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추운 나라에서 온 '사딸라' 백신
중국과 러시아가 백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을 때 누군가는 이 백신을 코로나 맥주로 인한 숙취 제거제 정도로 비웃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들 백신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어느새 우리가 프리미엄 백신만 백신으로 생각하는 고급 취향으로 바뀌었을까? 멕시코를 비롯해 남미와 중동 그리고 아시아의 개발도상국 국가들은 중국산 백신을 쓰기로 했다고 전한다. 러시아는 자국산 백신에 ‘스푸트니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푸트니크’라는 이름은 소련의 가장 영광된 시대의 이름이다. 소련의 ‘라이카’라는 개가 최초로 우주로 날아갔을 때, 그것은 비단 미국의 모든 강아지들과 멍멍이들만의 굴욕은 아니었다. 미국이 NASA를 만들고, 존 듀이를 버리면서까지 수학과 과학을 강화하며 미국 교육을 뜯어고친 것은 바로 이 스푸트니크 쇼크 때문이었다.
스푸트니크가 하늘로 올라간 것은 1957년이었다. 그 이듬해 WHO는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이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을 주도한 것은 미국과 소련 두 나라였다. 1957년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동서 양진영이 치열한 체제 경쟁에 들어간 냉전 시기에 이런 협력이 있었다는 것은, 바이든과 트럼프가 손을 잡고 취임식장에 들어가는 일을 상상하는 만큼이나 신기한 일이다. 천연두 퇴치 안을 먼저 내놓은 것은 소련이었다. 미국이 자금과 전문 인력을 댔고, 소련은 백신을 공급했다. 서방 선진국에서보다 개발도상국의 천연두 퇴치가 절박했다. 당시 서구에서 사용하던 액상 백신은 열대지방에서는, 조금 과장하자면 따듯한 나라로 온 화이자 백신이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한 것은 동결건조 기술이었다. 몇몇 나라들도 동결건조 기술이 있었지만, 동결건조 천연두 백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나라는 소련이었다. 천연두는 남아메리카서, 아시아서, 그리고 마침내 아프리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1979년 WHO는 천연두가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러시아가 개발한 백신의 이름은 ‘스푸트니크V’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은 ‘바이러스 벡터 백신’이다. 벡터란 생물학에서는 운반체를 말한다. 소련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에 우주비행사 대신 ‘라이카’라는 개를 태웠듯이, 바이러스 벡터 백신은 다른 바이러스의 몸 안에 바이러스 원주인의 유전자 대신 필요한 코로나19 유전자를 넣어 인간이라는 몸의 우주로 쏘아 보낸다. 지금 ‘스푸트니크V’ 대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둘 다 몸 안으로 쏘아 올릴 비행체, 즉 운반체는 아데노바이러스라는 현실 바이러스다. 아데노바이러스는 배양하는 시간도 짧고, 배양하기도 쉬워 ‘운반체’로 러브콜을 받아왔다. 가령 인슐린이 모자란 당뇨환자인 경우 아데노바이러스에 인슐린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심어 인체에 주입하면 된다. 벡터 기술이란 이런 방식이다.
중국도 바이러스 벡터 백신을 만드는 곳이 한 군데 있다. 캔지노 백신이다. 중국이 개발한 나머지 백신은 대부분 불활성화 백신이다. 불활성화 백신이란 바이러스를 사망시켜 몸 안으로 들여보내는 방법이다. 유전자 기술이 필요 없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그에 반하여 앞에서 말한 바이러스 벡터 백신이나, 바로 앞의 글에서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친 핵산 백신인 ‘mRNA 백신’은 현란한 유전자 기술이 필요하다. 아스트라제네카나 화이자 또는 모더나 백신 모두 일단 몸 안으로 들어가면 작동하는 방식은 같다. 다만 아스트라제네카나 스푸트니크V는 실제 바이러스를 동원하는 거고, 화이자나 모더나는 모든 과정을 화학적으로 처리한다는 차이가 있다.
예전부터 푸틴을 못마땅해하던 사람은, 최근에 그의 정적인 나발니를 체포한 사건 때문에 더욱 러시아 백신을 보드카에 타서 마시는 죽은 바이러스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신을 개발한 '가말레야 전염병 미생물학 센터'는 삼일운동이 일어나던 해 국립으로 바뀐,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연구소다. 게다가 러시아는 과학계의 스타들을 다수 배출한 나라다. 주기율표의 멘델레예프, 침 흘리는 개의 파블로프, 야쿠르트 광고에 나오는 메치니코프, 조지 가모프. 여기까지만 하겠다. 너무 흘러간 인물들이라면, 그레고리 페렐만. 푸앵카레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주는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거부한 살아 있는 수학자다. 부자냐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작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자기 엄마와 가난하게 살고 있는 괴짜다. 취소. 괴짜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물론 백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스푸트니크V'를 섞어 맞는 임상시험이 2월 초 시작된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러시아는 코로나19 백신을 동결건조 형태로 만들 계획을 고려중이라 한다. 추운 나라에서 온 백신이 동결건조라니.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일지 모른다. 우리는 세상을 증거기반으로 보기보다는 명성기반으로 보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이름난 의사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여 앞으로 삼십 년 동안 자라지 않을 우연암(incidentaloma)을 제거하기 위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수술대 위로 올라갈지 모른다. 유명한 서방의 제약회사에서 만든 약은 당연히 효과가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러시아의 백신을 믿지 못하면서 서구의 거대 제약사들의 통계를 굳이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명한 화이자나 모더나의 임상 테스트가 어땠는지 모른다. 실제 임상에 참여한 사람들의 몸에서 정확하게 검체를 확보해서 확인했을 수도 있지만, 그냥 전화로 물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굳이 백신 효과 몇 퍼센트 차이를 갖고 민감하게 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아스트라제네카를 맞고 싶다. 스푸트니크 백신도 거부하지 않을 것 같다. 스푸트니크라는 그 이름 때문에, 순전히 그 이름 때문에 한번 기념으로 맞고 싶기도 하다. 그럼 왜 아스트라제네카냐고? 화이자나 모더나가 전체를 컴퓨터로 편집한 음악 같다면, 아스트라제네가나 스푸트니크V는 그래도 아직은 ‘아데노바이러스’라는 원곡은 남아있으므로. 음...... 이쯤에서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사딸라’다. 사실 '스푸트니크V'도 ‘사딸라’다.
‘사딸라’라 코로나 사태에서 칭찬받아야 할 유일한 언론이라는 뉴욕타임스(NYT)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세계를 지배할 백신이 될 조건을 갖췄다고 평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스푸트니크V’는 언급하지 않았다. 동결건조 백신이 나오면 ‘스푸트니크V’도 끼워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