뛰어난 음악성과 결합해 이 성격상의 결함을 뛰어넘어 위대하고 매혹적인 성취를 이루어낸다면 그것은 음악의 본질적인 성취라고 말할 것이다.


절대 권력형 지휘자는 음악의 질서를 완벽히 유지하지만, 단원은 자신의 개성을 지우고 지휘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반대로, 선의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지휘는 단원의 잠재력을 끌어올린다. 불만과 조롱은 연주자를 얼어붙게 하지만, 따뜻한 태도는 연주자의 마음에 닿아 음악에 대한 태도까지도 바꾼다.


무대에서 지휘자의 한 번의 다운비트는 단순한 신호가 아니다. 그 안에는 수십 시간의 리허설, 악보 탐구, 단원과의 대화와 눈빛이 모두 응축되어 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휘자가 없다면? 오케스트라는 연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음악이 ‘하나의 유기체’로 숨 쉬게 만드는 건 결국 지휘자다. 지휘자는 연주를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소리를 살아 있는 예술로 변모시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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