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발저, 『산책자』를 읽고
“아침의 꿈과 저녁의 꿈. 빛과 밤. 달, 태양 그리고 별. 낮의 장밋빛 광선과 밤의 희미한 빛. 시와 분. 한 주와 한 해 전체. 얼마나 자주 나는 내 영혼의 은밀한 벗인 달을 올려다보았던가. 별들은 내 다정한 동료들. 창백하고 차가운 안개의 세상으로 황금의 태양빛이 비쳐들 때 나는 얼마나 큰 기쁨에 몸을 떨었던가.
자연은 나의 정원이며 내 열정, 나의 사랑이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내게 속하게 되니, 숲과 들판, 나무와 길들, 하늘을 올려다볼 때 나는 왕자와도 같았다.”
발저의 산책은 화려한 사유를 위한 무대다. 그의 걸음은 도시의 크고작은 사물과 제도적 공간(은행·양복점·관청·우체국)을 차례로 통과한다. 그러나 각각의 정거장은 사건을 진전시키기보다는 수사적 가지치기를 증식시키는 발화의 장이 된다. 실제로 화자는 “맞춤 양복점에 들러 수선을 보고, 관청에서 세금을 내고, 우체국에 편지를 부친다”는 식으로 ‘업무 목록’을 나열하며 걷기와 문장을 한 덩어리 노동처럼 포개어 놓는다.
책의 역자, 겸업 작가인 배수아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 이외에도 참으로 아름답고 황량하며, 어떨 때는 이빨을 드러낸 듯하고, 방치되고 산만한 언어, 끝을 모르는 풍자와 비꼼, 이 모든 것을 이끄는 무의미함과 무의도성, 그리고 마침내는 인과성과 연속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돌연하고 뜻밖인 결말들.
이런 것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
나는 매혹되었다. 나는 펄쩍 뛰어오를 만큼 매혹되었다.
나는 옮긴이의 말처럼, 발저의 문체가 매혹적이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과잉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음악에서도 감정을 불필요하게 과장하는 연주를 불편해하듯, 이 작품에서도 인물의 모자가 ‘폐하 같은 위용’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는 장면과 같은 과장에 약간의 회의를 느꼈다. 그러나 이 화려함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세계와 맞서는 발저의 태도이기도 하다. 과장의 반복은 현실의 평면을 흔들고, 질서와 효율을 요구하는 사회적 문법과 각을 세운다.
관청에서의 일을 다룬 단편은 작품의 핵심을 드러낸다. 공무원이 “당신은 늘 산책만 하는군요”라고 비아냥대자, 화자는 산책을 변론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발저에게 걷기는 생계를 방기하는 행위가 아닌 작가적 노동의 조건이다. 이때 장식적 공손함과 돌발적 격정이 교차하며, 과장의 문체가 곧 저항의 문체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이 점은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헤르만 헤세는 발저를 ‘섬세한 영혼의 산책자’ 라며 열렬히 칭송했고, 카프카 역시 그의 글 속에서 자신과 닮은 내면적 긴장을 발견하며 애정을 표했다. (비록 발저는 카프카가 자신의 팬임을 알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발저의 산책은 당대 문단에서도 고유한 울림을 가진 글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발자국과 문장의 호흡은 하나로 이어지고, 곁길로 새는 듯한 서술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리듬을 완성한다. 화자는 스스로를 “글을 쓰는 자이되, 걷기를 더 사랑하는 자”라 부르며 작품의 성격을 공지한다. 결국 『산책자』는 목적지 없는 걸음이 어떻게 문장이 되고, 어떻게 문장이 다시 세계와 맞서는 방식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산책은 발저에게 글쓰기의 원동력, 그러니까 곧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