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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19. 2024

보홀여행 5. 돌고래들과 숨바꼭질을...

보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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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와 까꿍놀이 느긋한 바다거북이     


보홀에서의 두 번째 동이 튼다. 예상대로 바로 옆집 닭들의 모닝콜 소리에 눈이 떠졌다. 어찌나 격하게 우는지 안쓰러운 마음마저 든다. 여러 마리의 닭들은 개들과 다름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복도 많다. 집에서 부화시킨 후 시골로 보낸 우리 닭들이 생각났다. 보홀 여행을 떠나기 전 주에 시골로 내려가 녀석들을 만났는데 아직 어른 닭이 되지 않아서인지 울움 소리가 시원찮았다. 제 음역 대 소리도 못내는 데다가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음치를 가려내는 예능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나오는 음치의 노래를 듣는 듯 했다. 소리에 예민한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음치가 아니길, 필리핀의 닭들처럼 호탕하게 핏치를 올리며 박자를 맞추는 닭이 되기를...꼬끼요!!!      


오늘은 호핑투어를 하는 날, 섬과 섬사이를 토끼처럼 잽싸ᆞ게 뛰어다니며 돌고래와 거북이, 바닷속 풍경을 보러가는 프로그램이란다. 참, 버진 아일랜드의 멋진 풍경도 기다리고 있다. 스노쿨링을 하며 바닷속을 들여다 보는것은 이번 여행의 두번째 버킷리스트다. 수영을 잘 하지 못해서 스노쿨링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게 되면 영영 경험하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뱃속으로부터 단단하게 차오르는 자신감이 반갑고도 대년했다.


 사실 몇 해 전,60세가 넘어가자 뭔가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완경(menopause)으로 인해 호르몬의 변화가 그런 마음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몸은 조금씩 적응을 했는지 삼년이 지난 요즘엔 예전의 나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당당하고 도전적이었던 지난날의 나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밖에 더하겠어. 오늘이 나의 제일 젊은 날일이잖아...!'  스스로를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살아야지.  

  

여행을 떠나기 전, 스노쿨링 장비를 검색했다. 사실 보홀의 스노쿨링 업체에서도 잠수경을 빌려준다고 했는데 여러사람 입이 닿았던 거라 께름직한 마음이 들었다. 고르고 고른 끝에 실리콘 제질의 장비를 선택했다.  기본 톤인 흰색과 파스텔톤의 연두, 바이올렛, 핑크색깔의 스노쿨링 장비는 걱정스런 내 맘 같지 않게 어여뻤다. 쳐다만 보아도 기분이 좋았다. 버킷리스트고 뭐고 '안 되면 말지 뭐!' 이랬다가 '아니야 이번 아니면 다시는 할 수 없을 거야' 라며 바다로 나가는 마음이 파도처럼 솟았다 내려 앉기를 반복했다. 궁하면 통하리라!     


썰물 때라 배를 타려면 찰랑거리는 물결무늬의 모래사장을 걸어서 바다를 향해 걸어야만 했다. 첫날 깜깜한 길을 따라 숙소에 도착했던 똑같은 사람들이 이번엔 끝이 보이지 않을 듯한 바다를 향해 걷고 있다. 눈부신 물결과 섬득함에 가까운 경외감이 가슴속에 요동친다. 호텔 안에 구비된 쪼리를 신어도 된다 해서 신고 왔다. 모래바닥을 지나 중간쯤 가니 진흙 바닥이다. 한발자국 뗄 때마다 쪼리가 펄에 박혔다. 남들 세 걸음 뗄 때 나는 겨우 한걸음을 옮겼다. 아! 아쿠아슈즈를 신고 왔어야 했다.     


스무 명 가량의 관광객을 태우려면 작은 배에서 큰 배로 옮겨 타야 했다. 일렁이는 파도에 배가 들썩인다.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발바닥에 힘을 주고 걸었다. 가벼운 옷차림은 벌써 바닷물에 젖었다. 그리고 오늘은 축축한 것을 즐겨야 하는 날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바다를 보는 순간,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매력적인 미소를 보내는 듯 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가자! 푸른 바다로! 물고기들아, 거북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여기저기 우리 배와 비슷한 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간다. 배가 망망대해 한가운데 멈췄다. 가이드가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영화 죠스에 등장하는 상어 지느러미가 보일 듯 말듯 스쳐지나간다. 뒤이어 오동통한 검은 돌고래 떼들이 바다 위로 솟구쳤다. 모두들 함성을 지른다. 순간 눈 깜짝 할 사이에 돌고래 떼들은 아득한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근처에 있던 다른 배가 잽싸게 다른 곳으로 방향을 바꾼다. 찰나, 그곳 여행객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우리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또다시 나타난 돌고래 떼. 반질반질한 몸뚱이들이 햇살을 받으며 물결사이를 들고 난다. 그저 우리는 경이로움을 함성으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거의 매일 세상의 모든 감탄사를 듣는 돌고래는 감탄하는 갖가지 언어를 알고 있지 않을까! 탄식과 슬픔의 감탄사가 아닌 행복과 경이로움의 감탄사를 듣는 보홀 바다는 그래서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열두 척의 배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30분간 돌고래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아주 잠깐 동안 인간이 돌고래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환호성을 칠수록 그 생각은 점점 사라졌다. 돌고래들도 까꿍 놀이를 하는 아기들같이 우리와 즐기는 듯 보였다. 모든 사람들은 돌고래에게 미소와 사랑을 보냈다. 잘 살아~멋진 모습으로 또 만나! 어젯 밥에 만난 반딧불이에게 했던 말을 돌고래에게도 건넨다. 문득 지금 반딧불이는 어디에 있을까,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 많던 배들이 어디론가 하나둘 사라졌다. 이제 거북이를 만날 수 있는 발라카삭 섬으로 갈 차려다. 십분도 채 되지 않아 섬 언저리에 배가 멈췄다. 섬에 내리면 얼마의 돈을 지불해야 해야 한단다. 가이드는 비용 절감을 위해 뭍에 내리지 않았다. 거북이 만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바다로 들어갔다. 하루 종일 물위에 떠 있는 일은 무리일 듯 하여 우리가족은 거북이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다. 일부관광객들도 그런 이유로 우리들처럼 배 위에 머물렀다. 한가해진 갑판 위에서 저 멀리 펼져진 끝없는 열대 바다를 본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이렇게 넓고 깨끗한 바다라니! 작은 공간에서 복닥거렸던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저 바다가 여기에 있음을 누군가에게 마구 마구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잠시 구명조끼를 벗고 뱃머리에 서 보았다. 맑은 바다 속이 훤히 보인다. 배도 바다도 일렁이니 어지러웠다. 꿈속 같았다.      

"와!  거북이가 보여요! " 누군가 소리쳤다. 사실 꼭 바다로 들어가지 않아도 배 위에서도 거북이를 볼 수 있었다. 넓은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거북이가 코앞에서 여유롭게 헤엄쳐 간다. 거북이는 헤엄치는 일 빼고는 딱히 할 일도 없어 한가해 보이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급하다. 거북이가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으며 환호성을 보내고 발을 동동거렸다. 거북이가 우리들의 호들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거북이의 눈에는 우리들이 어떻게 보일까. "저 생물들은 왜 저렇게 나를 따라다닐까" 라는 듯 거북이는 느릿느릿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또다시 한 마디씩 했다. 잘 가! 잘 살아야해! 두 번째 따듯한 마음을 전했다.    

  

이제 막 거북이를 보러갔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배에 올랐다. 아침에 반짝였던 사람들이 물에 빠진 생쥐 모양으로 기진맥진 올라왔다. 바다와 함께하는 여행엔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실감한다. 우리가 거북이투어를 하지 않고 체력안배를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드디어 스노클링 스폿으로 배가 달려간다. 짙푸른 바다가 코앞인 맑은 바다에서 엔진이 꺼졌다. 드디어 우리가 바다에 안길차례다.  나의 두번째 버킷리스트 스노클링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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