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 단편집 『결혼』·『죽음』을 읽고
“17세기 프랑스에서 사랑은 휘황찬란한 복장에다 현란한 머리 깃털까지 장식한 채 장중한 음악이 흐르는 살롱을 유유히 걸어가는 영주였다. 골치 아프게 복잡한 예식이 필요했지만, 계획대로 잘 준비하다 보니 한 발자국이라도 헛디디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적절한 부드러움과 과장되지 않은 명쾌함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우아했다.”
많은 국내 독자에게 졸라는 소설가라기보다 ‘정의의 상징’에 가까울 것이다.
1898년, 그는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함을 폭로하는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며 문학을 정치적 무기로 바꿨다. 이 사회참여의 이면에는, 일상의 미시적 장면을 해부하듯 서술하는 문학가 졸라가 있었다.
“사회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은 사랑, 결혼 그리고 죽음일 것이다. 사회적 인간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졸라가 당연히 끌렸을 소재들이다.”
(역자 해설)
흥미로운 점은, 졸라가 부르주아뿐 아니라 중산층, 노동자, 극빈층까지 전 계층의 결혼과 죽음을 그렸다는 것이다.
결혼은 계급에 따라 그 형식과 이유는 다르지언정, 사랑이 제도와 이해관계에 종속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부유층의 결혼은 체면과 재산의 거래였고, 극빈층의 결혼은 생존을 위한 동맹이었다. 중산층은 사회적 안정을 얻기 위한 발판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상류층의 장례식장은 수많은 추모자들과 검은 연미복으로 빛났지만, 그 무대 뒤에서는 형제들의 재산 분쟁과 체면 계산이 오갔다. 빈민가의 죽음은 장례비를 감당하지 못해 초라한 관 하나로 끝났다. 때로는 슬퍼할 시간도 없이,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계급을 막론하고 죽음 뒤에는 비슷한 장면이 남는다. 의무감으로 흘리는 눈물, 재산을 둘러싼 분쟁, 그리고 놀라울 만큼 빠른 일상의 회귀.
예컨대, 단편 속 인물 아델은 늘 기침을 달고 살았다. 밀폐된 판매대 뒤에서 하루 종일 서 있어 건강이 좋을 리 없었다. 의사는 햇볕을 쬐고 산책을 하라고 권했지만, 가겟세를 내고 살아가려면 쉴 수 없었다. 이렇게 졸라는 인물들의 속마음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관찰 가능한 행동과 말로 그 본질을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환경과 제도가 인간을 규정한다는 자연주의의 핵심이다.
오늘날에도 결혼과 죽음은 사랑과 슬픔의 상징처럼 포장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현실, 돈, 정상성의 문제가 가득하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권력의 부패를 고발했던 졸라는, 여기서는 사적 의례의 허위까지 파헤친다. 결혼은 사랑의 축제가 아니라 재산과 지위의 거래이며, 죽음은 남은 자들의 이해관계 조정이다.
이 작품을 덮고 나면 우리는 불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진심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진심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의례와 제도는 감정을 소비하고, 인간은 사회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배우가 된다.
졸라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권력을 고발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이 오랫동안 짜놓은 삶의 대본을 고발한다.”
그 고발은 19세기 파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의 웨딩홀과 장례식장에도, 여전히 에밀 졸라의 고발은 유효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 무대 위 배우가 아닐까.
그림. Thomas Rowlandson, Sadler’s Wells Theatre, c.1809, The British Library,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