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대가 시리즈 (1)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 그는 한 손엔 지휘봉을, 머릿속에는 모두 외워버린 총보를 들고 전장을 누볐다. 그의 리허설은 전투에 가까웠다. 작곡가의 뜻을 거스른 연주자에게는 폭풍 같은 분노가, 불필요한 감정에 젖은 해석에는 지휘봉이 날아왔다고 한다.
20세기 클래식 음악계에서 토스카니니보다 강렬한 신화를 남긴 지휘자는 없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를 둘러싼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 중 일부가 정말로 사실이라는 점이다.
첼리스트 청년, 우연히 오페라 지휘자가 되다
1886년, 남미 공연 중 <아이다>의 지휘자가 관객과 싸운 뒤 사라져버리는 돌발 상황이 벌어진다. 이탈리아 오케스트라의 젊은 첼리스트였던 19세 토스카니니는 전막을 외우고 있다는 이유로 지휘봉을 쥐게 된다. 리허설도, 연습도 없이 공연은 그대로 시작되었는데,거짓말처럼 이 공연은 대성공. 이 기적 같은 사건이 ‘토스카니니 전설’의 서막이었다.
그는 이후 첼로를 내려놓고 지휘자로 전업했고, 말년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오류도 없는 놀라운 암보(악보 없이 지휘) 능력을 유지했다.
토스카니니의 전설
토스카니니는 성악가가 악보에 자의적 해석을 가하는 것을 싫어했다. 이에 관해, 소프라노 제랄딘 파러와의 입씨름이 유명하다. 그녀가 “나는 스타(별)예요”라고 하자, 토스카니니는 이렇게 응수했다.
“모든 별은 태양 앞에서는 빛을 잃지요.”
그가 독재적이라는 평을 듣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성악가든 오케스트라든, 그의 앞에서는 모두가 ‘연주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자신의 악보에는 엄청난 가필을 해놓았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악보에 대한 집요한 해석’이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 지휘자다.
푸치니와의 인연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와는 친구였다가 모종의 이유로 연을 끊게 된 사이였다. (아마 원인은 분노조절이 어려운 토스카니니에게 있지 않을까?)
성탄절 즈음, 푸치니가 지인들에게 보낸 파네토네(이탈리아 크리스마스 빵)가 실수로 토스카니니에게도 전달되었다. 푸치니는 뒤늦게 전보를 보낸다.
“크리스마스 빵, 실수로 보내졌음.”
이에 토스카니니는 이렇게 답했다.
“크리스마스 빵, 실수로 먹어버렸음.”
말 한 마디 안 섞던 두 사람은 그렇게 한 조각의 빵으로화해했다.
푸치니가 미완성으로 남긴 오페라 <투란도트>는 알파노가 완성했다. 하지만 1926년 초연에서, 토스카니니는 그 완성판을 연주하지 않았다. <류의 죽음> 장면에서 지휘를 멈추고,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오페라는 여기서 끝납니다. 작곡가 푸치니는 이 지점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말을 남긴 채, 정말로 지휘석을 떠났다. 이 장면은 오늘날까지도 클래식 공연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자신에게 분노한 남자
어느 날, 그는 집에서 라디오로 오페라를 듣고 있었는데 형편없는 음악에 분노했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토스카니니가 “당장 저 지휘자를 끌어내리라고 연락해야겠어!“ 라고 길길이 날뛰는 것을 그의 가족들이 말렸다고 한다.
이유는 연주 시작 전 지휘자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라는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일화는 안타깝게도 정확히 사실이 확인된 바 없으나, 유추하건대 나는 아마 이 일화가 진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연주를 녹음해서 들어 보면, 자신의 연주가 생각보다 훨씬 더 형편없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토스카니니를 악보에 충실한 지휘자로 기억한다. 실제로도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작곡가가 말한 그대로 연주하라. 악보는 신의 계시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 현실의 토스카니니는 그보다 복잡했다. 그는 수많은 악보에 지시를 덧붙이고, 리듬을 바꾸고, 다이내믹을 다시 설정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행위는 자신만의 감정이나 해석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진짜로 원했던 것’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라 여겼다.
토스카니니에게 악보는 진의를 발굴해야 할 고대 문서에 가깝지 않았을까.
그의 지휘는 매번 전쟁이었고, 지휘는 그가 선택한 무기였다. 신화적 일화 뒤에는 그토록 자기모순적이면서도 강렬한 분노와 집념의 지휘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를 진짜 전설로 만든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