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셀프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감각이 나를 휘감았지만, 그 감각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불멧돼지가 남긴 쪽지를 손에 쥔 채,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숲의 어둠은 나를 짓누르듯 감싸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감각은 이제 낯설지 않았다. 내 손안에 있는 쪽지. 그 안에 새겨진 시구가 마치 무거운 추처럼 나의 의식을 잠식했다.
달빛 아래, 잊힌 이름이 다시 기억될 때
구원이 있으리라.
지금 이 순간을 예견한 것처럼 들렸다. 내가 잊으려 했던 이름들, 외면하고 도망쳤던 진실들이, 달빛 아래에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 이름 속에 깃든 것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그 상처를 넘어서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는, 무겁고 낯선 구원. 나는 그 구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럴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 서 있었다. 불멧돼지가 남긴 시구는 단지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이끌었다. 진실의 끝으로. 내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마지막 장면으로. 가슴속에 쌓인 두려움을 억누르며,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걸음을 옮기자, 숲을 휘감고 있던 어둠이 서서히 물러났다. 나무들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 있었고, 그 그림자 틈새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빛과 어둠이 맞닿는 그 경계선에서 빛이 일렁였다. 처음에는 희미했던 빛줄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선명해졌다. 어둠이 나를 짓누르던 무게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하늘과 땅을 가르며 무지개 한 줄기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출현이 아니었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그 무지개는 흔들림 없이 선명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그 공간에서 무지개는 숨겨진 진실을 품고 있었다. 어둠이 깊었던 만큼, 그 무지개의 빛은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나는 깨달았다. 저 빛이 단지 환상이나 현상이 아니라, 내가 찾아야 할 진실로 이어진 길이라는 것을.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무지개를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빛은 마치 내 안에 깊이 묻혀 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듯했다. 잃어버린 조각들이 빛에 비추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무언가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어렴풋이 들리던 그 소리가 점차 선명해지며, 수많은 이름들. 그 속에서 들려온 내 이름.
내 이름이 내 심장을 꿰뚫었다. 숨이 멎을 듯했다. 내 이름이, 상처 속에 묻혀 있던 수많은 이름 중 하나로 다시 불렸다는 사실에 온몸이 떨렸다. 이 소리가 왜 나를 부르는 것일까.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계속해서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이름이, 나라는 이름이 왜 여기서 불리는 걸까.
그 순간, 문득 깨달음이 밀려왔다. 내가 그토록 외면하고 도망쳤던 진실은, 내가 숨기려 했던 나 자신이었다. 상처와 고통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잊으려 했지만, 결국 나의 이름이 다시 불린다는 것은, 그 상처와 진실에서 구원받을 열쇠가 오직 나 자신에게 있음을 의미했다. 이 구원의 시작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숨겨둔 진실, 내 안에 억눌린 기억과 직면해야만 닿을 수 있는 것이었다. 구원은 내가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구원은 스스로 직면해야 할 진실이었다.
그때, 발밑에서 차가운 물결이 내 발목을 스쳤다. 내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기억과 상처의 흐름이 물이 되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물결이 나를 감싸며 차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오래된 기억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이 물이 내가 피하려 했던 모든 것들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 물결이 멈추고, 고요가 나를 감싸 안았다. 물에 비친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떠오른 것은 상처받고 도망쳤던, 진실을 외면했던 나였다. 나는 그 모습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도망칠 이유도 없었다. 오랜 시간 숨겨두었던 나의 상처들은 이제 나를 짓누르는 무게가 아니라, 살아가며 품고 있어야 할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속에 비친 내 모습과 과거의 상처들을 마주하면서, 그것들을 외면했던 과거의 나와 천천히 결별하기 시작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상처 위에 새로운 내가 자라날 수 있었다. 상처는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자,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설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증거였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하나로 이어지며, 나를 묶고 있던 사슬들이 서서히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어둠 속에서 불어오며, 물결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는 그 강을 건너며, 더 이상 어둠이 나를 삼킬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둠은 내가 걸어야 할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었고, 나는 그 길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상처와 진실을 마주한 사람, 다시 시작할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제, 내가 남긴 쪽지를 손에 쥔 채, 나는 새로운 길 위로 발걸음을 내디뎠다.