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무대 밖에서 태어난다. 화려한 조명과 박수의 순간 이전에 끝없는 반복과 수정으로 점철된 외로운 시간이 있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무대 위의 찬란함은 이 고독에서 비롯된다.
“하루 연습을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선생님이 알고, 사흘 안 하면 청중이 안다.”
음악은 매일의 꾸준한 훈련 위에 세워진다. 음악 전공자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다수는 주저 없이 ‘연습’을 답할 것이다.
연습을 해야 실력이 늘지만, 연습의 양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연습의 질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 밀도 있는 연습을 아주 많이 해야 늘까 말까다. 오늘은 분명히 고쳤다 싶은 프레이즈가, 다음날이면 다시 원점으로 회귀해버린다. 어제는 분명 매끄럽게 넘어갔던 음이 갑자기 틀리고, 아무리 반복해도 제자리만 빙빙 도는 느낌이 드는 날들이 반복된다.
그럴수록 집착은 더 깊어진다. 단 한 마디, 한 프레이즈에 갇혀 내리 6시간을 반복한다. 고쳐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몰아세우지만, 결과는 늘 예측할 수 없다. 한없이 올라가다 다시 추락하고, 겨우 붙잡았다가 또 놓친다. 실력은 선형적으로 늘지 않는다. 그래서 연습은 늘 불안하다.
또한 연습은 고독의 극치다. 연습실의 청중은 자기 자신뿐이다. 스스로 낸 음을 듣고, 스스로 실패를 확인하며, 그 실패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자기 감시.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한 ‘자기 수양’과도 닮아 있다. 누구도 대신 들어주지 않는 음을 스스로 들을 때, 연주자는 음악의 진실에 닿는다. 무대의 박수는 거짓일 수 있으나, 연습실의 침묵—제대로 연습하지 않는 시간들—은 거짓일 수 없다.
DarkMagicalSoul, Lonely Musician Fantasy, DeviantArt.
서초동 1평 연습실의 추억
남부터미널역 주변에는 수많은 연습실이 있다. 피아노를 제외한 기악 전공 학생들이 쓰는 1평 남짓한 악기방. 창문 하나 없는 방에 방음 시설과 보면대가 전부지만, 서초동이라는 이유로 월세는 40~50만 원을 호가한다. 그야말로 창조경제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입시생들이 남부터미널역 인근에 연습실을 잡는다. 그곳에는 ‘큰 선생님’과 ‘작은 선생님’들이 거주해, 언제든 호출에 응해 레슨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습 중 갑자기 작은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 점검하는 일도 흔하다. 이 선생님이 언제 방문할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한 긴장감까지, 연습하기엔 최적의 장소다.
이 단출한 공간이 음악가의 시간을 가장 깊게 삼켜버리는 곳이다. 좁디좁은 1평 안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은 결국 실패의 흔적으로 쌓인다. 매일같이 벽에 부딪히며, 어제의 성취가 오늘의 좌절로 바뀌는 과정을 겪는다.
그 괴로웠던 시간들을 지금에서야 반추해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무대 위의 완벽한 연주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는 법을 연습하는 게 아닐까. 그 실패를 견디고 버티는 힘이 결국 연습의 본질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