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다움에 대하여
2016년 5월 17일
당시 만들던 영화 때문에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의 공판을 보러 갔었다.
<살인의 추억>의 대사처럼 그는 괴물도 아니었고 그냥 평범했다.
그해에 정유정의 <종의 기원>이 나왔고,
그즈음 나는 사람을 향해 씌우는 프레임에 관해서 많은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이코패스,
정신분열로 인한 피해망상,
여성들로부터 실제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사람에게 비정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개인의 일탈로 처리하고 끝낼 일이었을까?
함께 일하는 동료 남성들에게 이 사건 후에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여성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의 공포를 말할 때면
역차별이라는 말로 돌아왔다.
앞에 있는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게 아니라
생전 얼굴도 보지 못한 택시기사님의 편을 들기 일 수였다.
나는 나와 같이 일을 잘하고 있는 너를 탓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겪었던 불편을 이야기한 거였지만
뭉뚱그려 남성 일반을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였다.
그때 그 살인사건의 공판을 보게 했던 영화감독은
같이 일했던 조감독을 성추행했고,
옆에서 늘 있을 수밖에 없는 나에게
존재가 거슬린다는 말로 매 순간 나를 뭉갰다.
연출부 단톡 방에 있던 한 동료는
2차 가해를 가하는지도 모르고 여성 몰카를 끝없이 퍼다 날랐고,
나는 단톡 방을 말도 없이 나와 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감독이라는 직위에 과몰입했었고,
그 누구보다 보호받고 심리적 안정을 보장받아야 할 사람이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공공연하게 나의 역할은 감독의 마지막 지지자라고 말해왔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끝까지 감독의 편을 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과몰입했고, 외롭게 두고 싶지 않았다.
가지도 못한 자리에 앉아있는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내가 받기를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그런 그의 심기가 불편하고, 나로 인해서 일하는데 방해가 되면
내가 관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일을 잘 해내지 못해서 미안했다.
그의 말을 전한 조감독에게 관두겠다고 말했다.
나의 착각과 달리 나의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을 답지 않은 태도가 거슬렸고,
그는 내가 관두는 걸 원하지 않았다.
삼자대면을 통해 나의 건방진 행동 하나하나를 조감독 앞에서
조목조목 따져가며 사과받길 원했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고,
내가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온갖 의지를 끌어모아
피해자 다움을 연기하며
그 앞에서 손까지 떨며 공포에 질린 연기를 한 끝에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직접 잘못을 지적하면 될 일을
굳이 조감독을 끼워서 우리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조감독과 나는 피해자가 되었고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우린 이 문제로 울면서 싸웠다.
지금은 둘 도 없는 친구로 그때의 사건을 곱씹어 보고
뒤늦게 위로받았지만
제어받지 못한 한 사람으로 인해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 그의 영화의 음악 감독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그 작업으로 결국은 상도 받았지만,
작업하는 당시에 그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나의 위로와 공감을 갈구했다.
자존감 도둑은 더 악랄해져 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모든 자리의 마음들이 황폐해졌다.
괴물은 어느 특별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침묵하고 있는 내가 만든 것이었다.
존재가 거슬린다는 말에 참지 말았어야 했고,
몰카를 퍼다 나르는 동료에게 그의 행동의 잘못됨을 말해 줬어야 했다.
바꿀 수 없는 시스템과 인간을 탓하는 건 이제 그만하고,
거기에 편승해 편하게 가려던 내 이기심도 버리자고 생각했다.
그럼 끝나는 줄 알았다.
나만 생각했던 소극적인 행동들이 나비효과가 되어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불어났고,
떠나지 못했 던 동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없으면 나를 바꾸고, 사는 곳을 바꾸고,
내 생각을 바꾸는 게 더 쉽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정말 내 생각만 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글쓰기로 인해서 많이 반성하고,
나에 대해서 뒤늦게 알아가는 중이다.
앞으로의 과정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