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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연 Oct 27. 2020

간이역

[물감과 타이프]

하나하나의 꿈은 간이역인지도 모른다. ⓒ서정연


매일 밤 꿈을 꾼다.


오렌지 껍질을 까는 순간, 그것이 가득 머금고 있던 물의 입자가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느릿느릿한 속도로 터진다. 며칠 전에는 밤늦게 차창 밖으로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있는 꿈을 꾸었다. 제법 굵은 눈송이들이 창유리에 툭, 툭 떨어지고 부서질 때마다 언젠가 책상 위로 점점이 떨어져 내리던 검붉은 코피가 떠올랐다.


어느 날은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많던 불안과 초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어째서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은 걸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들은 내 꿈으로 흘러갔다. 불안은 이미지의 형태로 바뀌어 꿈속으로 모여들었다. 간혹 꿈과 꿈 사이, 누워 있는 몸의 가장 낮은 곳으로 고통이 흘러 고이는 소리를 들었다.


일상에서 불안이 잠재워질수록 밤마다 꾸는 꿈의 개수는 늘어만 갔다. 간혹 하룻밤에 열 개가 넘는 꿈을 꾸는 날도 있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리던,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가속도가 붙어가던 나에게 하나하나의 꿈은 간이역 같은 것이었다. 그 꿈들이 나를 살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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