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부모님
비 오는 날, 부모님을 그리워하다
비가 내린다.
창밖으로 흐르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난다.
이상하다. 비만 오면 마음 한구석이 촉촉해진다.
눈으로 내리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먼저 젖어 버린다.
어릴 적, 비가 오면 어머니는 창가에 서서 멀리 하늘을 바라보곤 하셨다.
“이럴 때는 국물이 있는 게 최고지.”
그 말과 함께 따뜻한 국 한 그릇이 식탁 위에 놓였다.
국물 속에 스며든 건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자식 배곯을까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비 오는 날이면 신발을 챙기셨다.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정문 앞에서 기다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비에 젖은 채 뛰어오는 나를 보면,
그저 아무 말 없이 우산을 내밀어 주셨다.
그 작은 우산 아래, 아버지의 어깨는 언제나 절반쯤 젖어 있었다.
나는 그때 몰랐다.
그게 사랑이었다는 것을.
부모님의 사랑은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 같았다.
마치 빗방울처럼 조용히 떨어져, 어느새 내 마음속에 고여 있었다.
그때는 그저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뜨끈한 국 한 그릇, 젖은 어깨를 내어주던 손길.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이었음을.
그리고, 이제는 그 사랑을 되돌려 드릴 기회가 없다는 것도.
비 오는 날이면, 두 분이 더욱 그립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기억 속에서 두 분을 불러본다.
“아버지, 어머니… 잘 계시죠?”
차마 대답이 들려오지는 않지만,
빗소리가 조용히 위로해 준다.
“괜찮아, 네 마음속에 우리가 있잖아.”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부모님의 흔적을 따라간다.
뜨끈한 국 한 그릇을 끓이고,
어릴 적 아버지가 건네던 작은 우산을 떠올린다.
빗소리를 들으며, 창가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두 분을 그리워한다.
비가 오는 날, 우리 함께 그리워해도 괜찮으니까.
비가 온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느 순간, 그것이 빗방울이 아니라 내 기억의 조각처럼 느껴진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그 속에는 오래된 풍경이 비쳐 있다.
어릴 적, 비가 내리던 어느 저녁.
나는 장난감 우산을 흔들며 마당을 뛰어다녔고,
어머니는 방문을 살짝 열어 둔 채 부엌에서 국을 끓이셨다.
아버지는 마루에 앉아 신문을 넘기면서도,
빗물이 흘러넘치지는 않는지 슬쩍 마당을 살피셨다.
그때 나는 몰랐다.
그 작은 일상이 나중에 이렇게 깊은 그리움이 될 줄은.
비 오는 날이면, 부모님께서는 나를 더 많이 챙기셨다.
혹여나 감기에 걸릴까,
젖은 양말을 빨리 갈아 신으라고 재촉하셨고,
손을 꼭 잡고 걸으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하셨다.
비에 젖은 골목길을 걸을 때도,
어머니는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내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아 주셨다.
아버지는 말없이 우산을 기울이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내 쪽이 더 넓은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의 사랑은 말보다 더 큰 울림으로
그렇게 조용히 내 위에 내려앉았던 것이다.
비가 올 때마다 나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비 오니까 조심해라.”
“따뜻한 거 먹어야지, 감기 걸린다.”
“혹시 우산 안 가져갔으면 그냥 택시 타고 와.”
지금은 휴대전화 화면을 켜도,
그 익숙한 연락이 오지 않는다.
창밖을 바라보면서,
그때는 당연하게 들었던 그 목소리를 가슴속으로 불러본다.
하지만 이제는 빗소리만이 대답한다.
그리움이란 참 묘한 감정이다.
한때 너무도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이렇게 아릴 줄이야.
비처럼 쏟아지는 그리움을 가만히 안아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 곳에 다녀온 날은 유독 비가 자주 내렸다.
비석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나는 천천히 두 분께 말을 걸었다.
“잘 계세요?”
“요즘은 좀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있어요.”
“가끔씩 두 분이 해 주시던 밥이 너무 그리워요.”
말을 하고 나면,
괜히 어머니가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일 것 같고,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적막한 빗소리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가 오면 부모님이 더 가까이 계신 것만 같다.
비 오는 날이면, 어린 시절처럼 나를 걱정해 주실 것 같고,
빗방울 속에서 부모님의 따뜻한 손길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는 나도,
비 오는 날이면 국을 끓이고,
젖은 신발을 조심스럽게 말려 둔다.
혹시나 누군가를 챙겨 줄 일이 있으면,
내 우산을 조금 기울여 준다.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분이 나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을 떠올린다.
비가 내리는 날, 나는 부모님을 닮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기억하고,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을 그린다.
이 글이 브런치에 올려질 때,
어딘가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있을 누군가가
조용히 부모님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