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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23. 2024

보홀여행 8. 너그러워지는 여행매직

여행 이틀째.

짠 바닷물에 축축해진 옷들을 빨리 갈아입고 싶다며 딸들은 점심 삼겹살을 거절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자기들은 망고 크레페를 먹기로 했다나 뭐라나. 사실 여행지엔 특별한 먹을거리가 지천이고 평소에는 못 먹는 음식들이 유혹하니 그럴만하다. 나도 함께 갈 걸 그랬나! 삼겹살은 집으로 돌아가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가!

망설이다 그냥 남편이랑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한국 식당에 예약이 되어서인지 부스타와 불판, 상추, 쌈장 등이 이미 차려져 있다. 상차림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삼겹살의 두께는 빈티가 났다. 칼집이 들어간 두툼한 삼겹살이어야 제맛이지라는 생각을 했다가 여행 패키지에서 주는 것이니 군소리 않고 먹기로 했다. 공식적으로 4인분이 차려졌지만 두 사람이 먹으면 적당해 보일 정도로 양은 적다.

어머니는 늘 고기가 두꺼워야 제맛이 난다며 사들고 갈 고기의 모양을 주문하셨다. "통째로 사와라!" 숫돌에 칼을 갈고 서어서억 고기를 자르시는 어머니는 고기가 참 실하다고 하시며 좋아하셨다. 지금까지 살아 계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오늘처럼 삼겹살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가 보고싶다.


살뜰히 살았던 젊은 시절에는 언감생심 어머니와의 여행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도 내 새끼랑 살아야만 했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라는 말이 들어맞는다.


결혼도, 연애도, 사랑도 두려워하는 젊은 딸들은 저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평행선 같은 부모 자식 간은 서로 못 만나고 꽃을 피우는 상사화와 같다.

스스로가 할 수 있을 능력이 될 때엔 늦는다는 슬픈 이야기다.


그 대신 지금부터 열심히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중 여행은 일 순위에 둔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때란 바로 지금, 오늘, 여기니까.


동네 개들이 삼겹살 냄새에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비만견이 많은 우리와는 달리 모두들 삐쩍 말라있다. 녀석들은 주인 없는 떠돌이 개들일까? 그리고 보니 숙소 로비의 개들도 매한가지로 갈비뼈가 훤히 보인다. 배가 불러진 남편은 동네 개들에게 고기를 던져주며 기분 좋게 인심을 쓴다. 내가 먹을 고기도 마구 준다. 여행이 그를 너그럽게 만들었을까?


이틀간 함께 다녀서 이제는 눈인사를 할 정도로 친해진 중년 부부가 있다. 남편에게 소주를 권하며 보홀이 좋아서 다시 왔다고 한다. 내게는 열대과일이 잔뜩 들어간 달달한 주스를 건넸다. 마주 본 테이블에 앉은 부부들에게도 한 잔씩 돌린다. 얼떨결에 호의를 받으니 어리둥절하지만 모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이 분도 여행으로 너그러워진 모양이다.


아침 일곱 시에 시작된 오늘의 일정은 끝나고 오후는 자유 시간이다. 자유시간이 낯설었지만 한가히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매력적일 거다. 저녁엔 호텔 루프탑에서 야경과 함께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을 예정이다. 그 외에도 가족들이 원하는 것 모두 시켜볼 생각이다. 나도 여행으로 너그러워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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