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구입부담지수
“2021년 가을, 민준 씨(40세)는 서울 외곽의 낡은 아파트 304호 앞에 섰다. 30년 넘은 아파트라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복도에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민준 씨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내 집'이라는 이름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난 4년간, 그는 그야말로 '영끌'했다. 월급의 80%를 꼬박꼬박 모았고, 주말에는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뛰었다.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가고, 맛집을 탐방할 때도 민준 씨는 노트북으로 부동산 커뮤니티를 들락거렸다. 주변에서는 "집값 곧 폭락한다", "지금 사면 물린다"는 조언이 쏟아졌지만, 그의 불안감은 더 컸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 산다"는 공포가 그의 밤을 지배했다.
마침내, 은행의 대출 심사를 통과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 그는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떳떳하게 "내 집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다음 달부터 시작된 대출금 상환은 숨 막히는 현실이다. 월급 대부분이 통장을 스쳐 지나가고, 남은 돈으로는 생활을 꾸려 나가기가 버겁다. 좋아하는 커피 대신 믹스커피를 마시고, 외식은 꿈도 꿀 수 없다. 친구들과 만남도 뜸해졌다. 민준 씨는 친구들 단체 카톡방을 볼 때마다 씁쓸한 기분을 느낀다. 친구들은 신혼여행 사진을 올리거나, 새 차를 뽑았다고 자랑하고 있다. 민준 씨는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차마 꺼내지 못한다. 그들의 풍요로운 삶과 비교되는 자신의 초라한 현실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작은 회사에 다니는 민준씨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워낙 올라 두 달 전부터 하나뿐인 딸이 피아노 학원도 못 다니게 했다. "그래도 난 '내 집'이 있는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공허하다. 그나마 살고 있는 아파트가 곧 재건축을 위한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마음에 위안이 되고 있다.
오늘 새벽 2시, 민준 씨는 잠에서 깼다. 모레까지 월 상환액이 입금하라는 안내 문자가 와 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창 밖을 바라본다. 불 꺼진 아파트 숲이 낯설게 느껴진다. “과연 내가 잘한 선택일까?”라는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맴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집'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 불안한 미래를 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필자와 친밀한 관계인, 서울 외곽에 살고 있는 서민 가장의 경우를 각색한 것이다.
주택 구매의 벽,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협한다.
오늘날 서울과 수도권의 젊은 세대에게 내 집 마련은 점점 더 요원한 꿈이 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아파트 값이 너무 높아 엄청난 빚을 내지 않으면 도저히 구매할 수가 없다. 설사 빚을 내서 무리하게 집을 장만한다 하더라도 그 이자나 원금을 갚기 위해 소득의 상당분을 지출한다. 그 비율이 적정선은 물론 한계선을 넘어서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하기 힘든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더구나 소득 증가가 주택 가격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새롭게 주택 소요 연령층에 진입하는 세대(가정)의 삶을 위협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가 경제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되었다.
주택구매부담지수
한 가구가 자기들이 들어가 살 만한 주택을 은행 대출을 끼고 구매할 때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가 주택구매능력지수(HAI; Housing Affordability Index)이다.
구체적으로는 중위소득 가구가 표준적인 비율(LTV)의 대출을 받아 중위 가격의 주택을 구매하는 경우를 상정하여 지수를 산출한다. 이 지표는 OECD를 비롯해, 미국ㆍEUㆍ영국ㆍ호주ㆍ캐나다 등에서 널리 쓰인다.
HAI = (중위 가구 소득 ÷ 중위 주택 대출상환가능 소득) × 100
※ 대출상환가능 소득은 DTI, 대출 만기, 이자율, LTV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¹
그런데 한국에서는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이 지표를 변형하여 주택구매부담지수(K-HAI; Korea Housing Affordability Index) ²를 분기마다 작성하여 발표한다.
K-HAI = (대출상환가능소득 ÷ 중간 가구 소득) X 100
여기에서 대출상환가능소득은 DTI 25.7%, 20년 만기, 금리는 해당 시점의 은행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전제하여 산출하여 다른 나라의 표준과 유사한데, 표준 LTV는 47.9%로 크게 다르다.
대출상환소득 산정에 쓰이는 표준 DTI 25.7%는 명목소득의 1/4을 넘어서는 원리금 부담은 가정경제에 무리를 줄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소득세 및 연금ㆍ건강보험료 등을 뺀 가처분소득에 비하면 이 기준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그리고 HAI와 달리 표준 LTV를 거의 50%에 근접하게 설정하여 통계를 작성한다는 점도 이 지표의 변별력을 떨어트린다. 다른 나라가 채택한 HAI에 비해 표준으로의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K-HAI는 HAI의 역수 격인데, 100을 기준으로 하여 이 수치가 더 크면 그 가구가 속한 나라 또는 지역에서 서민이 집 사기 어렵다는 뜻이다. 반대로 100보다 작으면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25년 1분기 기준, 서울의 HAI는 155.7에 달해 주택 구매 부담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그 다음으로 세종시, 경기도가 높기는 하나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에 비해 나머지 지역은 상대적으로 집 장만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표준 LTV를 47.9%로 잡았다는 것은 주택 구입 자금의 50% 이상을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지표로서, 서울의 중위 주택가격을 11억이라고 볼 때 젊은 가구가 스스로 절반에 해당하는 6억원가량을 미리 모으기도 쉽지 않고, 나머지 대출로 인해 원리금 상환액이 월 300만원이 넘으니 어마어마한 부담이다.
말 그대로 ‘영끌’을 하지 않고는 서울 안에서 도저히 ‘살 만한 집’을 살 수 없는 지경인 것이다. 생애 주기에 마땅한 크기의 집 마련이 힘든 젊은 가구가 직장이 있는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 지표가 설명하고 있다.
한편 주택 구매 부담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로서 HAI 말고도 주택가격-소득 비율(PIR; Price-to-Income Ratio)이 있다. PIR은 가구의 연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때 주택 가격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는 일상의 생활비 지출이나 그 여유를 직접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투박한 지표여서, 현실적인 주택구매능력을 측정하는 데는 유용성이 떨어진다.
젊은이를 위한 주택시장 정책이 시급하다
주택 가격과 소득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주택 가격이 서서히 조정되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젊은 세대에게 '내 집 마련'이라는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이들을 가정 경제의 주축으로 세우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는 가계 경제의 안정과 장기적인 국가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다. HAI 100을 목표로 삼아, 중간 소득 가구가 무리 없이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실효성 있는 정책 목표가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한국 주택 시장의 과도한 부담을 완화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선 세대와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젊은 세대가 희망을 잃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계획할 수 있도록, 소득과 균형을 이루는 주택 가격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경제와 사회를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 참고 지표: RIR(소득-임대료 비율)
가계의 주택 매매가격뿐만 아니라 임차료 역시 사람들의 주거부담을 측정하고 정책적으로 관리함에 있어서 중요한 대상이다. RIR(Rent-to-Income Ratio)은 월 소득 대비 월 임대료 비율이다.
RIR(%) = (중위 월임대료 ÷ 중위 월가구소득) × 100.
한국의 주택임대차는 주로 전세로 이루어지며, 월세의 비중이 낮다. 그런 까닭에 덕분에 이 지표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요즘 전세가 줄어드는 대신 월세가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앞으로는 임차 가구의 주거비 부담이 점점 커질 가능성이 높다.
매수이건 임차이건, 주거 비용의 부담이 커지는 현상은 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가 경제의 활력을 앗아갈 수 있으므로, 정부는 RIR이 일정 수준(20%)를 넘지 않도록 서민 주거 서비스를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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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은 NAR(The National Association of Realtors)가 매월 HAI지수를 발표한다. 이 통계는 30년 모기지대출, LTV 80%, DTI 25%를 전제로 작성된다.
(2) 세부적인 통계 작성 전제 및 통계치는 주택금융통계시스템 (houstat.hf.go.kr)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