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내 이름이 좋았다. 이름처럼 다정하게 살고 싶었다. 그저 다정하게 미소를 건네는 순간,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순간들이 좋았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우리 마음에 온기를 채우고 결국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건 분명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따뜻했던 아빠가 나에게 심어준 믿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라도, 하다못해 길가에 핀 코스모스에게도 한없이 다정했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차가운 바닷속으로 그렇게 떠나셨다. 따뜻하다고만 믿던 세상이 처음으로 얼어붙은 듯 시리고 또 시렸는데…. 아빠가 떠난 지 7년쯤 지나니 어느덧 아빠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은 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십자가 언덕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순례길 어딘가에는 순례자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가지고 온 돌로 쌓은 돌무더기 언덕이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죄와 생의 무게를 내려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이나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아픔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부모님 이름 바로 옆의 작은 틈새에 남동생의 사진을 밀어 넣고 다른 돌들로 그 위를 덮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남동생의 안식을 비는 기도를 했다. 눈물을 펑펑 쏟다 못해 울음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혼자 산길을 걸으니 그동안 눌러두었던 응어리가 토해지듯 불쑥 빠져나왔다. 체면이고 뭐고 없이 남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네 영혼이 여기서 바람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로울 수 있기를, 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곳, 사람들의 선량한 소원이 가득한 곳, 부모님의 이름 옆에서, 부디 편히 쉬려무나.”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김희경>
이 대목을 읽는 순간부터 나는 꼭 이곳에 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나도 아빠의 사진을 그곳에 두고 싶었고, 그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에게 기도를 청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아빠를 부르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7년 동안 아빠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아빠를 실컷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이별하고 싶었다.
그렇게 서게 된 그 길 위에서 나는 늘 아빠가 보내준 천사들과 함께였다. 힘들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모든 걸 그만 포기하려던 순간마다 아빠가 자꾸만 자꾸만 천사들을 보내주었다.
순례 첫날부터 길을 잃은 나는 지나가는 현지인 남성에게 길을 물었다. 우연히 길을 물어본 남자가 자신의 하루를 통째로 써가며 나를 도와주고 한 손에는 2L 생수를, 다른 손에는 기념품을 쥐여주며 내가 무사히 숙소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겠다고 멀찍이서 기다려줄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순례 마지막 날은 한 할아버지가 본인 집에서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를 가지고 나와 나에게 건네주셨다. 그러고는 내가 미처 고맙다는 인사를 할 새도 없이 다시 홀연히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해서 그만 포기했던 것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선물 받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확률로는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그런 마법 같은 일들을 겪으며 이내 난 아빠가 나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건네는 작은 미소, 작은 위로…. 그런 작은 다정함들이 나에게는 더없이 큰 기적이었다. 그렇게 실컷 아빠를 생각했고, 제대로 된 이별을 했고, 좀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났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알베르게의 찬 공기와 시골 마을 작은 바르(Bar)의 온기까지 그 길 위의 겨울이 나에겐 생생한데,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또다시 겨울이 왔다. 그 세월에도 여전히 산티아고를 향한 나의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게 식을 줄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이지 다정도 병인 양 그곳이 그립고 또 그리워 잠 못 드는 이 겨울밤. 나의 친구들, 그 다정함에 대한 기억을 꺼내 보려 한다.
열 번째 찾아온 겨울에
홍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